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명혜망에 보면 거의 매일 노년동수들이 납치・판결 받거나 심지어 박해로 사망한 사례들이 올라온다. 어느 날 외지 동수와 이 일에 대한 인식을 교류하는데 그 동수가 말했다.
“내가 접촉한 노년동수들은 일을 하느라 바빠요.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는 데는 모두 적극적이지만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에는 누락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마음을 지닌 채 내려놓지 못하는데 이것이 분명 노년 동수들이 구세력에게 틈을 타 박해를 받게 된 근본원인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련에 누락이 없었다면 구세력이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동수는 80대인 자기 모친을 예로 들었다. 모친은 늘 며느리와 모순이 있는데 며느리가 말을 조금이라도 심하게 하면 아예 꽁해져서 몹시 화를 낸다고 했다. 동수가 법에서 문제를 봐야 하며 속인과 모순이 발생하면 모두 대법제자의 잘못이니 반드시 자신이 수련할 것이 있다고 권고하면 모친은 오성이 좋아서 곧바로 알아듣고 주동적으로 권위적인 자세를 내려놓고 즉시 며느리에게 사과를 한다고 했다. 동수는 “체면이나 권위를 내세우는 것 등은 모두 사람마음이지만 아주 많은 동수들이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수많은 가정모순 등을 초래합니다.”라고 했다.
동수의 말을 들은 후 나는 즉시 사부님께서 《정진요지-환경(环境)》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당신들을 제자로 삼고자 하나 당신들 자신이 제자가 되려 하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수련 중에서 제거해야 할 마음 하나하나가 모두 장벽으로서, 거기에 가로놓여 당신이 수련하는 길을 막고 있다. 법 자체에 대하여 아직도 견정(堅定)하지 못하다면 수련할 수 없다.”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정말로 수련의 길에서 장애가 된다.
어떤 동수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이렇게 생각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수련환경이 좀 느슨해지고 대량의 시간을 들여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또 이런저런 일들이 그녀를 교란했다. 아이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아들이 취업을 하면 나는 더는 마음을 졸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일이 아니었고 여전히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있어 그녀의 마음을 애태우게 했다.
어떤 노년 동수는 홀로 딸을 키우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딸아이가 대학원을 졸업하기만 하면 좀 편해지겠지.’
하지만 딸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고 곳곳에서 정면으로 엄마와 충돌했다. 그녀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딸은 고집스레 서쪽으로 갔다. 그러자 그녀의 수련상태도 줄곧 좋지 않아졌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알려주셨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돈을 좀 많이 벌어서 집을 잘 안정시켜 놓으면, 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나는 다시 도를 닦겠다.’ 나는 당신이 망상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밖에, 당신이 뒷근심이 없고,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煉功)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중시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 물론 단번에 이것을 끊기는 그리 쉽지 않다. 수련이란 기나긴 과정으로서, 서서히 자신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문제에 봉착해 다시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읽으니 완전히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글자 수나 문장부호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낀 감수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문제에 봉착하면 늘 사람의 사고에 빠져들며 법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사고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단 말인가?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번거로운 일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번거로운 일에 부딪힌 것은 바로 사람마음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은 모두 완전히 잘 맞물려있는데 어찌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수련의 문에 들어서면 우리 인생의 길은 수련을 위해 온 것이다. 대법은 속인사회 속에 개창했지만 도리어 요구는 더욱 높다. 조금이라도 모호하거나 얼버무려서는 안 되며 그 어떤 일이든 모두 사람마음이 반영되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대법에 따라 자신을 수련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각도에서 서서 문제를 볼 것인가 하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관건적인 문제다.
문제에 봉착해서 사람에 입각해 문제를 생각하는 그 자체가 바로 대법에 대해 충분히 견정(堅定)하지 못한 표현이다. 만약 우리가 문제에 봉착해서, 설령 우리가 명백히 생각하진 못할지라도, 자신이 수련인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어떻게 자신을 대조할 것인지 사고해야만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즉시 내게는 사부님이 계시니 사부님께 좀 일깨워달라고 청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주에 어떤 동수가 자신은 더는 수련해나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사부님께 도움을 청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 수련한 게 이렇게 형편없는데 무슨 낯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해요. 나는 줄곧 문제에 부딪혀 사부님을 번거롭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왔어요.”라고 말했다.
문제에 부딪혀 사부님께 구하는 것 역시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체현이다. 우리는 수련인으로 수련 중에 부딪힌 문제에 대해 사부님이 아니면 누구에게 구한단 말인가? 속인에게 수련 중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문의하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게 아닌가? 그 역시 해결하지 못하며 또 좋지 않은 인상만 남겨 대법에 먹칠을 할 것이다.
사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마음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수련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수련한 시간의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으며 오직 착실히 수련하는 정도만 본다. 사부님께서는 “씬씽(心性)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나 높다”는 법리를 말씀하셨으니 마음수련만이 제1위인 것이다. 법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 것으로 사람을 구하는 위덕도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84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