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약매(若梅)
【정견망】
1. 가부좌 다리통증
사존께서는 《2018년 워싱턴DC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바로 생명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는 ‘성취생명(成就生命)’이란 4글자를 보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첫 번째 감수는 바로 오직 정진 수련한다면 곧 원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법을 8번 읽었을 때 나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협애하고 이기적임을 인식했다. 우리가 삼계(三界)에 온 목적은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다 많은 생명을 성취하러 온 것이다. 오직 세 가지 일을 잘하기만 하면 내 세계 속의 중생들은 모두 장차 미래의 생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 재능, 재물, 육신(肉身) 등 사람 속에서 소유한 일체를 사용해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마치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누구에게 주는 것인가? 우주 중의 일체를 육성한 것은 바로 대법(大法)이고 우리에게 일체를 주신 것은 사존(師尊)이시니 이런 것들을 모두 ‘생명성취’에 이용하라는 것이지 속인 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자신이 ‘소유했다’고 여기는 일체는 사실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나는 수련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다년간 가부좌를 할 때마다 늘 다리가 아파서 마음이 조용해지지 못했다. 문득 내가 너무 ‘통증(疼)’에 집착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다시 말해 육신에 대한 집착이었다. 석가모니 그 한 문(門)에서는 열반을 말하며 최후에 육신을 포기하지만 기껏해야 여래 과위에 도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수련은 위로는 봉쇄된 끝이 없는 것으로 적어도 육신에 대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층층 아래로 걸어 내려와 삼계까지 왔으며 육신은 단지 이 과정에서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육신이 있어야 삼계에서 기다리면서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존께서 법에서 말씀하셨다시피 통증 과정은 바로 소업(消業) 과정이다. 이에 나는 그런 흑색물질에 대고 말했다. “너희들은 장차 하나의 새 생명, 우주표준에 부합하는 생명(백색물질로 전화)이 되어야 하며 주동적으로 대법에 동화해 자신의 생명과 원래 지닌 일체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자 다리 통증이 순간적으로 완화되었다. 이 역시 ‘흑색물질’이 자신의 생명을 성취하는 것이다.
사존께서는 ‘2018년 워싱턴DC법회설법’에서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법 중에서, 당신이 이 일체를 새롭게 하려하고, 심지어 그런 부족함을 제거하여 좋은 것으로 변하게 하려 하지만, 그것은 버리기를 아쉬워한다. 그래서 그것은 당신의 정법 중에서 당신을 교란하고, 정법을 그것이 원하는 그런 것으로 변하게 하려 한다.”
법을 학습할 때 “버리기를 아쉬워한다(舍不得)”는 세 글자가 분명히 드러났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버리길 아쉬워하는 것들은 모두 수련 중에서 제거해야 할 것으로 심지어 그런 ‘부족함’마저 버리길 아쉬워한다면 어떻게 수련한단 말인가! 통증을 제거하려면 흑색물질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수련이다. 없앨 것은 없애야 하는데 없애야만 얻음이 있다.
오직 현재 생명을 버릴 수 있어야지만(육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 비로소 새로운 생명 즉 대각자로 성취할 수 있다. 사존께서 ‘2018년 워싱턴DC법회설법’을 발표한 후 나는 1시간 가부좌를 아주 가뿐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2. 치통
중공 온역(瘟疫)이 시작된 그날부터 나는 끊임없이 이가 아프기 시작했고 이미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함께 사는 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나중에 심각해진 후에야 자신을 찾아야함을 알았다.
엄마에 대한 정(情),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 특히나 남이 지적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등의 일부 집착심을 찾아내자 며칠은 좋아졌지만 그후에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내가 그 ‘통증’을 두려워하고 그런 ‘통증’ 자체를 중시함을 발견했다.
사존께서는 ‘시드니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되돌아가려면 이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즉, 하나는 고생을 겪는 것이고 하나는 깨달음이다.”
통증을 두려워함은 바로 고생을 겪으려 하지 않는 것이니 만약 고생을 겪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럼 되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사존께서는 또 ‘홍음’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고 하셨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고생을) 낙으로 삼았는가?”
낙으로 삼지 못했다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달리 말하자면 법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의 통증이라면 속인식의 ‘억지로 참음’을 해낼 수 있지만 장시간 법으로 가늠하지 못하면 지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표현인가? ‘참고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즐겁게 ‘통증’을 상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이런 즐김이 소업(消業)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닌가! 당신이 수련해서 제고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는 “일거사득(一擧四得)”이 아닌가! 한 진정한 수련인처럼 그렇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안으로 찾는 동시에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통증’이 가상임을 알기에 담담하게 그 ‘통증’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3. ‘통증’부정
구세력은 우리 매 대법제자에게 하나의 반(盤)을 설치해주었다. 전반 수련과정 중에서 매일 무엇을 하고 박해 중에서 몇 번을 때리고 몇 번을 소리 지르는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잘 배치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세력에 대해 속수무책이란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사존께서는 구세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셨는가? 현재 내 층차에서의 인식은 이렇다. 우선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해야 하고 그 다음 장계취계(將計就計)한다. 그렇다면 사존의 ‘계책(計策)’은 무엇인가? 내가 이해하기에 첫째는 사존께서 우리에게 불법신통(佛法神通)을 주셨는데 바로 매일 하는 발정념으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바로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이다.
작년에 한 가지 항목을 진행하는 중에 나는 수련 중에 지금껏 겪어본 적 없었던 고험을 겪었다. 사타구니 부위가 60일 동안 아팠는데 아주 심할 때는 3일 밤낮을 눈 한번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표면 피부는 원래와 같아 겉으로는 아무 차이도 없었지만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낮에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마찬가지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지만 열 걸음만 걷고 나면 곧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 좀 편해졌다. 저녁에는 너무 아파서 침대와 바닥에서 뒹굴었고 옷도 온통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극한까지 감당했을 때 머릿속에서 진아(眞我)와 가아(假我)가 곧 정면으로 대결하기 시작했다.
가아: 병원에 가자, 금방 좋아질 거야.
진아: 너는 신(神)인데 속인 의사가 어떻게 신의 상태를 개변한단 말이냐?
가아: 동수가 그러는데 너 이건 당뇨병 증상이래. 네 부친이 바로 당뇨병으로 세상을 떴고 나중에는 톱으로 한쪽 다리까지 잘랐잖아.
진아: 처음 법을 얻을 때 사존께서 우리 신체를 청리해주셨는데 무슨 ‘당뇨병’이란 말인가, 나와는 무관해.
가아: 그럴만한 능력이 없으면 함부로 일을 맡지 않는다고 했어. 너 자신에게 그렇게 큰 감당능력이 있는지 모르잖아! 또 무슨 항목을 하면 내년에도 또 이런 고통을 겪을게 아니니! 차라리 법을 실증하는 다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진아: 이건 나의 사명인데 완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사존께 해명하겠니?
가아: 너는 명혜망의 요구에 따라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잖아.
진아: 안으로 찾는 것은 조건이 없는 것으로 바로 내 잘못이다. 구세력 너는 나와 동수 사이에 간격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말라, 나는 네 속임수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진아와 가아가 끊임없이 다투면서 각종 좋지 않은 염두들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는 아주 어렵게 이것을 부정하면서 이는 구세력이 나를 끌어내리려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당시 내 느낌은 호흡하는 것마저 곤란할 정도였는데 일 분 일 초가 모두 구세력의 요소와 격전을 벌였다.
이때 남동생이 사다준 운남백약(雲南白藥 역주: 중국 제약회사 이름)의 분무제를 통증 부위에 몇 번 뿌리자 단번에 불이 붙어서 타는 듯했다. 종아리 통증이 감소되기는커녕 심장마저 견디기 힘들어졌다(왜냐하면 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기로 분무한 약을 다 씻어버렸다.
어느 날 저녁에는 실로 너무 견디기 힘들어 사존께 이렇게 요청했다.
“제가 두 시간만이라도 잘 수 있게 해주세요!”
동수들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해주었고 그날 밤 나는 정말 두 시간을 잤는데 아주 달콤하게 잘 잤다. 사존께서는 나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끊임없이 9자 진언을 외우니 때로는 좀 완화되긴 했지만 저녁이 되면 여전히 통증을 참기 힘들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여동생(동수)이 우연히 우리 집에 왔다가 나의 이런 상황을 보고는 말했다. “사존께서 나를 보내신 거야. 언니, 조급해하지 마. 앞으로는 내가 매일 차를 몰고 와서 언니가 하는 항목을 맡아서 할께.”
내 눈에서는 단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육친을 만난 것처럼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는데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나는 원래 아주 강한 사람이라 여겨왔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 언니도 제고해야 해.”
나는 눈물을 훔치고 동수에게 말했다.
“가자, 가서 올바른 일을 하자.”
그때 이후 여동생(동수)이 매일 아침이면 나를 데리러 와서 저녁이 되면 다시 집에 데려다주었다. 항목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했다.
외지 동수가 우리 집에 와서는 말했다.
“흉금을 좀 더 크게 하세요. 한 가지 점에서만 집착심을 찾지 말고 뛰쳐나오세요. 우리는 자신을 위해 감당해야 할뿐만 아니라 항목을 위해서도 감당해야 하고 자기 세계 속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감당해야 합니다.”
나의 용량이 확대되자 통증도 많이 줄어들었다.
사존께서는 ‘휴스턴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모순에 부딪혔을 때 우선 마땅히 그것을 감당해야 하며 아울러 자신이 참을 수 있어야지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으로 승화해 올라올 수 있다.”
당시 같은 항목에 참여한 동수들 모두 각기 다른 정도의 교란이 있었다. 어떤 동수는 손목을 다쳐서 작은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어떤 동수는 복통이 있었으며 어떤 동수는 치통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동수도 신체적인 교란 때문에 법을 실증하는 일을 그르치진 않았으며 모두들 매일의 질과 양을 보장하며 임무를 완성했다(이 항목은 시간의 제한이 있고 또 일관된 작업이었다).
동수들은 각자가 맡은 부분을 견지했고 나로 하여금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존경과 탄복을 느끼게 했다. 구세력은 바로 이 항목을 겨냥했던 것으로 그 주요원인은 나와 동수들이 법에서 공통된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고 정체에 누락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락은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사존 법상(法像) 앞에 꿇어 앉아서 점화해주시길 청했다. 그러자 사존께서는 내 머릿속에 2글자 능각(棱角 역주: 원래 모서리나 뾰족한 각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자신의 재주나 능력을 믿고 지나치게 다투는 것을 의미함)을 넣어주셨다. 나는 곧 능각의 표현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당문화의 중독이 아주 심해서 늘 자신이 옳다는 마음, 일을 하려는 마음,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명예을 구하는 마음, 동수에 대한 정, 쟁투심, 동수의 비협조를 원망하는 마음, 협애한 이기심으로 남을 포용하지 못하는 마음 등이 있었다. 나는 곧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사존을 믿는가? 대법을 믿는가? 동수를 믿는가? 자신을 믿는가? 너는 네가 신불(神佛)로 수련성취 될 수 있음을 믿는가? 너는 이런 마난이 정말 좋은 일이라고 믿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정체(整體)를 형성할 수 있는가?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도 만족해야 한다.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협조해야 하며 이 역시 자아(自我)를 내려놓는 과정이다.
둘째, 일이 있으면 독단적으로 하지 말고 상의해야 한다. 자기 의견만 고집해선 안 되며 당문화 중의 ‘강세(强勢)’를 제거해야 한다.
셋째, 사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고 대양처럼 큰 흉금을 지니고 겸손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일체를 대해야 한다. 자신이 잘못을 했다면 사과해야 할뿐만 아니라 억울함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사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곧 제고 속에 있는 것이다.
당시 항목도 제때 완수되었고 나는 곧 대량으로 법을 학습했다. 하루에 4~5강을 읽었다. 가부좌를 하다 다리가 아프면 무릎을 꿇고 법을 배웠고 연공 역시 꾸준히 견지했다. 특히 5장 공법은 처음부터 등에 땀이 나거나 심지어 온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동수의 말을 빌리자면 아플수록 더 가부좌를 해야(越疼越盤) 한다.
다리가 아픈지 61일째 되는 날 새벽 3시가 좀 넘어 나는 통증 때문에 깨어났다. 그럼 좋다, 발정념을 하자! 손을 들어 단수입장을 하자 온몸이 다 에너지로 감싸였고 몸과 손이 흔들렸다. 나는 가급적 움직이지 않도록 통제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그런 후 나는 사타구니 부위에서 손바닥 크기의 검은 색 가운데 붉은색 무늬를 띤 암석을 보았다. 그 붉은색 무늬는 마치 바위 마그마처럼 보였는데 단지 더 섬세하고 거무튀튀한 것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였다.
나는 곧 사존께 제자를 가지해 삼매진화(三昧真火)로 그것을 태워주실 것을 청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나는 이에 외쳤다. “호법신이여 나를 도와주오.”
나의 호법신은 용부(龍部)인데 큰 용, 작은 용이 모두 있는데 다 금룡(金龍)이었다. 이는 사존께서 박해 초기 내개 보여주신 것이다. 당시 나는 밖에 나가 진상책자를 나눠줄 때 두려운 마음이 있었고 속인의 문 앞에 진상자료를 놓을 때면 심장이 심하게 떨려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당시 사존께서는 꿈속에서 내게 호법신의 형상을 분명히 보게 해주셨다. 꿈속의 장면은 이랬다. 내가 집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더니 한 마리 금룡(金龍)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가장 큰 용이 우리 집 건물 테라스 위로 내려왔는데 우리 집은 4개의 현관이 있는 7층 건물인데도 금룡의 몸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의 머리와 꼬리는 모두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당시 나는 건물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금룡이 아래로 머리를 내밀더니 주둥이로 나를 감쌌는데 아주 친근했다. 나는 아주 똑똑하고 진실하게 용의 머리와 용의 눈, 용 코 위의 주름을 보았다. 내 신체는 또 그런 작은 용들로 둘러싸였다. 그들은 모두 서 있었다. 그때 이후 나는 두려운 마음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때 큰 용이 내 사타구니를 향해 갑자기 불을 뿜었는데 불은 나선식으로 돌면서 신속하게 내 몸을 뚫었는데 마치 드릴과 같았다. 이어서 드릴 비트가 끊임없이 깊어지더니 하나하나 공간을 돌파하고 한 층 한 층 무수한 공간을 돌파했다. 어떤 공간은 작아서 작은 용들이 직접 날아가 불을 뿜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한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됐다.” 그리고는 내 사타구니 통증이 사라졌다. 나는 단수입장(單手立掌)에서 쐉서우 허스로 손자세를 바꾸고 사존께 감사드렸다!
60일간의 정사대전으로 나는 체중이 7~8kg나 줄어들었고 정말이지 사존과 동수들에게 부끄럽다! 정체를 잘 원용하지 못하고 끝내 신사신법에서 에누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존께서는 여전히 이 못난 제자를 자비로 가호해주셨고 동수들은 사심(私心) 없이 나를 도와주었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78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