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현대관념 행위는 이성(理性)이 고장 난 것이라네
전통과 선량을 지키면 인품이 고상해지리니
그것이 구원으로 통하는 방향이라네”[1]
오늘 법을 공부하다 수련인이 만약 어느 것이 현대관념 행위인지 똑똑히 가려내지 못하고 아울러 세파에 따라 쓸려간다면 그럼 이성(理性)에 문제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땅히 내려놓아야 함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럼 이성이 고장 난 것이다.
또 어느 것이 전통(傳統)과 선량(善良)인가, 현재 개인 층차에서 이해한 것은 옛날 사람은 수련에 대해 아주 근엄했는데 이것이 바로 전통이다. 그들은 마땅히 현대화된 핸드폰을 들고 단체로 경서를 보지 않을 것인데 그것이 어떤 장면인지 한번 생각해보라. 그들은 또 마땅히 자신을 보호하려는 각종 원인 때문에 두려운 마음,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일을 줄이려는 마음으로 불법(佛法)의 신성하고 모독할 수 없음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법리 속에서 구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고인들이 절을 수리하거나 불상을 공양하고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데 아주 많은 마음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것이 바로 전통의 길이다. 수련이란 형식에 달린 게 아니라 그 진심(真心)이 있어야 하며 진심이 있다면 곧 상응하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만약 법을 공부할 때 심태를 조절하고 법을 공부할 때의 자세와 법을 공부할 때 마음씀이나 진지하게 안으로 찾고 법을 공부할 때 교란을 배제하는 등등은 모두 고대 수련인의 전통이다. 아니 꼭 수련인이 아니어도 고대 일반 백성들은 모두 현대인들에 비해 수련의 엄숙성과 전통에 대해 더 잘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불(神佛)의 존재를 믿었고 하늘에 불경하면 재앙을 초래함을 믿었기 때문인데 이는 가짜 경앙(敬仰)이 아니다. 그들은 또 품덕(品德)이 사람의 생사와 화복(禍福)을 가늠하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신이 사람에게 준 진리이며 진정한 전통이다. 아울러 그들의 사명은 바로 줄곧 회귀하는 이 길을 전승(傳承)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불(主佛)의 제자로서 우리는 왜 중시하지 못하는가? 몹시 부끄럽지 않은가? 천상의 신들은 모두 못마땅하게 보는데 그럼에도 자신이 어떻게 대단하다며 오만방자하다.
다시 선량(善良)을 말해보자. 만약 선량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수련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속인처럼 위선적인 것을 순선(純善)이라 여긴다면 정과(正果)로 수련 성취할 수 있는가? 우리가 만약 마성(魔性)을 닦아버리지 않고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인품이 아주 좋지 않게 표현될 것이고 어쩌면 속인만도 못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알려주셨다.
“말후(末後)에 세인들은 돈만 알고
귀신에게 미혹돼 깨닫지 못한 채 악령을 돕고 있네
하늘 뒤덮는 큰 죄에도 깨어나지 못하는데”[2]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말겁 시기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고 귀신에게 미혹되는데 이는 단순히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실 하늘을 뒤덮는 큰 죄다. 또한 수련인이 만약 돈에 집착해 완전히 좋지 않은 작용을 일으킨다면 그럼 마귀와 같은 편에 서서 세파에 휩쓸려 가는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6》<구원으로 가는 방향>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6》<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하누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