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소은룡(小銀龍)
【정견망】
구우주(舊宇宙)는 위사위아(爲私爲我)한데 우주천체가 관통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 가장 표면의 사람은 구우주의 변이에 따라 이런 위사위아의 상태가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의 세인을 보면 자사자리(自私自利)가 극점에 달했고,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극치에 도달했다. 고층 천체가 우주의 근본대법에서 빗나갔기 때문에 아래로 층층의 생명이 더욱 빠른 속도로 패괴(敗壞)되고 있다. 이는 구우주의 변이된 요소의 산물로 구우주의 위사위아한 형상 표현이다.
대법제자란 칭호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으로 그는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구도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가 책임진 운운중생이 남겨지면 신우주로 들어가는 생명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공간장에는 여전히 구우주의 위사위아한 요소들이 존재하며 이런 변이된 구우주의 요소들이 우리가 신우주에 동화하는 것을 저애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보스턴법회설법》에서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慈悲(츠뻬이)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사부님의 설법과 대조해보고 나 자신은 얼굴 가득 진땀이 났다. 나는 이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고 또한 자신이 이 방면의 부족을 알면서도 어떻게 개변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사람의 사상은 모두 정념이고, 사람은 마음이 착하고, 사람이 일을 할 때 모두 다른 사람을 고려하였다.”(《각지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라고 일깨워주신 것을 보았다.
하지만 마비되어 있던 나는 단지 겉으로만 이해했고 내심으로는 여전히 자신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비로소 남을 이해하고 남을 고려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법의 요구와 차이가 너무 큼을 느꼈고 남을 이해하고 남을 위해 고려할 수 있는 경계는 나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고 마치 일종 무형의 물질이 앞을 가로막은 것처럼 느껴져서 마치 나로 하여금 아무리해도 제고하거나 승화할 수 없게 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무형의 물질은 바로 구우주의 변이요소인 ‘위사위아(爲私爲我)’였다.
그러나 최근 자신에게 뭔가 돌파가 있었다. 최근 며칠 주위 사람들이 늘 나를 눈에 거슬려했는데 여기에 잘못이 있거나 아니면 저기에 문제가 있었다. 동시에 나 자신도 수련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여겼고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초조한 것을 느꼈다. 마치 일종 회색의 부면(負面)물질이 나를 제약해서 내가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힘이 너무 부족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또 이런 현상의 출현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을 가지려하지 않았다.
신체상태에 주위환경의 변화가 더해지자 단번에 자신이 마음의 용량이 가득 차서 더 담으면 흘러넘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부님의 법(法)이 끊임없이 나를 일깨워주었고 의기소침하지 않게 하여 한 번 또 한 번 넘어가게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내가 모순 속에 있음을 발견했다. 겉으로 보면 자신이 아주 억울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였지만, 나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 사람에 대해 나는 아무런 원망도 없었고 내심으로 상대방이 나를 잘되라고 한 말임을 알았다.
이때 나의 염두에 따라 마치 눈앞에 하나의 장면이 나타난 것 같았는데 이 장면은 사부님의 자비였고 천국중생의 기대였으며 사부님께서 신변의 사람을 이용해 나를 일깨워 나더러 구우주의 변이요소를 제거해 신우주로 동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완고한 돌을 치워주신 것이다.
이번 경험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일을 하면서 남을 고려하려면 기초를 잘 다질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게 했다. 또 이런 기초가 있어야지만 비로소 우주특성과 가까워질 수 있고 우주특성에 가까워질수록 당신의 선(善)의 요소가 더 많아지고 밀도가 더욱 커져서 법리에 대해 더욱 투철해지고 당신의 자비가 더욱 홍대(洪大)해질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때 생각한다. 한 생명으로 말하면, 보건대 아주 보잘 것 없으나 오히려 모두 자신의 생명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비장함이 있고, 곡절이 있으며, 즐거움이 있고, 고통이 있으며, 慈悲(츠뻬이)와 선량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부동한 특징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각지설법 11》〈20년설법〉)
사부님께서는 세상의 운운중생(芸芸眾生)을 소중히 여기시는데 그중에 우리 대법제자가 포함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의 길을 배치하셨고 우리에게 매 한 걸음 제고할 기회를 배치하셨지만 미혹 속의 우리는 사부님의 배치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는가?
내 마음의 감당능력이 극한에 도달했을 때를 회상해보자. 소위 억울하거나 비난받을 때 억울해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일 때 마치 한 가닥 맑은 샘물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것처럼 한 가닥 따스한 선(善)이 깊이 잠든 진아(真我)를 일깨워 나의 그런 선량한 본성을 환원시켜, 남을 위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다 나를 일깨워주기 위한 사부님의 배치이며 사부님의 자비임을 보게 했다. 바로 이때 마치 햇빛에 눈이 녹듯이 원한(怨恨)이 증발했고 대신 내 공간장을 차지한 것은 선(善)이었다. 때문에 남의 건의와 지적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입장을 바꿔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었으며 ‘위타(爲他)’의 미묘(美妙 아름답고 오묘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신우주는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위타(爲他)한 것으로 대법제자는 무사무아를 수련성취해 완전히 위타한 생명이 되어야 한다. 나의 상태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표준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오직 진정으로 법에서 수련하고 법으로 자신의 부족을 가늠하기만 하면 갈수록 더 법의 표준에 가까워지고 진정으로 위타한 생명인 신우주의 각자(覺者)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작은 체오이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