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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법을 외우다가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말한다. ‘저는 결코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연공하지 않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가 소파에 눕기만 하면 저 자신은 곧 나가서 연공하는데, 저는 누워서 그가 연공하는 것을 봅니다.’”(《전법륜》)에 이르러 나는 문득 이 사람은 어느 것이 자신인지 분명히 가려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 자신(我自己)’이 나가서 연공한다고 하다가 잠시 후에는 나가서 연공하는 ‘나 자신’을 ‘그’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 어느 것이 자신인지 구분할 필요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자신의 신체 안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어찌 자신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정말 이렇게 무능하고 구분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의 신(神)이 사람더러 이 진상(眞相)을 분명히 알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뒤섞어 사람이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각한다. ‘내가 구태여 당신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할 것이 뭐 있는가. 그 역시 당신인데 내가 그를 제도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모두 당신으로서 누가 얻어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 당신이 얻는 것이다.’”(《전법륜》)

“생을 마친 후 副元神(푸왠선)은 떠나가게 되는데, 각기 제 갈 길로 간다.”(《전법륜》)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은 신으로 그는 아주 똑똑히 볼 수 있는데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다만 미혹 속의 사람만이 분명히 모르면서 흐리멍덩하게 한 생 한 생을 보낼 뿐이다.

최초로 명확하고 분명하게 이 일을 말한 것은 오직 대법뿐이다.

“그러나 副元神(푸왠선)이 무엇을 하는지 당신은 전혀 모른다. 비록 그와 당신이 동시에 태어났고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동일한 신체를 주재(主宰)하고 생김새도 같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그는 또 당신이 아니다.”(《전법륜》)

오늘날 정법(正法) 환경 중에서 구세력은 끊임없이 우리더러 자아를 헛갈리게 한다. 의도적으로 모든 좋지 않은 사상과 모든 집착심을 가져다가 우리더러 그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라고 인정하게 만들고, 내 머릿속에서 내보낸 것과 내 대뇌 속에서 생각한 것이 바로 나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그런 후 그것이 박해하기가 쉽다. 대법을 지도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주변을 보면 아직도 적지 않은 수련인들이 마치 ‘소파에 누운’ 사람처럼 어느 것이 자신인지 똑똑히 구분하지 못해 아주 괴롭고 아주 힘들게 수련하고 있다.

복잡한 정법(正法) 상황에 직면한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단지 주원왠선과 푸왠선 문제만이 아니며 주왠선과 내가 아닌 모든 생명을 구분해야 한다. 가장 뚜렷한 표현은 바로 반드시 주왠선과 모든 집착심을 구분하고 주왠선과 모든 좋지 않은 사상염두를 구분하는 것이다.

법에서는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사상을 닦는 것이다”(《법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한 수련인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파악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왜 어떤 사람은 그의 그 사상업력이 장기적으로 없어지지 않는가? 바로 어느 것이 자신인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당신에게 수련하라고 하는가? 우선 당신은 좋지 못한 사상 그것을 닦아 없애버려야 한다. 당신이 그런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할 수 있음은,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정말로 당신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후천적으로 일하면서 형성한 각종 관념이고 진일보로 형성된 업력,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실 모든 좋지 않은 사상은 모두 당신이 아니다.”(《미국서부법회설법》)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첫 일념이 종종 아주 중요하다. 어떤 동수들은 늘 “나란 사람은 정(情)이 아주 중하고 두려움이 아주 중하다고 하거나 또는 나는 화를 잘낸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사실 법에서는 명확하게 “두려움 역시 일종의 집착심”(《전법륜》)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두려움은 집착심이라고 이렇게 명백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니 당신은 두려움이 나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집착심은 제거되어야 하는데 당신이 자신을 제거한단 말인가? 정(情)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삼계 내의 한 생명인데 그것이 어찌 나일 수 있겠는가? 사실 우리는 모든 집착심을 법속에서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다 찾아낼 수 있으며 이런 것들 모두 자신의 몸과 한데 묶어 모두 ‘나’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그것이 나라고 승인한 후에 다시 발정념으로 그것이 필요 없다고 하면 사실 이는 자신이 자신과 싸우는 것으로 이는 내부 소모가 아닌가? 당신은 ‘소파에 누운’ 그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밖에 나가서 연공하는 사람”이 나였다가 잠시 후에는 “밖에 나가서 연공하는 사람”이 그가 된다. 이는 글자 자체를 파고드는 문제가 아니며 당신이 진짜와 가짜, 정(正)과 사(邪)를 구분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험악한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찾지 못한다면 몹시 위험한 것으로 자신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또한 신이 가장 경멸하는 대상이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純眞)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진정한 나는 바로 이렇게 순정(純淨)한 것으로, 사부님께서 이미 가장 미시적인 곳부터 완전히 다 개변시켜 주셨고, 정법을 시작할 때 이미 제 위치로 밀어주셨기에 바로 그렇게 순정한 것이다. 오직 이런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비로소 처음부터 정법(正法)이란 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으며 정법 이 일은 곧 이렇게 중요하다. 온몸이 업으로 가득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좋지 않은 사상이 일단 나타나기만 하면 곧 그것을 발견해서 어디서 온 것인가, 내게 이런 것이 없으면 제거해버려야 하며, 누가 나에게 억지로 더한 것은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 법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전반 이번 박해는 모두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것으로 그것이 박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집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그런 집착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억지로 더한 것이며 그것들이 정법 중에서 정법을 좌우하려는 것인데 그것들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마음이 일단 나오기만 하면 우리가 그것을 ‘나’라고 승인하지 않음은 완전히 법에 부합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는 정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정법수련자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소질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자신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이것이 길을 바르게 걷는 전제이다. 그 다음으로 시시각각 자신을 찾는 것이 몹시 필요한데 당신이 1초라도 이 몸을 주재하지 못한다면 그럼 다른 생명에게 통제될 것이다.

작은 깨달음으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3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