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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동수를 찾도록 도와주시다

글/ 중생(重生)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법신은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다 알고 있으며, 무엇이나 그는 다 할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그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수련하면 끝까지 돕는다.”

20여 년간의 수련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이 단락 말씀을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는다. 그동한 수많은 신기한 경험을 겪었는데 여기서는 사부님께서 동수를 찾도록 도와주신 두 가지를 교류하고자 한다.

1. 사부님께서 할머니 방을 얻으라고 알려주시다

2012년 가을 나는 아들의 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1년을 앞당겨 퇴직하고 성도(省都)로 이사를 왔다. 고향을 떠나 낯선 환경으로 오니 동수도 없었고 법을 공부할 소조가 없었으며 문제가 생겨도 교류할 사람이 없으니 늘 일종의 실망감과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나중에 고향 동수의 소개로 일찍이 5~6년 전부터 이곳에 와서 일하는 전부터 알고 있던 동수와 연계되자 자연히 몹시 기뻤다. 우리 두 사람은 매주 한 번씩 보기로 했다. 그런데 두 집의 거리가 멀어서 대중교통을 타면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게다가 그녀는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좀 불편함을 느꼈다. 중간쯤에 방을 하나 얻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적으로 두 사람이 일주일마다 법을 공부하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속인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방을 하나 얻기로 했다.

하지만 많은 광고를 뒤져봤지만 적당한 게 없었고 결국 4층에 있는 칸막이 방을 골랐다. 사실 이 방도 우리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주위가 모두 속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기억에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방주인에게 200위안을 계약금으로 주고 다음 주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기로 했다.

그 후 집에 가려고 이 소구(小區)을 막 나서는데 소구 대문 가까운 곳에 방을 세놓는다는 광고가 보였다. 내가 전화를 걸어보니 산동(山東) 방언의 한 할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당장 내려온다고 했다. 잠시 후 세파에 찌든 모습에 뚱뚱하면서 목소리가 큰 70~80대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내 앞에 나타났다. 인사를 나눈 후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단층집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훅”하고 뜨거운 열기와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집안도 엉망진창이었고 이어서 작은 개 한 마리가 나왔다. 당시 나는 당장 떠나고 싶었고 아무리해도 이 방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만약 집이 필요하면 전화로 연락을 하겠다면서 몇 마디 얼버무리고는 곧 나왔다. 동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는 안 되면 임시로라도 아까 봤던 칸막이 방을 계약하기로 했다.

월요일 새벽 막 법공부를 하면서 책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오늘 방을 구할 일이 생각났다. 이때 사부님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할머니 방을 구해라.”

나는 깜짝 놀랐다. 원래 사부님께서는 나의 일사일념(一思一念)과 일거일동(一擧一動)을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할머니 집을 계약하고 싶지 않았고 그 환경을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사부님 배치는 가장 좋은 것임을 알기에 반드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

나를 보자 할머니는 몹시 기뻐했다. 대화를 통해 남편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떴고 딸이 근처에 살지 않는데 딸이 장사하느라 바쁘고 그리 효성스럽지도 않아 모친을 자주 찾거나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2천 위안 퇴직금(원래 식료품점에서 고기를 팔았다)에 의지해 생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원래 그랬구나, 정말 쉽지 않겠구나. 이에 나는 방값을 흥정하지 않고 그녀가 달라는 대로 반 년에 3천 위안(동수는 형편이 어려워서 방값은 내가 부담함)을 주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연히 가격을 흥정할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나오자 기뻐하면서 말했다.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어젯밤 꿈에 하늘에서 내 침대에 큰 금덩어리를 던져주었어요.”

내가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해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할머니 형편도 좋지 않으시네요.”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격동해서 내게 말했다.

“아이고 원래 파룬궁을 연마했군요? 나는 파룬궁이 어찌된 일인지 알아요. 우리 집에 파룬궁 TV(역주: 新唐人 위성방송을 말함)도 있어요.”

그러면서 TV를 켜서 보여 주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혹시 수련생이세요?”

“그건 아니에요. 작년에 한 할머니가 남편이 아픈 걸 보고는 우리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고 남편이 뇌혈전에 걸렸다니까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우라고 하서 했더니 바로 일어설 수 있었어요. 당시 눈이 휘둥그레지고 너무 신기했죠. 그래서 제가 대법 사부님께 ‘저도 파룬궁을 배우고 싶으니 대법 사부님께서 제게 학식이 있는 사람을 하나 보내서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학교를 1년밖에 다니지 못해 모르는 글자가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원래 교사 출신이라 이 말을 듣고 들을수록 격동되었고 그제야 모든 게 명백해졌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감사드린다.

이후 나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녀와 함께 법을 공부했고 그녀가 모르는 글자를 알려주었다. 나는 동수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진상을 알려준 그 할머니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몰라요,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면 그녀를 찾을 수 있어요?”

“우리 집 뒤에 시장이 있는데 내일 시장에 가서 한번 찾아볼께요.”

세상에 시장에 사람이 많아서 인산인해인데 대체 어디 가서 사람을 찾는단 말인가? 할머니가 5~6일 연속 시장에 나갔지만 그녀를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우리가 막 법을 공부하고 있는데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 자비로운 인상의 할머니가 미소를 띤 채 들어왔다. 나는 단번에 동수임을 알알 보았다. 당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수여 드디어 당신을 찾았군요.

이때부터 나는 다시 정법의 홍세(洪勢) 속으로 돌아왔다.

2. 마침내 우리 소구 동수와 연계 

2014년 여름 어느 날의 일이다. 내가 법공부 장소에서 공부를 끝내고 나와서 버스를 타니 좌석이 만원이었다. 나는 속으로 4정거장밖에 안되니 그냥 서서 가자고 생각했다.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차 안에는 조용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마치 뭔가에 억제된 것 같았다. 이때 나는 뒤에서 어떤 사람이 조용히 사적으로 나누는 대화소리를 들었다.

들어보니 우리 소구에서 내가 아는 한 할머니와 또 다른 사람이 대화하고 있었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그녀들이 대화하면서 할머니가 수시로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차에서 내린 후 내가 그 할머니와 인사말을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일단 먼저 가보세요.”

그리고는 내게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에 사세요?”

“네, 근데 왜 당신을 몰랐을까요? 당신도 이 소구(小區)에 사세요?”

“우리 둘이 같은 소구에 있었네요.”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이 아주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성격이 활달한 것을 발견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63세라고 했다.

“63세처럼 보이지 않고 훨씬 젊어 보이세요.”

“연공을 하거든요.”

“어떤 공법을 연공하세요?”

“파룬궁이요!” 그러면서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말했다. “당신도 연공하시죠.”

당시 나는 아주 피동적이었고 나도 연공하고 있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저 “나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압니다”라고 한마디만 했다.

이때 이미 소구 입구에 도착했다. 그녀는 나더러 자기 집 동호수를 알려주면서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이 사람은 어쩌면 이럴 수 있는가?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반드시 그녀를 만나야 한다. 같은 소구의 동수라니 이 얼마나 만나기 힘든 일인가,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다음날 그녀의 집을 찾아갔으나 그녀는 집에 없었다. 삼일 째 되는 날 다시 갔지만 또 없었다. 그러다 4일째 되는 날 문을 두드리니 그녀가 문을 열고는 나를 맞이했다.

그녀의 첫마디가 “내가 그날 너무 이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겠어요? 그건 당신이 들으라고 일부러 그런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알지만 당신이 나를 모르니 당신이 차에 타자마자 그 할머니가 당신을 가리키면서 당신도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했어요. 당신이 자신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고 했는데 저도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준 적이 있거든요. 그녀가 아니었으면 우리 둘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당신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동수의 진솔한 갈망에 큰 감동을 받았다. 또한 이 때문에 고심하셨을 사부님께 격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줄곧 만약 소구 안에 아는 동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왔는데 오늘 나의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 동수는 아주 정진했고 정념이 대단히 강했으며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했다. 그녀와 비교해보니 나는 자신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동수를 소개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이후 우리는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면서 함께 법을 공부하고 공동제고하면서 조사정법의 길에서 잘 협력하고 있다.

이 일을 회상해보면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눈앞에 역력하다. 속인 층면에서 보자면 우리 둘이 만나는데 반드시 그 속인 할머니의 연계가 필요했다. 우리 둘 다 이 할머니를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몇 천 가구가 사는 소구에서 우리 세 사람이 동시에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법은 무변(無邊)하고 사부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제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필요로하는지 다 아신다. 사부님께서 생각하지 못하시는 게 아니라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삿ㄹ 우리 자신보다도 더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신다. 만약 우리가 잘하지 못한다면 사부님의 고심한 마음 쓰심에 진실로 면목이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이끌고 대궁(大穹) 깊은 곳에서 걸어오셨고”(《홍음 5》〈먼 옛날의 서약이 부르고 있네〉) 사람 속에서 우리를 찾으셨으며 이 ‘성스런 인연’으로 우리를 서로 연결하셨다. 우리는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다그쳐 사람을 구하며 사부님의 거대한 대가와 감당으로 우리에게 연장해주신 보귀한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착실하게 3가지 일을 잘하면서 유감을 남기지 말고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이 일은 내게 또 다른 계발을 주었다. 나는 전에 소구 안에서는 진상을 알리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 두려워 많이 알리지 않았다. 또 어떤 동수는 가급적 자신이 살지 않는 소구에서 진상을 알린다. 사실 이는 두려움 때문이며 마땅히 이런 관념을 전변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상을 아는 속인이 어쩌면 우리를 크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