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대법제자 미련(微蓮)
【정견망】
올해 7.20은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고 대법제자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23주년이 된다. 대륙대법제자들은 이 23년간 홍색 테러의 피비린내 나는 기간을 거치면서 줄곧 북경에 가서 호법하고 박해에 반대하며 법을 실증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정법수련과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해왔다. 이 기간에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하고 귀신도 울 정도의 감동적인 수많은 사적(事跡)들을 남겨놓았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예수가 아니고, 석가모니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진리의 길을 걷고, 과감히 진리를 위해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과감히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몸을 바치는 무수한 예수, 석가모니를 창조해 냈다.”①라고 하셨다.
대법도(大法徒)의 이 단락 감동적인 일화들은 마치 역사라는 장하 속의 하나하나 밝은 진주처럼 찬란한 빛을 발하며 이번 차례 인류문명 역사에 굵고 뚜렷한 한 획을 그었다!
나는 2003년 사악의 박해가 가장 발광하던 시기에 파룬궁 수련생을 접촉했고 아직 수련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논어〉조차 제대로 외울 수 없는 상태에서 사악에 끌려가 마삼가(馬三家) 노교소에 감금되어 3년간 박해를 받았다. 이 3년간의 과정에 나는 임사(臨死)상태를 체험했고 약물에 중독되어 다년간 선택적인 기억상실에 걸렸지만 사부님께서는 끝내 나를 사망 속에서 구해내셨고 나를 위해 당문화 사유의 기억을 폐쇄시켜주셨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깨어나라》 경문이 발표된 후 내 눈에서 한 층의 하얀 막이 떨어져나갔고 나는 점차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당시의 기억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중 몇 가지를 써내어 사당(邪黨)의 잔인하고 뻔뻔하며 비열하고 사악한 본질을 폭로하는 동시에 동수들에게 지금의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도록 일깨워주고, 제한된 시간에 정진실수(精進實修)해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길 바란다. 동시에 후인(後人)들에게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사악한 마귀굴에서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신기를 견증한 것에 대한 초상적인 문자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1. 기사회생과 노안으로 잔글씨를 똑똑히 보다
2004년 연초 중공사당은 2008년 올림픽을 수호한다는 구실로 전국에 400여개 지표를 하달해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을 체포해 노동교양이나 판결하게 했다. 당시 나는 막 《전법륜》을 보았고 이는 사람마음을 단속해 좋은 사람이 되라고 권하는 심법(心法)이니 무슨 나쁠 게 없다고 여겼다. 대법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선량했기 때문에 한 수련생이 머물 장소가 없다고 했을 때 그에게 임시로 거처를 제공해주었고 또 대법서적을 보관해주었다. 그러다 나까지 연루되었다. 나를 납치한 국보대 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적어도 파룬궁을 동정했어.”
“내가 당신을 감금시켜 따끔한 가르침을 줘야겠어!”
그들은 할당받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나도 악명 높은 마삼가 노교소에 보내 박해를 진행했다.
그때 당시 내 눈은 노화가 빨리 와서 50도 되기 전에 이미 돋보기를 껴야 했고 아주 큰 글자마저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노교소에 들어간 후 신체가 점점 더 나빠져서 줄곧 성(省) 병원과 마삼가 병원 사이를 오갔다. 약을 쓰면 쓸수록 병이 심해졌고 결국에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했다. 또 한 차례 가사(假死)상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내가 뚜렷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다리, 팔, 사지에서 머리까지 점차 감각이 사라진 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타원형의 물체가 되어 파룬궁이란 세 개의 큰 글자를 썼고 파룬궁이란 3글자를 묵념했다. 이때 의식 속에서 “나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 후에야 비로소 점차 감각이 회복되었고 혈압과 맥박도 돌아왔다. 하지만 깨어난 후 기억을 상실했고 눈으로 빛을 볼 수 없었으며 침대에 누워 수건으로 눈을 덮어놓아야 했다.
성 병원 의사는 이미 자신들은 내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판정했다. 왜냐하면 토혈(吐血)을 동반해 약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은 심장병과 혈전이었다.
관교(官敎)는 내게 “너희들의 방법(역주: 파룬궁 수련)만이 몸을 조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생각에 이는 사부님께서 관교의 입을 빌려 나를 일깨워주신 것으로 나더러 대법을 배우라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장기간 단식으로 항의하다 침대에 누운 이웃 병상의 한 동수와 함께 등을 맞대고 법을 외웠다. 그녀는 우리를 감시하는 보초가 없을 때 한 구절씩 서서히 내게 〈논어〉를 외울 수 있게 가르쳐주었다. 반달 후 나는 말을 할 수 있었고 한 달이 좀 넘어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으며 두 달 후에는 땅에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 또 눈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을 수 있었으며 이후 신체가 점차 호전되었다.
이후 또 어떤 동수가 내게 《홍음》, 《홍음 2》, 《정진요지》, 《정진요지 2》 등 일부 경문을 전해주었다. 모두 작은 종이에 아주 깨알같이 작은 글씨였는데 사방 3cm 정도로 여러 번 접어 손안에 넣고 낮에 침대에 누워서 쉬는 20여 분간 한쪽 눈만 살짝 뜨고 보아야 했다. 다시 말해 전체 눈초리의 4분의 3은 감시당하는 상황이라 반드시 눈을 감고 있어야 했고 또 수시로 포협(包夾)과 보초가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4분의 1만 그것도 실눈을 뜨고 보아야 했다. 매번 한 구절의 법을 익숙하게 외우면 마치 크게 가물던 논에 단비가 내려 적셔주는 것처럼 갈증이 풀리고 감미로웠다. 그 빽빽하게 적힌 작은 글씨를 당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게 볼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나는 원래 건강한 몸으로 노교소에 들어왔다가 신체가 극도로 허약해졌고 약을 먹고 수액을 맞다 빈사상태에 빠졌으며 그 후 수련을 통해 기사회생했다. 그 어떤 약물도 쓰지 않았고 법을 외우자 몸이 점차 회복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확실한 사실은 사부님께서 나의 전반생의 인지를 뒤엎으셨고 머릿속에 있던 뿌리 깊이 박혀 있던 무신론이란 미혹의 장애가 분쇄되었으며, 생명을 대가로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초상성 및 신기함을 깨닫고 대법을 수련하려는 결심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2.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가 저절로 치유
중공 사당은 대법제자의 의지를 꺾어 ‘진선인(真善忍)’ 신앙을 포기하게 하려는 험악한 목적으로 각종 고문을 극한까지 사용했다. 그중 ‘신형(抻刑)’이란 고문이 있었다. 이것은 수련생의 두 손목을 수갑에 채워 위아래 2층 철 침대 기둥에 각각 한손씩 고정시킨다. 그리고 침대를 움직이면서 조금씩 당기면 팔 근육이 찢어지면서 극렬한 통증이 온다. 고대에 ‘오마분시(五馬分屍 역주: 5마리 말에 사람의 사지와 머리를 연결해 잡아당겨 찢어 죽이는 형벌)’라는 형벌이 있었다면 중공은 2마리 말로 몸을 찢는 셈이다. 팔이 더 이상 벌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가슴과 오장육부까지 재앙이 미쳐 사람을 극도로 시달리게 만든다.
호남(湖南) 출신의 A언니는 엔지니어출신으로 남방식 보통화를 구사하는 점잖은 인물이다. 사악이 그녀에게 신형(抻刑)을 가해 두 손이 수갑에 채워져 수갑이 손목의 살을 파고들어가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수갑을 풀어준 후 팔과 손가락 감각마저 마비되어 밥그릇을 들거나 수저를 들 수 없었으며 화장실에 가는 것도 다른 사람이 옷을 내려주고 입혀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약 한 달이 지나 서서히 호전 되었다. 이는 속인에 대해 말하자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3. 희미한 빛을 차단하고 경문을 외워 쓰다
노교소에서는 수련생을 감시하기 위해 밤에 불을 끄지 않고 밤에도 전등을 켜놓아 희미한 불빛이 나왔다.
B 동수는 약 40대로 대학을 졸업한 인재다. 꾀꼬리처럼 고운 목소리에 뽀얀 얼굴, 근시안경을 쓴 얌전한 사람이었다. 내 기억에 당시는 여름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있던 감방에 같이 있었다. 밤이면 모기가 너무 많아서 그녀는 늘 머리에서 발끝까지 파란 홑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감방마다 늘 수색이 있었는데 수감자들의 옷을 벗기고 몸을 수색하면 매번 손으로 베껴 쓴 경문이 나오곤 했다. 관교들은 대체 이렇게 많은 글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 몹시 이상하게 여겼다. 때문에 수련생을 면회하러 오는 가족들에 대한 감시가 아주 엄격했다. 감시 장비 외에도 포협과 관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사악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대법제자의 혈액 속에 녹아들고 뇌 속에 기억된 대법경서가 나타난 것은 뜻밖에도 희미한 불빛 아래 홑이불 속에서 쓴 걸작이었다. 그것은 사악도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인기(印記)였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몹시 진감(震撼)했고 법을 외우려는 신심이 증강되었으며 긴 경문을 외는 방식으로 법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검은 소굴에서 사존의 매 한 구절 설법은 천금, 만금 이상의 가치가 있었고 돈으로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보배였다. 그것은 제자들이 견정하게 대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는 원천이자 힘이었고, 제자들에게 혹형박해에 반대하고 법을 실증할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을 주었으며,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안으로 찾고 중생을 구도하며 자비와 선량을 닦아내게 한 근본이었다.
그곳에서 사악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은 견정하게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해낼 수 없는 일이란 없다는 점이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발표되면 불과 3일 안에 천신(天神)의 보호 하에 우리 손에 전달되었다. 지금도 검은 소굴 속에서 박해를 받는 동수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상세한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4. 엄동설한에 홑이불로 추위를 견디다
C동수는 아직 40이 안된 대련(大連)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순하게 보였지만 의지가 아주 강해서 사존에 대한 숭경(崇慶)과 대법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확고해 그 어떤 사악도 그녀를 흔들 수 없었다. 그녀는 대련 노교소에 있을 때 악경의 사주를 받은 형사범들로부터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수단으로 고문을 당했다. 가령, 칫솔로 음부를 쑤시게 하거나, 사부님 책속의 사진을 팬티 속에 넣어 모욕했다.
사악은 그녀가 굴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장 추운 삼구(三九 동지 이후 3번의 9일)일에 손에 수갑을 채워 3층 창문틀에 묶어놓았다. 그리고는 남북방향으로 창문을 열어 한기(寒氣)가 대류하게 만들어 3일 밤낮을 얼리면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확고하게 진리를 수호했다. 대련 노교소가 해체된 후 대법 수련생들은 마삼가로 이송되어 박해를 계속했는데 그녀가 마침 내가 있던 감방에 배치되었다.
그녀가 반(反)박해를 견지하고 죄수복도 입지 않자 악경들은 사부님을 욕하는 글자를 그녀 옷 앞가슴 앞에 새겨 넣었다. 그러자 그녀는 곧 옷을 벗어버렸다. 또 가장 추운 삼구(三九) 날씨, 내 기억에 그때는 1월이었는데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갔다. 사악은 그녀를 독방에 1달 넘게 감금시켰다. 이 독방은 북쪽 3층에 위치했고 면적이 4제곱미터도 되지 않았으며 안에는 감시 장치만 달려있고 창문이나 등도 없어서 완전히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녀는 철 의자 위에 앉은 채로 수갑이 채워졌고 매일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누런 밀가루 빵 한 덩이만 제공되었다.
그녀가 동형(凍刑 얼리는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자 악경들은 심지어 이방에 냉방을 틀기도 했다. 한 달 후 나왔을 때 그녀의 온몸은 얼어서 청자(靑紫)색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 동형은 오히려 그녀를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골로 만들었다. 그녀는 이후 한겨울에도 얇은 홑이불 하나만 덮고 잠을 잤다.
한번은 내가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춥지 않나요?”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땀까지 나는 걸요!”
그녀는 만약 사존께서 자신을 위해 대신 감당해주지 않으셨다면 지나올 수 없었음을 잘 알았다. 그녀가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끊임없이 안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찾아냈다. 그녀가 박해받은 이야기를 전부 써낸다면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 마귀와 요괴를 제압하는 신화 이야기가 될 것이다.
5. 등에 나타난 신기한 글자와 비범한 의미
대략 2005년 여름에서 2006년 늦가을의 일이었다. 당시 수련생들이 앞을 다퉈 노교소에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겠다는 엄정성명(嚴正聲明)을 발표하고 거대한 반(反)박해 형세가 시작되었다. 감방, 복도, 홀은 물론이고 식당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목숨을 걸고 큰 목소리로 “파룬따파하오”를 소리높이 외쳤다. 5.13이나 7.20은 물론이고 심지어 섣달 그믐날에도 “파룬따파하오”란 목소리가 하늘높이 울려 퍼져 환우(寰宇)를 진감시켰고 노예노동을 거부하고 정좌(靜坐)하며 법을 외우는 환경을 개척했다.
D동수는 무순(撫順)출신의 50대 농민이다. 선량하고 소박하며 정직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사악은 그녀를 전화(轉化)시켜 진선인(真善忍) 우주대법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감금시켜 포위 공격했다. 이때 사용한 고문은 끈으로 푸른색 강화유리잔의 입구를 단단히 묶고 잔 안에 15~20kg의 물을 붓고는 그녀의 머리에 올려놓다. 남자 경찰이 한손으로는 끈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동수의 머리를 누른다. 이렇게 하면 잔이 땅에 떨어져 깨지지도 않고 그들의 말로 하자면 겉으로 외상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원기둥 모양의 물 잔은 모서리가 없고 또 머리카락 때문에 머릿속에 상처가 생겨도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머리를 짓누르고 또 잠을 못 자게 해서 머리가 청성하지 못해 혼란한 상태에 처하게 한다. 그러고 나서 사오자(邪悟者)를 들여보내 돌아가면서 전화하도록 공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2달이 지나자 동수는 정신이 혼미해졌고 눈빛마저 흐릿해지고 머리도 부풀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하지 않고 대법을 확고히 수련했다. 사악은 대법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이렇게 어리석다고 하면서 우리 감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녀는 가장 뒤에 있었고 나는 그녀 앞 3번째 자리였고 가운데 다른 여자 동수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D동수가 등이 몹시 가렵다면서 옆에 있던 여자 동수에게 자신의 등이 어떤지 좀 봐달라고 했다. 그녀가 몸을 돌려 그녀의 옷을 들춰보니 등에 자홍색(紫紅色)으로 뭐라고 쓰여 있는지 무슨 말인지 몰라 나를 불러 한번 보라고 했다.
나는 보고나서 깜짝 놀랐다. 등 전체에 수많은 상처들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는데 얼핏 보면 마치 채찍에 맞은 후 생긴 딱지 같았다.
내가 그녀에게 “혹시 채찍이나 끈으로 등을 맞은 적이 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딱지가 아니라 혈관이 튀어나온 거였다.
나는 아주 궁금했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혈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계속해서 혈관을 보니 마치 하나하나 자홍색 볼펜심이 피부 속에 배치된 것 같았는데 굵기나 길이는 다 달랐다. 피부에 돌기된 것도 변화했고 높이도 달랐다. 나는 곧 이것이 글자임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 감방에는 볼펜이 2개뿐이었고 모두 비밀리에 감춰놓았기 때문에 또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없어서 펜을 찾지 않았다. 나는 그저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기록해야 했다.
등 우측 상방의 한 글자는 마치 ‘감(敢)’과 같았지만 다만 3번째 획이 횡으로 아주 길어서 또 ‘감(敢)’이 아니었다. 이 가로획은 또 다른 글자와 연결되었다.
다시 좌측 하방의 글자를 보니 ‘장(將)’과 같았는데 3번째 획이 수직으로 너무 길어서 ‘장(將)’도 아니었다. 이 수직 획은 다른 글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총체적으로 글자들이 서로서로 연계되어 있었다. 이런 알 수 없는 글자들을 보니 이것들을 쓸 수 없어서 나는 탄식했다. 이때 글자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았다. 서서히 글자가 옅어지더니 나중에는 편평해져서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D동수는 등이 가렵지 않다고 했는데 대략 15분 정도 등에 글자가 나타났다.
나는 과거에 갑골문, 상형문자, 소전(小篆), 대전(大篆)을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늘 매화전서(梅花篆字)에 관한 일화를 말씀하셨는데 또 고대인들이 고산(高山)에서 수행할 때 여자제자들은 모두 매화전서를 글자를 배워야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필획이 대부분 곡선이었다. 반면 이번에 나타는 문자는 직선으로 된 직필화(直筆畫)였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라고 말씀하셨다.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줄곧 당신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중국문화는 신이 인류에게 전해준 문화, 즉 반신문화(半神文化)여서 그 속에 있는 수많은 문화적 요소들은 매우 깊은 내포가 들어 있지만, 다른 민족의 언어문자는 천상(天上)에 없다고 나는 말했다. 게다가 중국의 이런 문자와 천상의 문자는 매우 유사하며 천상의 문자를 쓰는 방법과 마찬가지 방법이지만 필획(筆畫)이 다르다.”
“중국의 문화는 반신문화이기에 완전히는 아니고, 전부 다 아닌 것 또한 아닌 것으로 바로 이러한 하나의 상태이다.”
오늘 다시 이 단락의 법을 학습하면서 나는 내심으로 무한한 유감과 감격이 솟구쳐 올라왔다.
유감스러운 것은 당시 조건이 맞지 않아 동수의 등에 나타난 글자를 기록하지 못했고 또한 이들 글자는 천상(天上)의 문자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인데 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감격스러운 것은 사부님께서 이 단락 법을 말씀하신 것이 2006년 2월 25일인데 이때는 바로 우리의 반박해가 한창 고조되었을 때였다.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것은 이런 신기한 문자의 출현은 아마도 천국의 가족들이 자신들의 왕(王)과 주(主)가 자신들의 천국세계를 구하기 위해 인간세상에서 능욕과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쓴 위문편지였거나 아니면 사부님께서 천신(天神)들에게 명령해 진수대법제자가 검은 굴에서 견정하게 법을 실증하고 박해에 반대하며 피와 불의 세례를 겪은 것에 대한 표창과 격려일 것이다. 또 아니면 나더러 붓을 들어 그 당시 감동적인 과정을 기록해 세인들에게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수련한 한 부의 신화이야기를 남기게 하여 세인들의 신성(神性)을 각성시키고 법정인간세상의 위대한 시각을 맞이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어(結語)
이상 언급한 몇몇 동수들, 사실 어찌 이들 몇 명뿐이겠는가? 여러분들의 이름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기록될 것이며 그 심상치 않았던 한 막 한 막은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응결되어 있다. 당신들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모두 착실히 수련하면서 자신을 제고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항고(恆古)에도 만나기 힘든 이 기연(機緣)을 꼭 움켜잡고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해 최후의 길을 잘 걸어 “홍조(紅潮) 몰락할 때 그대와 나 서로 만나길”② 기다립니다.
구도해주신 사존께 절을 들립니다. 동수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수련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여러분들의 시정을 바란다.
주:
① 리훙쯔 사부님 저작:《2002년 워싱턴DC법회설법》
② 리훙쯔 사부님 저작:《홍음 6》<부득이>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