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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수필: 두 가지 경지(境界)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아주 오랜 시간 매번 동수와 함께 외출하거나 집집마다 방문해 우편함에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나는 늘 속으로 조용히 하고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다. 속인은 이를 ‘대인기피증’이라 부르는데 생각해보니 상당히 이치가 있다. 그럼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오직 남과 사귀면서 남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워한다. 비록 중국 대륙과는 다르지만 서양인들은 예의를 아주 중시해서 남의 제안을 거절할 때도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지만 그래도 거절당할 때면 속으로 뭔가 불편했다.

조용히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는 왜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안일(安逸)을 구하고 상처받길 두려워하는 것으로 거절당하면 곧 안락하지 못하고 편하지 않다. 또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거절당하면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이라 여기고 노(老)수련생의 체면이 손상당한다고 여긴다. 이런 마음의 배후는 바로 자사(自私)한 가아(假我)다. 이 가아는 안일을 좋아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데 안일하고 편안함을 표준으로 삼아 일을 진행하는 경계로 삼아 하기 좋은 것과 하기 싫은 것으로 나누는데 하기 좋은 것은 추구하고 하기 싫은 것은 회피한다. 이는 사실상 ‘정(情)’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을 일을 추진하는 추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정을 닦아버리지 않으면 자비(慈悲)를 닦아낼 수 없다.

최근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나갔을 때 문득 자신은 수련인(修煉人)이니 만나는 사람은 모두 사부님의 배치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부님의 배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 대해 불경한 것이 아닌가? 제자로서 나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을 공경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더럽고 이기적인 ‘정’을 끌어안고 내려놓지 못하는가?

내가 끌어안고 있던 집착심을 똑똑히 바라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시에 또 내 수련이 너무 느려서 부끄럽다. 내 기억에 동수가 “그 어떤 일을 할 때 일념(一念)이 이미 나왔다면 즉각 자신에게 이것이 진아(真我)인지 아니면 가아(假我)인지 물어보고 만약 가아라면 제거하고 진아라면 즉각 그에 따라 행동하는데 어떤 집착심인지 구별할 필요조차 없다.”라고 했다.

“쓰레기는 모두 던져버리면 끝인데 또 그것이 무슨 먼지인지 아니면 비닐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는가?”

주의식(主意識)이 강대하면 지혜의 검으로 집착을 잘라버릴 수 있다. 나처럼 이렇게 수련의 길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걷다 서다 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자연히 또 다른 뛰어난 경지(境界)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