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북성 대법제자 선행(善行)
【정견망】
2018년 7월 25일 새벽 3시 50분에 평소처럼 일어나 아침 연공을 했다. 문득 바로 내 맞은 편 건물 벽에 반짝반짝 빛나는 연꽃잎이 나타나더니 내 ‘시선’을 따라 이동했고 연꽃잎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8개의 금빛 찬란한 연꽃잎으로 구성된 한 층의 연꽃이었다. 이 연꽃은 내가 4장 공법을 끝마칠 때까지 있었고 날이 밝아오자 비로서 서서히 사라졌다. 이후 날마다 나타났다.
그런데 8월 2일 새벽 연공을 할 때 매일 내 연공시간에 따라 나타났던 연꽃이 보이지 않았고 눈앞이 온통 칠흑과 같았다. 무슨 이유일까? 반드시 내 수련에 뭔가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이다.”(《정진요지》〈대법 산동보도소에〉)
나는 어제 있었던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우리 집은 자료점이자 법 공부 장소인데 2018년 날씨가 매우 더웠다. 나는 남쪽 방에서 자료를 만드는데 에어컨을 틀고 방문을 닫아 놓았다. 그런데 핸드폰은 북쪽 방에 있어서 누가 와서 문을 두드리거나 벨을 누르거나 전화를 걸어도 들리지 않았다. 때문에 오후에 법 공부를 끝내고 어떤 사람이 복도 입구에 방울을 하나 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건의했다.
막 이 일을 상의하고 있는데 한 동수 아주머니가 무례하게 나를 비판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어리석어요? 왜 이렇게 게을러요?”
그녀의 말투와 태도가 나로 하여금 받아들이기 힘들게 했고 나는 즉시 반박했다.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있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도 이 일을 해보세요! 당신도 문장을 써보세요!”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 맞든지 맞지 않든지 모두 자신에서 찾아야 하며, 닦음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늘 지적과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밖을 향해 지적하며, 늘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평을 반박하는 그것이 수련인가? 그것이 어찌 닦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고 여태껏 자신을 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는데 당신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이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보는가? 오히려 안을 향하여 닦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는가? 자신에 대한 말을 꺼낼 때면 당신은 왜 좋지 않아 하는가?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몇이나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삿대질하며 당신에게 욕할 때 심정이 담담할 수 있는가? 몇이나 다른 사람의 비평과 지적에 직면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가?”(《로스앤젤레스 시 법회설법》)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비록 그녀에게 반박할 때 태도가 겉으로는 아주 평온했지만 오히려 쟁투심, 과시심과 남더러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고, 나는 자료를 만들고 문장을 쓸 수 있다며 과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나의 학력이 높다고 자부하는 마음을 감추고 상대방이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또 환희심도 있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반드시 고쳐서 앞으로 더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이튿날 새벽 연공 전에 사부님께 향을 올릴 때 나는 또 한 번 사부님께 참회했다. 연공을 시작한 후 기적이 나타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 연꽃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8월 5일 오전 동수 D가 나와 약속을 잡고 함께 동수 E를 찾아가 교류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집을 나와 그녀를 찾았지만 집 근처와 길 입구까지 찾아봐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를 만나지 못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마침 중복 날이라 날이 아주 더웠고 또 나는 다른 할 일이 많았다. 또 그녀가 내 시간을 뺏을까 두려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전화를 걸어 혼자 가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이렇게 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연공을 할 때 반짝반짝 빛나던 금련(金蓮)이 좀 어두워지고 빛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맹렬히 반성했다. 내가 잘못했구나! 이 일의 출발점은 완전히 위아위사(爲我爲私)한 것으로 완전히 사람마음에 이끌려 일을 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 중에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무엇이든 모두 사람의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무엇이든 모두 수련 중 사람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20년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제자는 꼭 기억할 것이며 앞으로 문제를 처리할 때 반드시 수련인의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겠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인식한 후 이튿날 새벽 연공을 할 때 기적이 또 나타났다. 어제는 검고 빛이 나지 않던 연꽃이 다시 반짝반짝 빛이 나며 생생하게 살아났다.
8월 13일 오후 동수 F가 프린터 수리를 위해 집에 왔는데 마침 저녁이라 딸아이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 딸은 동수 F가 자기 슬리퍼를 신었다고 화를 내면서 예의 없이 슬리퍼를 가져가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다른 슬리퍼를 동수에게 가져다주었다. 딸은 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 내 체면을 망쳐버렸다. 나는 아이가 너무 무례하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 친구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은 바로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동수가 나더러 화를 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저녁 내내 딸을 이해하지 못했고 속으로 원망하면서 미워했다! 그런데 뜻밖에 이튿날 아침 연공을 할 때 눈앞에 반짝이던 금련이 다시 보이지 않았고 대신 칠흑 같은 어둠만 나타났다. 나는 어제 나와 딸 사이의 모순에서 내가 잘못했음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
(《홍음 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나는 일에 부딪쳐 완전히 자신이 수련인임을 망각했고 진선인(真善忍) 법리마저도 완전히 망각했으며 반응되어 나온 언행은 모두 당문화(黨文化)의 그런 한 세트였다. 딸아이의 잘못은 바로 나의 잘못이 아닌가? 이는 내가 그녀를 잘 이끌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어려서부터 잘 교육시키지 못하고 말과 행동으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잘못은 내게 있고 내게 책임이 있다.
이에 연공을 끝낸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동적으로 딸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눴다. 이튿날(15일) 새벽 연공을 할 때 반짝반짝 금빛 찬란한 연꽃이 다시 내 시야에 나타났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동수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