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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 시와 그림—수련 때문에 마난에 처한 어느 파룬궁 수련자의 심경

【정견망】

북경 파룬궁 수련생 백소화(白少華 바이사오화)가 감옥에서 그린 작품

사사로운 정(情)을 모두 버려 대의(大義)를 이루니
웅대한 뜻 가없는 하늘처럼 넓구나
천지를 머리에 이고 중생을 가엽게 여기고
머리가 떨어져도 바람에 날리는 모자처럼 여겨야지만
영웅이라 할 수 있노라

舍盡私情成大義
壯懷浩長空
頂天地 憫眾生
頭落只當帽隨風
——是謂之 英雄

이상은 북경 파룬궁 수련생 백소화가 정주(鄭州) 백묘(白廟) 노교소에 불법으로 감금된 기간에 그린 그림과 그림 속에 쓴 시 작품이다. 작가는 시와 그림을 통해 자신이 감옥에서 억울하게 감금되거나 심지어 고문을 받은 후에도 대법수련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경지(境界)가 승화되는 속에서 체험한 깨달음을 표현했다.

지난 20여 년 간 중공(中共)의 잔혹한 탄압 하에서 수많은 중국 대륙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비록 여러 차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숱한 고문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줄곧 신앙(信仰)을 견지해왔고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남겨놓았다. 그중 적지 않은 수련자들이 감옥의 험악한 환경 속에서 시와 그림을 이용해 자신의 심지(心志)를 펼쳐냈고 다행히도 그중 일부 작품들이 보존되어 살아남았다.

백소화는 중국 인민(人民)대학 졸업생이다. 명혜망(明慧網) 자료에 따르면 1999년 중공의 파룬궁(法輪功) 박해가 시작된 후 백소화의 모교 ‘동문’이자 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전문적으로 설치한 ‘610’ 사무실 전 중앙소조 책임자 이람청(李嵐清 리란칭)은 특별히 그를 ‘엄하게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그의 일가족 모두 중공의 중점 박해대상이 되었다.

백소화 본인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불법 감금되었고 전기고문 등 숱한 혹형을 받았다. 그는 고문후유증으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2005년에는 북경 해전(海澱) 청하(清河)간수소에서 목숨을 건 단식으로 탄압에 항의하다 당국의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으로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백소화의 아내 계뢰(季磊 지레이) 역시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노교소에 불법 감금되어 고문을 받았고 또 수감 기간도 연장되었다. 당국은 또 그녀에게 백소화와 이혼하라고 협박했다.

백소화의 딸 백진우(白真宇 바이전위)는 일찍이 네 살 때 경찰에게 불법으로 납치된 적이 있다. 이외에도 엄마와 함께 탄압을 피해 집을 나와 떠돌아다니며 구호에 의지해 어렵게 산 적도 있다.

또 백소화의 형이자 동북사범대학 전 철학과 강사 백효균(白曉鈞 바이샤오쥔)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다가 2003년 7월 중공의 박해로 사망했다.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 수련원칙에 기반한 불가(佛家)의 상층 수련대법(修煉大法)으로 사람의 도덕과 신체를 신속하게 제고할 수 있었다. 1999년 7월 중공 전 두목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은 파룬궁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널리 환영받으며 수련자 수가 공산당원 수를 초과하자 탄압명령을 내렸다. 그 후 지난 22년간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불법감금, 노동교양, 형사판결 내지는 고문으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소개하는 시와 그림들은 모두 백소화가 창작한 것들이다.

백소화의 그림에는 흔히 한 수의 시가 배치된다. 그는 그림 속 등장인물의 표정과 시를 결합해 자신의 심경과 바람을 표현했다. 그는 “내심에 아름답고 광활한 세계가 있으면 조용히 쉬면서 노닐 수 있다”고 했다.

하늘이 한줄기 맑은 샘물을 내리시니
혼탁하고 도가 막힌 세상도 두려워하지 않노라
바른 믿음은 늘 바른 길로 통하나니
진실로 선량하고 굳게 견디며 원용하노라

天降清泉一泓
不怕世濁道窮
正信總有正途通
誠善堅忍圓容

하늘이 악을 없애려 신령한 호랑이 내리시니
자비를 품고 위엄을 드러낸 상이로다!
귀신과 짐승 미쳐 날뛰는 말세에도 구애받지 않고
온갖 좌절에도 돌아보지 않누나
늘 험한 길을 가며 풀숲을 두루 다니니
오직 혼란을 없애고 창생을 보호하려 하니 정법(正法)은 영원히 창성하리라

天意除惡神虎降
懷慈顯威像
無拘末世鬼獸狂
百折不回向
常行險道 踏遍草莽
只爲滅亂護生 正法永昌

백소화가 금관을 쓴 여인의 그림을 막 완성했을 때 한 차례 심한 전기고문을 받았다. 당시 몇 개의 전기충격기에 동시에 감전당해 온몸이 뒤틀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의연히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 감옥 경찰은 전기고문이 끝난 후 그를 수감실로 데려갔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후 그는 이 그림 아래에 시를 적어 아름다운 그림 뒤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고난을 겪은 감수와 깨달음을 표현했다.

옥처럼 어여쁜 얼굴 빛나는 미소 보이지만
괴롭고 힘겨울 때 그 누가 알랴!
꿋꿋이 버텨내며 자비하니 바른 믿음엔 두려움 없어라

玉容芳菲 笑映霞輝
辛酸苦時 誰人知會
堅忍慈悲 正信無畏

더러운 진흙에서 나온 성스런 연꽃
혼탁한 세상에 화려한 아름다움 드러내네
지금은 대의(大義)를 모르니
슬픔이 하늘을 흔드누나

出汙展聖蓮
濁世芳華現
大義今不識
悲懷蕩長天

야란음(夜蘭吟)-밤에 난초를 읊다

고요한 밤의 한란 맑은 향기 흩날리니
달빛과 조화 이뤄 뜻은 더욱 은은하네.
미몽에 빠진 세인들 하늘 밖 향기 알기 어려우니
춥고 쓸쓸한 적막에도 뜻을 굳게 하고
비바람에도 신선의 자태로 가뿐히 서서!
긴 꿈에서 깨어나도록 소리 높여 노래하네, 소리 높여 노래하네!
자비의 눈물 이슬이 되어 아침햇살에 반짝이누나

靜夜幽蘭散清芳 和月光 意悠揚
夢迷世人 難識天外香
淒寒寂寥堅心志 仙姿輕柔立風霜
爲醒長夢久吟唱 久吟唱
慈悲淚落成露 映朝陽

백소화의 그림은 소묘 위주이고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하다. 몇몇 그림에서 용의 몸통을 녹색으로 그렸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마침 수중에 적색과 녹색 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한 경찰이 그의 이 그림을 보고는 “이게 그린 것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사사로운 정(情)을 모두 버려 대의(大義)를 이루니
웅대한 뜻 가없는 하늘처럼 넓구나
천지를 머리에 이고 중생을 가엽게 여기고
머리가 떨어져도 바람에 날리는 모자처럼 여겨야지만
영웅이라 할 수 있노라

舍盡私情成大義
壯懷浩長空
頂天地 憫眾生
頭落只當帽隨風
——是謂之 英雄

아내에게 보내는 시

한 떨기 꽃을 빌려 당신께
향기 가득한 옛날을 보냅니다.
서리바람 몇 차례나 신록(新祿)을 괴롭혔어도
향기로운 운치 몇 가닥만은 없애기 어렵습니다.

흠 없는 옥을 보호하듯 마음을 깨끗이 하고
봄이 다시 오길 기다린다면
새로운 천지에서 꽃이 피어날겁니다

借一朵花送給你
凝蘊芬芳的往昔
幾度風霜衰暗新綠
難滅香韻幾縷

清心如護無瑕玉
且待春再來
花開新天地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백소화는 고인들이 강조한 ‘기예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성정을 도야한다[煉藝陶情]’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고인들은 서예, 그림, 거문고, 시낭송 등을 즐기면서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자신도 모르게 모두 성정을 도야하고 심성을 수양했다고 했다.

백소화는 또 회화를 통해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대도무형(大道無形)’의 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음악, 미술 등 각종 예술형식은 단지 인류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즐겁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을 향해 인생의 진리를 찾게 하고 정신경지를 제고시키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즉 이런 예술형식들은 모두 ‘진선인(真善忍)’ 우주대법의 내함(內涵)이 인간세상에서 다양하게 표현된 수련형식이라 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