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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길을 바르게 걷자

글/ 자혜(宇慧)

【정견망】

사존의 《홍음 6》을 받들어 읽으니 전통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열어주셨다. 20여 년을 수련하면서 나는 늘 법리(法理)에 대한 인식이 아주 천박함을 느꼈다. 생생세세 삼계(三界)의 이치에 매몰된 것이 아주 깊고 두터워서 늘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일단 전통사유를 언급하기만 하면 늘 역사의 과거로 되돌아가 유가(儒家)사상이란 그런 한 세트의 사람의 도리를 떠올리곤 한다. 무슨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며 자녀에 대한 정 등등이다.

또 일단 수련을 언급하기만 하면 고인(古人)은 어떻게 고생스레 수련했는가를 떠올리거나, 어떻게 신선이 되고 도를 얻었으며 어떻게 사리(舍利)를 남기고 어떻게 했다는 등등을 생각하고 지식을 탐구하면서 또한 부러워했다. 이는 자신이 법에서 벗어난 것으로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자신이 오늘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사람이 신(神)으로 될 수 있는 길에서 걸어가고 있음을 완전히 망각한 것임을 몰랐다.

〈약정〉이란 시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창세주가 주신 생명
전통의 길은 그분이 사람에게 설정한 것
이 길은 당신을 씻어 법을 얻고 하늘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네
전통을 잃으면 곧 인성(人性)을 잃으니
현대관념은 깊은 수렁
무신론 진화론을 선양함은 붉은 마귀의 지령
사람은 대부분 신이 세상에 내려와 창세주와 약정했으니
법을 얻고 수련해 신체(神體)를 다시 만드는 것만이
당신의 영광과 행운이라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천국중생을 구하기 위해 약속했기 때문이라네”

사부님의 시는 낡은 관념에 의해 아주 오랫동안 봉폐되어 있던 내 마음의 자물쇠를 열어주셨고 나의 사로(思路)를 넓혀주셨다. 우리는 역사 과거에 일찍이 사부님을 따라 5천년 문명을 개창했었다. 그중에서 우리는 수련을 했거나 또는 역사상의 유명 인사나 왕, 주(主)는 모두 대법제자가 연기한 것이다. 다채롭고 찬란한 것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걸작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윤회로 전전하면서 우리는 세상에 온 목적을 이미 망각하고 속세의 진흙에 묻혔으며 구우주의 얕은 이치에 족쇄가 채워져 무수한 죄업(罪業)을 짓고도 우리는 치욕스럽게도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사존께서는 자비로 온갖 역경을 헤치고 신우주를 만드셨으며 대법을 전하여 길을 잃은 우리 어린양들을 일깨워주셨다. 험로(險路) 속에서 우리를 구하셨고 사람에게 설정해주신 전통의 길로 돌아가 우주 생명들이 모두 부러워마지 않는 대법도(大法徒)가 되게 하셨다.

역사의 오늘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법시기 대법제자란 칭호를 부여하셨고 사부님의 정법을 따라 미래인이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개창하는 기초를 다지게 하셨다. 우리의 순정(純正)한 일체는 다 미래인들에게 참고로 남겨놓는 길이 되기 때문에 법을 실증하는 이 길에서 사존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매 한걸음을 잘 걷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매 대법제자를 아주 높이 밀어주셨고 신(神)의 과위로 밀어주셨으며 신신합일(身神合一)에 도달하게 하셨다. 또한 우리에게 법을 실증할 수 있도록 일체의 능력과 일체의 지혜를 부여하셨기에 비로소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매일 발정념으로 정법을 교란하는 불법(不法) 신과 흑수(黑手) 난귀(亂鬼) 및 공산사령을 깨끗이 제거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부동한 층차의 불도신(佛道神)이다. 우리 자신의 업력과 좋지 않은 것들을 포함해서 깨끗이 청리하는데, 이런 패물(敗物)들은 모두 생명이 있고 살아 있는 것으로 역시 부동한 층차의 신이 배치한 것이다. 그것들을 깨끗이 제거함에 사부님의 가지와 가호가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또 감히 할 수 있겠는가? 한 수련하는 속인이 감히 불도신을 멸(滅)한다면 황당무계한 소리로 천상의 신들이 보고는 모두 두려워한다. 오늘날 우리 대법제자는 이렇게 해냈고 또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신(神)의 일면을 펼쳐 사부님을 따라 법을 바로잡는 것이니 이 얼마나 영광인가! 우리 사람의 일면은 법을 얻어 수련해서 신체(神體)를 다시 만들고 세간에서 대법을 실증해 우리 자신 천국중생을 구도하고 과위를 성취해 성스런 창궁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과거 그 어떤 수련방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과거의 수련방식에 따른다면 대법제자는 오늘 하나도 수련원만 하지 못한다.”(《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과거의 수련방식은 모두 부원신(副元神)을 수련했고 그것들이 본 장면이 제아무리 장관일지라도 모두 구우주의 구조이며 진실한 것이 아니다. 신우주가 어떤 모양인지는 그 누구도 볼 수 없고 사부님께서 보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잘 수련된 일면도 다 사부님께서 격리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우고 법에 동화하기만 하면 법리가 펼쳐질 수 있는데 그런 수승(殊勝)하고 미묘(美妙)한 느낌은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최근 몇 년간의 수련과정 중에서 나 자신에게는 깊은 체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천목이 열린 이를 찬양하거나 소능소술(小能小術)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폄하하곤 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자신을 폄하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이미 잘 수련한 신우주의 그 부분을 폄하하는 것으로 이는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 자신의 잘 수련된 그 부분이야말로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다.

다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말하자면 내게는 늘 부면(負面)적인 사유가 튀어나오곤 했다. 나는 화상이 탁발하는 것이 우리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둘 다 인연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심지어 저들은 압력이 없으니 박해도 없고 오직 고생만 겪을 뿐이라며 저들을 부러워했다. 이는 두려운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인식은 틀려도 크게 틀린 것이다.

우리 수련방식이 어찌 과거 수련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내함(內涵)이 다르고 감당하는 책임 역시 같지 않다. 저들이 닦는 것은 소법(小法)소도(小道)라 그들 자신조차 제도하기 어려우니 하물며 사람을 제도할 수는 더욱 없고 그저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고 사람의 주원신(主元神)을 제도하는 것은 사부님이시며 오직 우리만이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비로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이 박해라는 마난 속에서만 비로소 부동한 층차의 대각자를 단련해낼 수 있고 비로소 대법제자의 칭호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세인도 오직 이런 난세(亂世) 속에서 진상을 똑바로 알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으며, 우리만이 비로소 유일하게 중생을 데리고 천문(天門)을 통과하는 미래의 왕이 될 수 있다.

대법을 실증하는 매 걸음을 잘 걸어가려면 작은 편차도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면 반드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해야 하며 머릿속에 법을 많이 담고 법을 외우며 법을 기억하고 법에 동화해서 사상 속에 달라붙은 난잡하고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제거해야만 비로소 그것들의 교란을 타파할 수 있고 비로소 본성이 드러나게 할 수 있으며 비로소 구도 받을 수 있고 비로소 순정한 심태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부님께서 새롭게 열어주신 전통의 길 위에서 세상에 올 때 우리의 서원(誓願)을 실현할 수 있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