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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가 마음에 들어가지 않는 뼈저린 후회

글/ 육문(陸文)

【정견망】

20년간 수련의 길에서 나는 일찍이 최선을 다해 법을 배우고 닦으며 해왔다고 여겨왔었다. 하지만 사실상 아주 많은 때 수련 제고할 기회를 놓쳤으며 그러고도 까마득히 모르면서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선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했다.

최근에야 비로소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비록 단독으로 쟁투심을 독립된 단락으로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쟁투를 언급하신 곳이 몇 십 곳에 달하는 것을 발견했다.

“진정으로 수도(修道)하는 사람 중에도 역시 이런 반영이 있어 서로 간에 불복하는데,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4]

내가 이해하기에 쟁투심은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집착으로 이렇게 해야만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년간 법(法)의 문자를 보았지만 이는 법을 얻어 마음에 들어간 것과는 같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전에 10년을 한결같이 매일 아이에게 외국어 녹음을 틀어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속에 들어가지 않았고 배우거나 기억나는 게 전혀 없으며 외우거나 말을 하지도 못한다. 비록 매일 녹음을 들었음에도 마음을 이곳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의 진보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이해하는 것은 마음이 그 속에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런 차이가 없다.

법을 공부할 때 나는 단지 보기만 하고 대조하지 않았으며 사고하거나 정리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읽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없었으니 보고도 보지 않은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법을 스쳐지나간 것이 아닌가!

둘째 정념을 중시하지 못했다.

자신의 발정념을 반성해보면 자시(子時 역주: 중국 시간으로 자정을 말하며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깨어있을 때도 정신이 흐릿할 때가 있었으며 설사 흐릿하지 않을 때라도 다른데 정신이 팔린 경우가 많았다. 평소 정(定)에 들어갈 때가 적었고 조용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또 어떤 동수를 보면 발정념을 하면서 늘 손이 넘어가고 어떤 이는 거의 잠을 자듯이 한다.

최후 대심판(大審判) 때 만약 내게 “전 우주가 정념으로 악(惡)을 제거할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다. 졸리고 바쁘고 피로하거나 번뇌하고 화를 내는 것 등은 그 어느 것도 전장(戰場)에서 대오를 이탈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적진을 함몰시키기 위해 용감하게 달려 나가는데 나는 쿨쿨 잠을 잔다면 정법제자의 수승한 영광은 나와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다. 발정념을 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고 견정하게 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것은 바로 우주정법(宇宙正法) 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바로 좌시하고 상관하지 않은 것이니 살인방화를 보고도 무시한 것이다.

또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최근 《밀라레빠 수련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았다. 그중에 한 단락 밀라레빠 존자의 바른 깨달음이 나온다.

“저 배고픈 사람들이 비록 음식을 먹으면 허기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저 알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에는 기아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기아의 고통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진지하게 음식을 먹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성(空性)의 도리도 단지 이해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공성을 증오(證悟)해야만 한다.”

비록 길은 달라도 도달하는 곳은 같은데 쟁투, 과시, 질투 등의 사람마음을 오직 내가 아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철저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이는 층차를 제고할 기회를 조용히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한 차례 한 차례씩 각종 구실 또는 대법(大法)으로 덮어 감추어 지나갔으며 心性(씬씽)을 제고하지 못했고 한 차례 한 차례씩 기회를 놓쳤다.”[1]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갈수록 크다.”[2]

모든 기회를 놓쳐버리면 우리는 수련을 놓치고 정법을 놓치고 하늘로 돌아가길 놓친 것이다. 때문에 사람마음을 발견했을 때면 반드시 단호하게 철저히 조금도 남김없이 제거해야 한다. 덮어 감추거나 단점을 감싸고, 교활하게 변명하거나 얼버무리는 것은 모두 앉아서 제고의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또 진상을 알릴 때 진솔하지 못했다.

나는 또 일찍이 노파심에서 거듭 진상을 알렸지만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의 내심에서 진솔함과 자비가 부족했고 포용이 부족할 때면 언어의 작용이란 연약하고 무력해서 사람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진상의 소중함은 진솔함에 달려 있고 내심에서 우러나는 남을 위하려는 마음이라야만 거짓을 타파할 수 있다. 진상의 좋은 점은 믿음에 달려 있는데 매 한 글자 모두 속인의 퇴고를 거치고 시간의 고험을 거쳐 실사구시하고 목적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진상의 아름다움은 정교함에 있는데 거칠게 함부로 만든 게 아니라 곳곳에서 마음을 써서 정교하고 아름답다. 진상의 자비는 선량함에 있는데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틈을 노리거나 보복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오직 선을 권하고 악을 멈추게 할 뿐이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하려면 노자의 도덕, 불타의 자비, 예수의 용인(容忍)을 뛰어넘어야 한다. 자신을 세상에서 행동하는 신(神)으로 간주하고 신의 위엄・사랑・정의로 중생을 위로하고 중생을 받쳐주며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 만약 진상을 알리는데 진솔하지 못하거나 믿음을 잃거나 선량함을 잃는다면 그럼 때로는 해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절대 불법(佛法)을 스쳐지나가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나의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책을 본다고 법공부가 아니며, 명상이 정념(正念)이 아니고, 담담히 여기기가 내려놓음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선을 권하는 것이 진상 알리기가 아니다. 이를 일률적으로 논하고 한데 섞어 말하지 말아야 한다. 전자와 후자의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천리로 벌어진다. 겉보기에는 수련과 정진의 구별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신을 선택하는가의 차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책을 읽고 책을 외운다고 해서 다 법공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읽을 때마다 좀 명백해졌다면 바로 제고한 것이며, 당신이 한 번 보고 나서 혹시 단 한 가지 문제라도 명백해졌다면, 그 역시 진정으로 제고한 것이다.”[3]라고 하셨다.

모순의 충돌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자신의 수련을 대표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왜냐하면 진정한 수련은 우리가 말하는 그 心性(씬씽) 표준이 요구하는 것에 따라 진정하게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4]라고 말씀하셨다.

이익 앞에서 단지 담담히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放下執著輕舟快)”[5]라고 하셨다.

진상을 알릴 때 수량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사람을 구한다(慈悲能溶天地春 正念可救世中人)”[6]고 하셨다.

만나도 스쳐지나가고 배워도 정진하지 못하며 수련을 해도 정과(正果)를 얻지 못한다면 대법을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장차 영원한 유감이자 끝없는 비애가 될 것이다. 구세력(舊勢力)이 천백년 이래 정교하게 안배한 계획이 바로 우리가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는 것을 교란해 우리의 의식이 청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혜안(慧眼)으로 진리를 알고 시시각각 주의하면서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시시각각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절대 대법을 스쳐지나가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소견이니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을 배우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2》<심자명>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2》<법정건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