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동수 A가 감옥에서 나온 후 몸이 허약해져서 길을 걷기도 곤란하자 나한테 돈을 빌리러왔다.
그가 말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은행카드 대출 2천 위안이 있었는데 나오고 나서 보니 이자가 붙어서 5천 위안이 되었어요. 은행에서 채무를 갚으라고 독촉하니 당신이 5천 위안을 빌려주면 나중에 내 몸이 건강해진 후 일을 해서 갚겠습니다.”
이때 그는 핸드폰을 지니고 있었는데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다 해서 나는 몹시 반감을 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월급도 매달 사회보장기금을 낼 고만큼 밖에 안 되는데 나더러 돈을 빌려달란 말인가? 갚는다고 하지만 당신 그 몸으로 가능하겠는가?’
그가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지만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말하자면 이는 무슨 큰일은 아니다. 관건은 A에 대한 나의 선입견 때문인데 그를 돕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진상화폐를 보내온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담이 작아서 300위안만 달라고 했지만 나중에 그는 500위안을 보내왔고 며칠 후에는 또 1000위안을 보내왔다. 나는 속으로 압력이 커져서 장사하는 동수에게 주었다.
나는 불만을 갖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왜 계속해서 보내는가? 앞으로는 필요 없으니 보내지 마세요.”
그러나 A는 여전히 돈을 보내왔다. 한번은 또 2000위안이나 보냈다. 나는 조급해져서 돈을 받기를 거부했고 속으로 몹시 원망했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이 이렇게 이지적이지 못하니 조만간 사고가 나겠군.(이는 정념이 아니다)’
다른 동수들 역시 그가 너무 과격하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가 현(縣) 법원에서 불법으로 3년이 넘는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 그가 나한테 돈을 빌리러 왔을 때 나는 뭔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속으로 아주 복잡했고 늘 그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또 몇 차례 나를 찾아왔고 기어코 돕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나는 그를 일을 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하고 일을 크게 벌리는 것을 좋아하며 이지적이지 못하고 과격하며 안전에 주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런 사람과 접촉하려니 속으로 자신감이 없었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나는 원망심이 갈수록 커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왜 나더러 돈을 빌려달라고 핍박하는가? 이는 단순히 돈을 빌리는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수구(修口)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이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또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게 이지적인가? 왜 나더러 당신을 도와달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빌리는 건 되지만 나는 안 된다.’
나는 또 이전 진상화폐 일을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화가 났고 생각할수록 그의 결점이 더 많았다.
그 며칠간 나는 줄곧 A에 대해 불편했고 마음속에 매듭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보았다.
‘왜 나더러 이런 일에 부딪히게 했을까? 이는 나더러 무엇을 제고하라는 것일까? 대법제자는 신우주(新宇宙)의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정각으로 수련 성취해야 하는데 수련 중에 부딪친 어떤 일이든 다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 분명히 내가 제고할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냉정하게 자신을 생각해보았다. 이번에 찾아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줄곧 늘 자신의 수련이 괜찮다고 여겨왔었고 적어도 무슨 큰 사람마음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자신이 안 되는 것을 발견했다. 폭로되어 나오는 것은 모두 근본집착인데, 원한, 쟁투,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질책하며, 억지로 강요하고, 연루될까 두려워하고, 돈을 아까워하는 등등이었다. 이는 완전히 위타(爲他)의 각도에 서서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모두 자신의 이해타산을 위한 것이다.
애초 내가 A에게 불만을 지닌 건 내게 진상화폐를 너무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량으로 했는데 나는 해냈는가? 내가 감히 할 수 있는가? 나는 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할 때조차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이는 차이가 너무 큰 게 아닌가?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도 그를 돌보지 않으며 심지어 직장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병든 몸만 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악에게 타협하지 않고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완강하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 얼마나 소중한 동수인가? 내가 그의 수련이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정신에 의지해 얼마나 많은 감동적인 일이 있었는가?
하지만 나는 어땠는가? 애초 사악에게 납치당해 박해받을 때 형을 받기도 전에 몹시 두려워했고 사악이 무엇을 쓰라고 하면 그대로 썼다. 비학비수(比學比修)해보니 정말이지 얼굴이 땀에 젖을 정도다. A가 나온 후에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는데 이 일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몇 년간 감옥 안에 있었으니 모를 수 있고 이는 서서히 따라잡으면 된다. 만약 이를 구실로 그를 비난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그럼 구세력이 기뻐하는데, 구세력이 그를 밖으로 밀어내기를 기다린다면 이것이 과연 동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인가?
사람마음과 차이를 찾은 후 나는 따라잡기로 결심하고 주동적으로 돈을 찾아 이 일을 원용시켰다. 이 과정에서 어떤 동수가 듣고는 자신도 돈을 냈고 또 어떤 동수는 A를 위해 옷과 신발 등을 마련해주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정체(整體)상태임을 느꼈고 마음속이 뜨거워졌으며 원망하는 사람마음도 없어졌다.
A에게 돈을 주기 전에 나는 이 일을 협조인 동수에게 말했다. 그러자 협조인이 말했다.
“불법으로 판결 받고 또 아직 노동능력이 없으니 은행에서 마땅히 원금만 회수하고 이자는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정법수련(正法修煉)이니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인 박해입니다. 우리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하며 이를 승인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의견을 A에게 전하자 그가 말했다.
“사실 은행에서도 처음에 이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니 이자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갚아선 안되는데 우리는 개인수련이 아니라 정법수련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탄압한 것이 이미 아주 사악한 것입니다. 여기에 은행이 이자까지 요구한다면 설상가상이니 당신이 주동적으로 구할 필요가 없고 철저히 부인해야 합니다.”
A도 내 말에 동의했고 일 처리 역시 아주 타당했다.
현 단계에서 작은 체회(體會)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1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