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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꽃받침이 되어 성스런 연꽃을 받치다

하북 대법제자

【정견망】

동수 A는 80대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동수 B와 함께 늘 같이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그러다 2021년 하반기 동수 B가 외지로 외손녀를 봐주러 몇 달간 가 있었는데 역병 때문에 도시가 봉쇄되는 바람에 돌아오지 못한 지 약 반년이 되었다.

이에 앞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진상을 알리러 나간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보통 버스를 타고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교외 농민공들을 찾아가 진상을 알렸다. 두 사람은 보통 매일 30명대에서 가장 많을 때는 99명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두 번째 따라갔을 때 공교롭게도 한 큰 빌딩이 내부 및 외부 장식을 하는 바람에 빌딩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혼자 여러 사람을 상대로 진상을 알렸는데 이 사람이 끝나면 저 사람에게 하는 식으로 42명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나는 두려운 마음이 커서 한 번에 보통 한명에게만 진상을 알렸고 알리자마자 곧 현장을 멀리 벗어나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머물렀다. 나는 수련이 그렇게 순정(純淨)하지 못해서 이후 더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동수 B가 오지 않자 동수 A가 나더러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내가 두려운 마음이 많다고 여겼고 나도 자신의 진상능력을 고려해 그녀와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로 진상을 했다. 때문에 동반진상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동수 A는 이 반년 간 각지설법을 주로 공부하면서 혼자 몇 차례 진상을 나갔다.

올해 상반기에 동수 B가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의 봉쇄는 풀렸지만 역병 때문에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고 언제 정상화될지 몰랐다.

그러다 4월 5일 동수 A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면서 나더러 함께 진상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이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데, 처음 A, B 두 동수를 따라 진상을 하는데 교외라서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었다. 동수 A는 걸음이 느려서 화장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바지에 오줌을 싼 상태였다. 물론 이건은 바르지 못한 상태로 누구나 잘 닦지 못한 곳이 있고 또 잘 닦지 못할 때가 있으며 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한 것은 동수 A가 중생을 구도하느라 고생하고 감당하는 것 역시 아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번 이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에 나는 무조건 동수와 협력하자고 생각했고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전동 삼륜차로 태워다줄 수는 있지만 나한테 너무 높이 요구하진 말라고 했다. 즉 내가 그녀의 운전기사가 되어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데려다주고 멈추자고 하면 멈추고 가자고 하면 갔다. 기사가 되는 것도 내게는 성공이니 성스런 연꽃을 돋보이게 하는 꽃받침이 되기로 했다.

사존(師尊)의 가지 덕분에 우리가 협력한 진상효과는 정말 좋았다. 동수 A는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진상을 잘했다. 4월 6일 그녀가 처음 만나 입을 열자마자 동시에 7명의 삼퇴를 권했다. 그녀가 내게 준 가장 깊은 인상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번거로움도 귀찮아하지 않는 거였다.

나는 ‘애마’인 삼륜차를 몰고 도로공사를 하거나 묘목을 심거나 집수리를 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갔다. 안전모를 쓴 농민공을 보기만하면 너무 반가워서 곧 동수 A를 그곳에 데려갔다. 또 그녀가 나를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도록 사람들 속에 그녀를 내려놓고 나는 삼륜차를 타고 다른 곳에 가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 얼마 후 다시 그녀를 데리러갔다.

이렇게 하자 내 마음도 담담해졌다. 매일 오전에 밖에 나가 약 2시간 반 동안 진상을 알리는데 두 사람이 30여명에게 삼퇴를 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가장 많을 때는 45명에 달했다.

내가 그녀에게 두렵지 않은지 묻자 그녀가 말했다.

“이런 형식의 삼퇴 진상을 이미 10여 년간 해왔으니 두려울게 없어요. 진상을 끝내고 오후에 집에 돌아가면 마음이 든든하고 밥맛도 좋고 물도 달고 잠도 잘 자며 온몸이 편안해요.”

나는 그녀와 비학비수(比學比修)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렸다. 나는 자신의 부족점을 찾아냈는데 두려운 마음 외에도 나태한 마음이 적지 않게 있었다. 4년 반 전에 새로 대법에 되돌아온 후 나는 즉각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보통 하루에 10명에게 삼퇴를 권했다. 그동안 두 차례 돌파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10명을 돌파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몇 명에게 삼퇴를 설명한 후 급히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 우리가 협력한 다섯 번째 날에 나는 단독으로 11명에게 삼퇴를 권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동수 A의 기사 역할을 하면서 완성한 것이다.

나중에 나 혼자 진상을 나가 오전에만 18명을 삼퇴 시켰다. 나는 두 가지 방면에서 제고되었다. 하나는 혼자 여러 사람을 상대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둘째는 진상을 알리는 시간이 늘어나 11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갔다. 특히 어느 날에는 혼자 4명의 농민공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중 공교롭게도 3명이 사당 당원이었다. 그들은 동시에 삼퇴했고 또 내게 몹시 감사했다. 전에 잘 닦지 못했을 때에는 감히 이렇게 하지 못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