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녀(玄女)
【정견망】
명(名)은 정이고 이(利)는 정이며 정(情)은 바로 정이며 모두 자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이란 무엇인가? 삼계의 욕망이자 삼계의 탐념(貪念)이며 삼계의 사심(私心)이다.
정이 있으면 반드시 사(私)가 있고 사가 있으면 반드시 정이 있는데, 숨기거나 위장하거나 거짓말 할 필요도 없다.
왜 과감히 내심(內心)을 직시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사를 제거하지 못했고 정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주요 원인은 정이 근본적으로 당신이 직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을 없애려하지 않거나 또는 자신이 정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정이란 그런 감각이 자신인가? 역시 아니다.
그런 미련, 추억, 자극, 변이(變異), 사통, 색욕, 쟁투, 질투, 회상, 상심, 애태우고, 헤어지기 싫고, 이별, 그런 종 특유의 정감, 가족 정, 우정, 애정, 인정(人情)이 진정한 자신인가? 정 속에서 온갖 시고 달고 쓰고 매운 맛을 보는 것이 자신인가? 사랑하고 미워하며 슬프고 미워함이 자신인가?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이 자신인가?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게 자신인가? 사실 모두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은 무엇인가? 모두 정(情)에서 파생되어 나온 파생물들인데 어떤 파생물인가? 명리정(名利情)을 추구함이 바로 정의 파생물인데, 바로 정이 추구하는 것이지 자신의 추구가 아니다. 정은 바로 사심(私心)과 욕망이며 70정 60욕인데 관련된 범위가 크고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넓어서 온 삼계에 가득 찬다. 그렇다면 그것의 야심과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라.
또한 진짜 당신의 사심이나 당신의 욕망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과의 관계를 똑바로 가르지 못하면 그것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한 사람을 통제하기란 마치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데 곳곳이 정이고 곳곳에 다 나타난다. 정은 전체 삼계(三界)의 하늘과 땅을 통제한다.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그것은 아주 실재적으로 존재한다.
정의 일체 사욕(私慾)을 당신은 오히려 당신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모두 그것의 전리품(戰利品)이며 그것의 성과이고 그것의 만족감이다.
수련이 어려운가 어렵지 않은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수련이 어려운 점은 분명하게 그것(정)을 전부 부정하면 마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거하려면 마치 자신이 죽고 사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그것의 가장 험악한 수법이다. 자신을 묶어 납치하지만 의심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다시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 법속에서 수련이란 바로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데 다시 말해 그것을 폭로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왜 이렇게 사람을 대함이 마치 불공평하게 보이는가, 사실 공평한 것으로 자신이 떨어져 내려온 것이지 끌려 내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끌려 내려왔다고 해도 사실 끌려내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백히 말해 속박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럼 그것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것의 사욕(私慾)에 따라서 하지 않고 그것의 사유(思惟)에 따라 추구하지 않을 수 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많이 내려놓을수록 더 빨리 그것을 벗어날 수 있다.
마치 영원히 그것과 애매모호한 관계인 것 같다. 그러면 그것이 곧 뒤엉켜 풀어주지 않는데, 그것이 곧 늘 그리워하는 사적인 정을 내보내고, 그것이 바로 당신더러 그 속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자신에게 속하는 작은 비밀을 감수할 수 있거나 또는 사념(私念)을 말하게 한다. 그 속에 빠져들어가면 그것을 버리거나 구별하기 어렵다. 생각이 통하지 않으니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본래 당신이 벗어나게 하려고 하지 않기에 더욱이 당신이 그것과 소통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왜 삼계 윤회의 그림이 하나의 괴물인가?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을 잡아먹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것은 일찍이 변이되었는데 지금의 변이된 인류는 바로 유래가 있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이 스스로 살고 있는가? 모두 정(情)에 좌우지되어 살고 있다. 그 후 계속해서 윤회하면서 생생세세 그것에게 잡아먹히고 또 그것의 노예가 되는데, 그러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무런 방법도 없다고 여긴다.
정법(正法)이란 만나기 어렵다. 때문에 정법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정말 큰 행운이다. 만약 그럼에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수련을 아이들 장난처럼 여긴다면 언제 다시 기연(機緣)이 있을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3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