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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집착을 닦아 버리지 못하는 관건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

글/ 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수련에서 나는 일부 집착심을 완전하고 철저히 제거하지 못하는 원인이 우리가 아직 진정으로 그것을 진정한 자신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철저하게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착심 역시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자신이 장기간 관(關)과 난(難) 속에서 배회하며 전진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병업관 속에서 가아(假我)를 철저히 구별하지 못함

병업관 속에서 신체에 각종 괴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 표현되어 나오는 감각이 너무나도 진실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심지어 어떤 동수는 나와 교류할 때조차 늘 “나는 어디어디가 괴롭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이 바로 병업가상(病業假相)을 인정한 것으로, 병업을 조성한 배후의 실질적인 요소와 자신을 진정으로 분리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가장 보편적인 것을 말하자면, 사람이 어디에 종양이 자랐고, 어디에 염증이 생겼으며, 어디에 골질증식이 생겼다는 등등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바로 그곳에 한 영체가 엎드려 있는데, 아주 깊은 공간 중에 한 영체가 있다. 일반 기공사는 보지 못하고, 일반적인 특이공능으로는 보지 못하며, 다만 사람의 신체에 검은 기가 있는 것을 볼 뿐이다. 어느 곳에 검은 기가 있으면 바로 그곳에 병이 있다는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검은 기는 병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이 아니며, 더욱 깊은 한 공간 중에 그런 영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내보낸 이 장(場)이다.”

또 ‘2019년 뉴욕법회설법’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의 사상이 ‘나는 아마 더는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당신은 이미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표면에서는 ‘오, 괜찮다’라고 생각한다. 그럼 구세력이 보고는, ‘뭘 하는 거야?’라고 한다. (사부님 웃으심) 구세력은 이것밖에 할 줄 모르지 않는가? 그해의 예수, 석가모니 제자들을 그것은 모두 이렇게 박해했고, 그것은 모두 이렇게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를 도와 수련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래 좋아, 당신이 안심하지 못하는구나, 좋다, 당신의 업력이 좀 많아지면, 당신의 업력을 모두 집중시켜, 다 그곳에 내던진다. ‘아이고, 내 병이 재발했다!’”

내가 이해하기에 진정으로 병업가상을 조성한 근원은 다른 공간의 영체(靈體) 또는 구세력이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표현되어 나오는 괴로움은 바로 영체 또는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것으로, 병을 두려워하거나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그 가아(假我)가 괴로운 것이지 진아(眞我)가 괴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은 사람의 편안함을 감수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고통도 감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인식한다면 그것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입으로만 나는 병이 없다고 말한다고 해서 소위 괴로움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여전히 그런 괴로움을 느낀다면 이는 자신이 괴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가아가 괴로운 것이지 자신이 아님을 진정으로 구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똑똑히 구별할 수 없다면 이는 변칙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그럼 당연히 병업가상도 철저히 소실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에게 부합해 그것이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그러나 이렇게 저급적인 인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당신의 사상 경지가 어떤 것에 부합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지배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것을 발견할 때면, 마침 그것에 부합되기에, 그것이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심성관 속에서 가아를 똑똑히 구별하지 못함

수련생들이 비교적 흔히 “내게는 어떤 집착 어떤 집착이 있는데 나는 원래 이런 성격과 기질이 있고 정념(正念)이 강하지 못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그는 거듭해서 나는 집착이 있고 나는 원래 그렇다고 강조한다. 이는 이런 것들이 진아(眞我)가 아님을 똑똑히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무형 중에 그것들을 승인한 것이 아닌가? 아울러 끊임없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과정 중에서 그것들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수송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또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노(老)수련생임에도 심성관을 넘길 때 집착심이 일어난 것을 알면서도 집착심을 닦아 버리는 과정 중에 오히려 철저하게 그 집착이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구별하지 못한다. 때문에 집착심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지 못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이렇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하는데 나도 옳지 않음을 안다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집착심이고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이런 집착이 없어야 함을 아는 것 같은데 대화 중에는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는 잠재의식 중에서 여전히 장기간 형성된 사람 속의 관념이나 집착을 자신으로 간주한 것이다.

또 어떤 동수는 자신에게 집착이 있음을 알고 마땅히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알면서 곧 관련된 법리를 찾아내 자신을 설득한다. 마치 법리 속에서 위안을 찾은 것 같고 마치 집착을 제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집착 속에서 집착을 제거하는 것으로 집착하는 그 가아를 다른 사람으로 간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아(眞我)와 가아(假我)를 철저히 분리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는 모두 집착심이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철저하고 똑똑하게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착심을 철저히 제거하지 못하는 관건적인 원인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당신의 사상이 어느 유형의 생명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는데, 당신은 오히려 당신 사상 내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당신은 자신이 이렇게 하려고 한 것으로 여긴다. 실은 단지 당신의 집착 때문에 그것들이 작용을 일으켰고,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집착을 강화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의 신체는 마치 하나의 전달 매개체와 같아서 우리의 사상이 오직 바르지 않기만 하면 곧 다른 공간의 생명이 이를 이용하거나 강화한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것들 역시 정말로 진짜 자신이 아니다.

진아(眞我)에 대한 인식

사부님께서는 ‘캐나다법회설법’에서 “그러나 그 본질적인 당신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당신이다. 당신의 염두, 당신의 사상, 당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동기의 발원지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당신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는 “그러나 대법제자로 말하면, 모두 진정한 자신이 있으며, 목적은 세상에 내려와 법을 얻고 조사정법을 하거나, 당신이 당신 그 예전 세계 중생을 구도하려는 이 일념(一念)을 품고 왔는데, 그 진정한 당신은 보호 받았으며, 처음에는 진정한 당신 자신이 주도적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분 알다시피, 삼계에 진입한 후에는 마치 흙에 묻힌 것과 같이, 점차적으로 주도적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진정한 본원상의 나는 그 어떤 집착도 없고 그 어떤 사람의 관념이나 욕망이 없는 것으로 오직 아래로 층층 내려오면서 사람 속의 물질이 덮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집착이라도 좋고 내려놓지 못한 관념이라도 좋은데 한 저층 요소의 물질이 자신을 감싸고 있을 따름이다.

만약 어느 것이 진아(眞我)인지 인식할 수 있다면 그럼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이 아닌지 똑똑히 구별할 수 있고 구별이 더 철저할수록 그것을 배척할 수 있고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2004년 시카고법회설법’에서 “당신이 정념을 확고히 할 때, 당신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을 때, 나는 조금씩 당신에게서 떼어 내 준다. 당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그만큼 떼어 내고 당신에게 그만큼 제거해 준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오직 집착심을 찾을 수 있든가 아니면 충분히 찾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철저히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철저히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한 층차에서 돌파하지 못하는 것 역시 여기에서 근원한다. 우리는 평소 일사일념(一思一念) 중에서 늘 가아(假我)를 똑똑히 인식해야 하며 사상 속에서 그것을 똑똑히 파악해야만 비로소 그것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고 비로소 끊임없이 속인사유를 개변해 사람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이상은 개인이 소재한 층차에서 깨달음이니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부디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