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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집착’에 대한 작은 깨달음

글/ 제자

【정견망】

무엇이 근본집착인가? 내가 이해하기에 근본적인 집착은 바로 대법수련을 통해 세간의 좋은 것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집착이다.

그러나 대법수련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반본귀진(返本歸真)해서 정과(正果)를 수련 성취하는 것으로 명백히 말하면 그것은 바로 선(仙)을 닦고 도(道)를 얻으려는 하나의 마음이다.

하지만 속세에 떨어진 나는 처음 법을 배울 때 내심이 아주 복잡했다. 아마 수련을 하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보다 많은 생각은 대법이 내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대법이 나의 평안을 보호해주며 대법이 나를 더 젊어보이게 해줄 수 있다거나 심지어 영원히 청춘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는 여자에게 상당히 매력이 있는 것이다)이었다.

또 사람의 행위에 대한 대법의 요구는 나로 하여금 일을 잘못해서 업을 짓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럼 큰 난이 없을 것이다. 대법은 또 내 성격을 고쳐서 나를 더 침착하고 상화(祥和)하며 아름답게 만들어 더 이상 당황해서 허둥대지 않게 할 것이다. 대법은 내게 건강한 심리를 지니게 할 수 있고 세간의 득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즐겁고 밝게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대법은 우리 가족을 모두 불은호탕(佛恩浩蕩)의 행복에 젖어들게 할 것이다. 대법은 이 무상한 속세에서 나의 가장 큰 의지처이자 희망이 되었다.

때문에 나는 매번 대법을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찢어지는 통증, 가슴 아픈 통증,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고통을 느꼈다. 이런 마음속 고통 중에는 일부 명백한 일면의 요소도 있었겠지만 보다 많은 생각은 만약 법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였다. 만약 법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천상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한 게 아니었다.

무의식중에 나는 대법을 세상에서 가장 이득이 되는 투자이자 인생을 편안하게 해줄 가장 좋은 투자로 생각했는데 이 얼마나 더러운 마음인가!

하지만 사존께서 이런 것들을 위해 대법을 전하셨겠는가?

《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사존께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사상의 작용 하에서 대법(大法)의 문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수련 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이후에 책을 보고 법을 배우며 정진하는 중에서 자신이 입문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법(大法)에 들어왔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이 비록 잘하지 못했음에도 사존께서는 나를 내치지 않으셨고 여전히 나를 보호하고 가지(加持)해주셨다. 또 끊임없이 점화하여 자신의 근본 집착을 버릴 수 있게 하셨다.

이렇게 다년간 수련하면서 나는 마치 딸아이가 “엄마는 평생 병에 걸리지 않았고 얼굴색도 희고 불그레해서 동년배들보다 훨씬 젊어보여요.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법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요.”라고 한 말과 같았다.

사실 자신의 근본 집착심을 인식한 것은 시간이 이미 아주 오래되었다. 하지만 속인 중에서 미혹이 너무 심하고 속인의 집착과 욕심이 너무 많았다. 먹을 것을 구하고 마실 것을 구하며 편안함을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안일한 마음을 추구하는 등 각양각색 만족을 모르는 구하려는 마음이 나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대법 중에서 속인 중의 좋은 것을 구하게 했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도를 닦으려는 마음이 한 속인으로 즐겁게 살려는 마음보다 적었으며, 이성적으로 반본귀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두 손으로 죽어라 사람을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사람이 되는 것 역시 즐겁다고 여겼다. 때문에 비로소 속인과 잡담하는 게 재미있었고 가십을 말하면서 아주 흥분하곤 했다. 업무 관계로 조용하고 적막한 산구(山區)에 머무는 날이면 눈에서 생기를 잃었고 번화하고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도시에서 밀크티를 마시는 것을 그리워하면서 생각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속인에 깊이 미혹된 집착하는 내가 ‘진아(眞我)’인가? 분명 아니다. 나의 ‘진아’는 이미 후천적으로 형성된 그런 강대한 ‘가아(假我)’에 의해 깊이 가려졌다. 동시에 나 역시 이는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임을 의식했고 그것들이 이런 수법으로 나의 수련의 길을 가로막으려 하는 동시에 이를 구실로 내게 마난과 교란을 증가시킨 것임을 알았다.

나는 또 근본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바로 수련하는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비록 주의식이나 진아의 작용 때문에 그래도 약간이나마 수련하려는 마음이 존재할지라도 심성을 제고하는데 곤란이 중첩될 것이고 관을 넘기는 것 역시 자주 실패할 것이다. 주로 마음속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속세를 떠나야 할 수행자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상적으로 그 높이까지 상승할 생각이 없으며 이 하나의 초월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했든 역시 하나의 속인이다.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면 그럼 전 우주에서 모두에게 중시 받는 대법제자다. 간단히 말하자면 간단하고, 복잡하게 말하자면 복잡한데 일념을 돌파하면 그럼 곧 전혀 다른 넓은 세계가 펼쳐진다.

나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동수들이 모두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한번 자문해보기 바란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사존의 자비하신 점화에 감사드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9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