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및 사존의 생신을 경축하는 대만 행사에서 천목으로 본 것
글/ 구육당(邱毓棠)
【정견망】
2021년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홍전(洪傳) 29주년이다. 5월 1일 대만 수련생들은 ‘배자[排字,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글자나 그림을 만드는 것]’ 행사를 통해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과 리훙쯔(李洪志) 사존의 생신을 경축했다.
1. 창세주께서 용을 타고 오시다
매년 이 날이 되면 배자활동 전에 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을 한다. 이는 가장 신성한 임무임에도 나는 올해 결석했다.
내 기억에 이날 현장에서 배자 활동을 하기 전에 어떤 동수가 천목으로 본 것을 말해줬다.
“당신은 올해 자리를 준비하는 작업에 참석하지 않았죠. 매년 오늘 자리를 준비하는 작업을 할 때면 늘 당신을 봤는데 올해는 보이지 않더군요. 내년에 우리가 서로 격려해 느슨히 하지 맙시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이는 사존께서 동수의 입을 빌려 내게 수련은 느슨해지지 말아야함을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비록 배자활동을 위해 자리를 준비하는 것이 수련은 아니지만 기점에서 정진하려는 그런 마음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나 자신이 가장 똑똑히 안다.
글자가 차례대로 완성되고 수련생들이 정해진 자리로 들어가자, 하늘에 무지갯빛 햇무리가 나타나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정말 신기하다고 외쳤다. 나도 매우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사존께서 금룡(金龍)을 타고 오셨다. 금룡의 몸 위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일곱 색깔 금 기린 모양의 조개들이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웠다.
사존께선 일곱 색깔 금룡의 머리 위에 앉으셨는데 사존께서 앉으신 자리 아래로 여러 층의 금빛 찬란한 일곱 색깔 금련(金蓮 황금 연꽃)이 있었으며 매 층의 금련은 또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3차원 동영상보다 더 아름다웠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나는 다만 몇 층의 금련만 그렸다. 천목으로 본 금련은 너무 밀집되어 있어서 아주 크게 그려도 여전히 다 그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무 밀집되어 있어서 정말로 그려낼 수 없었다.
사존의 뒷면은 여러 개의 큰 원이 있었는데, 머리 뒷면에 2개의 크고 작은 은색과 일곱 색깔 광환(光環 빛나는 원)이 있었다. 또 신체 뒷면에 아주 크고 빛나는 원이 있었으며 이 큰 원 안에 한 바퀴 한 바퀴씩 층층의 로즈골드 빛 연꽃이 있었는데 로즈골드 빛 꽃무늬 변두리에서 담담하면서 밝은 금빛이 발산됐다.
다시 바깥층을 보니 은백색의 아기 천사와 금색의 어린 영해(嬰孩)가 사존의 광환 안에서 나팔을 불고 있었다. 또 장난을 치거나 현수막을 펼친 것, 책을 들고 있는 것도 있었는데 모두들 아주 귀여웠다. 그리고 또 몇몇 꼬마 천사와 영해가 뿌린 은귤색(銀橘色)의 꽃잎이 하늘에서 내려와 조각조각 꽃잎이 동수들의 몸 위에 떨어졌다.
몸에 닿는 순간 에너지 진폭이 매우 강하고 또 매우 미시적이어서 일부 동수들은 소업상태에 처했고 정념이 조금 부족할 때면 몸에서 마치 밀물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은 반응이 있었고 그때면 곧 머리가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는데 사실은 모두 좋은 일이다.
다시 원 밖을 보니 속에 쩐·싼·런(真·善·忍) 세 글자로 한 바퀴 또 한 바퀴가 형성됐고 밖을 향해서 빛줄기로 글자가 발산됐다. 이 한 바퀴 한 바퀴의 색이 일곱 가지 빛깔을 점층적으로 이루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며 마음속에 오래도록 억제해온 감동이 단번에 밀려 나왔다. 다행히 당일 모자로 가려져 참아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오래 수련한 수련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가 본 수승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는지 심득을 교류하고자 했다. 교류를 통해 나는 사존께서 주신 모든 것을 법을 실증하고 수련생과 비학비수(比學比修)에 써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는 자비로운 사존께서 정진하지 않는 나에게 법을 실증하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2. 그림 그리기는 심성의 연마 과정
신성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나는 노수련생과 교류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좀 느리고 인물화에 대해서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해 비율을 적당하게 맞출 수 없으므로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했더니 노동수는 괜찮다고 했다.
그림 그리기는 마음을 닦는 과정이었으며 여러 번 밑그림을 그렸다가 거듭 수정했는데 마음을 닦아 집착을 버리는 과정과 같았다. 그림 그리는 시간은 얼마 들지 않았으나 몇 년이 지난 것 같았다.
“색채를 강렬하게 칠하며, 완전히 청성(淸醒)한 이념이 없는 관념을 방종케 한 그런 감수이다. 그러나 관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그것은 사람의 진정한 사상이 아니다.”(‘미술창작회 설법’)
며칠 동안 퇴근해서 그림을 그리다 막히면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전법륜’, ‘홍음’, ‘정진요지’를 공부했다. 오늘은 둘째 날로 정공을 연마할 때 눈앞이 매우 밝아지며 사존께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말씀도 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사존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사부님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사존을 보기 싫게 그려낼까 두렵습니다.”
사존께서는 여전히 웃으시며 아무 말씀도 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그 옆에는 행사 당일 사존 옆에 나타나 호법하던 불도신(佛道神)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들도 모두 웃으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제5장 공법에서 출정(出定)하니 이미 새벽이었다. 당시 나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그 ‘두려움’이 지워진 듯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쩐·싼·런(真·善·忍) 세 글자에서 ‘善’과 ‘忍’ 두 글자를 바르게 쓸 수 없었다. 그러자 더욱 급해졌고 급한 마음이 나오자 평소의 화내는 버릇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발정념으로 그것을 깨끗이 제거했다. 단번에 마음이 훨씬 조용해지고 평화로워졌으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빛나는 원을 그릴 때도 고험이 나타났는데 여러 번 포기하고 싶게 했다. 원을 그리는 선이 계속 비뚤어졌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컴퍼스를 이용하면 아주 둥글게 잘 그릴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지름길로 가려는 마음이었다. 수련에 어디에 지름길이 있는가?
나중에 나는 사존의 한 단락 법이 생각났다.
“또 인위적으로 무슨 방법을 취하고 지름길을 걸어 자신을 입정(入靜)하게 하거나 제고해 올라오게 하려고 하지 말라. 그럼 수련에 문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당신은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당신의 이 마음을 제고해야 한다. 뭇 신들은 모두 당신들을 보고 있다.”(‘유럽법회설법’)
나는 천천히 니들펜으로 빛나는 원을 하나하나 그려냈다. 그 과정에도 비뚤거나 굵거나 선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내게는 하나의 이치가 더욱 명확해졌다. 인생의 수련과정중에서 내가 봉착하고 마주했던 모든 심성 고험은 전부 우리의 제고를 위해 온 것이다. 그 과정에 나는 때로는 비뚤게 걸었었고 사람 마음과 쟁투심이 매우 강했으며 또 도중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이런 마음들은 모두 아주 평범해서 특별한 것 없는 심성 속에서 우리의 진성(眞性)을 용련(熔煉)했고 또 시시각각 우리의 수련과정을 원만하게 했다. 이 순간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마땅히 마주해야 할 수련과정임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림을 완성한 스케치 그림을 간직해 자신이 평소에 봉착한 일을 처리할 때 천천히, 둥글게, 느리게, 세상의 일체를 잘 원용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려 했다.
오늘 ‘창세주께서 용을 타고 오시자 상서로운 무지갯빛 햇무리가 나타났다! 금련이 피어나 불광이 비추다.’라는 한폭의 그림이 완성됐다. 사존의 모습을 그릴 때 나는 줄곧 두 눈 사이로 사존의 가슴 앞에 여러 겹의 ‘卍’자 부호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卍’자 부호를 사존의 가슴 앞에 그려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나중에는 그리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전법륜-논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대법은 또 시간·공간·수많은 종류의 생명 및 만사만물(萬事萬物)을 만들었으며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 이는 대법(大法) 真(쩐)·善(싼)·忍(런) 특성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구체적인 체현(體現)이다.”
불도신(佛道神)과 각종 만사(萬事)만물(萬物)은 모두 대법이 만든 것이며 卍자 부호는 부처의 일종 체현으로 사존을 부처의 체현으로 국한할 수 없다. 그래서 보았던 것을 그려 넣지 않고 사존의 황색 가사와 일곱 색깔 광염을 뿜어내는 법상(法相)만 남겼다.
이외에 사존 곁에서 호법하던 불도신(佛道神)들과 몇 분을 그려 넣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 그림에 그려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들 자신이 화면에 들어갈 대표자를 정해주셨는데, 출정 후 내 머릿속에 남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7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