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心淨)
【정견망】
최근 《전법륜》을 공부하다가 다음 단락을 읽었다.
어린이를 가르칠 때, 어른은 흔히 그가 장래 속인사회 중에서 발붙일 곳이 있도록 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너는 좀 약게 놀아라.”라고 가르친다. ‘약다’는 것은 우리 이 우주 중에서 볼 때 이미 그릇된 것인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고 개인의 이익을 담담히 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약은 것은 바로 개인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서다. “누가 널 괴롭히면 너는 그의 선생님을 찾고 그의 부모를 찾아라.”, “돈을 보거든 주워라.” 바로 이렇게 그를 가르친다.
“돈을 보거든 주워라”는 사부님께서 속인이 자기 아이 교육을 예로 드신 것인데 그렇다면 반대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려는 것인가? 수련인은 자신의 아이를 교육할 때 마땅히 “돈을 보아도 줍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
사실 부모가 된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누가 돈을 보고도 줍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수련을 하게 된 후 나는 “돈을 줍는” 이런 이익지심(利益之心)을 여러 차례 제거해야 했다.
“돈 줍기”에 대해 나는 한 차례 아주 인상 깊은 기억이 있다. 당시 약 칠팔 세 어릴 때였는데 장터에 가던 도중 앞에 가던 한 어른이 물건을 사다가 땅에 돈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를 보고 남에게 알리지 않고 내가 주우려 했다. 내가 막 돈을 주우려 하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의 발이 돈을 밟았다.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 성인이었는데 그녀 역시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나를 바라보면서 돈을 밟고 있는 자신의 발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즉 나를 위협하며 자신이 돈을 가져가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스스로 돈을 가질 수 없으니 그럼 돈 주인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그러자니 또 돈을 밟고 있는 사람이 나를 때릴까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괴로웠는데 마치 자신이 뭔가를 훔친 것처럼 양심에 부끄러웠다. 내가 돈을 줍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에 주인에게 알리지 않은 것 때문에 후회했다. 사실 이 과정은 나의 사심(私心)을 폭로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양심에 부끄러웠을까? 바로 신(神)이 이미 내 몸에서 상응하는 덕을 돈을 잃은 주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돈을 줍진 않았지만 그런 시도가 잘못이라 생각을 움직인 그 순간 나는 이미 덕을 잃은 것이다.
나중에 수련하고 나서 몇 차례 돈을 주울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오후에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땅에 돈이 떨어진 것을 보았다. 주울까 말까 주저하는 순간 자전거는 이미 십여 미터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자전거에서 내려 되돌아가서 돈을 주웠다. 보니 20여 위안이었다. 이때 나는 곧 자신이 수련하는 사람임을 떠올렸고 이 돈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기왕 돈을 주웠으니 나는 자주 가는 시장에 가서 구걸하는 장애인에게 주었다. 돈을 잃은 사람을 대신해서 좀 좋은 일을 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또 특별히 장애인에게 돈을 준 것은 돈을 잃은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라고 신(神)에게 알렸다.
또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동수 집으로 산보를 가다가 길에 5위안이 떨어진 것을 보았다. 속으로 이번에는 줍지 말자고 했는데 잠시 후 또 10위안을 보았다. 나는 또 줍지 않았다. 속으로 돌아갈 때까지 돈이 있는지 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갈 때 그 길로 돌아왔지만 돈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또 동수 집에 가는데 여전히 그 길 위에 5위안과 10위안 몇 개가 떨어진 것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왜 늘 돈이 떨어진 게 보이는 걸까? 이는 마귀가 돈으로 변해 나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더 이상 바닥을 보지 않았다. 네가 무엇이든 내 것이 아니면 다 갖지 않는다.
또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버스에 올라탄 후 문에서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숙이는데 차문 벽쪽에 붉은 색 100위안 지폐가 보였다. 나는 마음이 움직였다. 예전이라면 바로 내려가서 주웠을 것이다. 이 지폐는 오직 내가 앉은 자리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주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돈은 무슨 이름이나 표기가 없어 만약 줍는다 해도 주인을 찾아줄 수 없고 그렇다고 기사에게 주면 또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기로 했고 이렇게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승차하면서 자연스레 그 돈을 줍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버스 중간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사부님의 이 구절 법을 보면서 이렇게 강렬히 반응하는가? 지난번 내 행동이 아직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고 여전히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돈은 한 푼이라도 주워선 안 되며 심지어 마음조차 움직이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마땅히 누가 잃어야 할 것이라면 잃을 것이고 누가 주워야 할 것이면 줍는 것으로 나와는 관계가 없다. 아마도 돈을 잃거나 줍는 사이에 어떤 인연관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교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8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