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소(穹霄)
【정견망】
최근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공부하다 새로운 체회(體會)가 있었다.
“베이징(北京)의 한 수련생이 저녁 식사 후 아이를 데리고 전문(前門)에 가서 산책하는데 방송차가 복권 뽑는 선전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재미로 복권을 뽑으려고 했다. 뽑을 테면 뽑아 봐라. 아이에게 1위안을 주어 뽑게 했더니 대번에 2등상을 뽑았다. 어린이용 고급 자전거 한 대를 주니 아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그때 머리가 ‘윙’ 울렸다. ‘나는 연공인(煉功人)인데, 어찌 이런 것을 구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부당한 재물을 얻음으로써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德(더)를 주어야 하는가?’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가지지 말자. 우리 가지려면 직접 가서 사자.” 아이는 뿌루퉁해졌다. “아빠에게 사달라고 해도 아빠는 사주지도 않으면서, 나 스스로 한 대 뽑았는데 아빠가 못 가지게 할 건 뭐예요.” 울고불고 떼를 써서 할 수 없이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후, 생각할수록 마음에 걸려 차라리 그들에게 돈을 갖다 주려고 했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 보니, 복권도 없어졌는데 내가 돈을 그들에게 갖다 주면, 그들이 나눠 가질 것이 아닌가? 차라리 나는 돈을 직장에 가져가 찬조(贊助)하자.”(《전법륜》)
전에 이 단락의 법을 읽을 때는 그저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리는 불의(不義)한 재물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만 여겼다. 최근 이 단락 법을 읽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저 베이징 수련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이것이 불의한 재물을 얻으면 덕(德)을 잃음을 알지만 아이가 울고불고 하니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럼 가지려면 가져라, 어쨌든 내가 구해서 온 것도 아니고 또 아이 기분을 망칠 수도 없다. 그냥 못이기는 척하면서 자전거를 끌고 간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은 다음과 같은 집착심을 폭로한다. 하나는 이익지심(利益之心)을 없애지 못한 것으로 설사 내가 구해온 재물이 아니고 설사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물건이 집까지 도달했고 또 돌려줄 방법도 없다. 일종 교활한 심리를 품고 물건을 남겨둔 것이다. 그렇다면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다른 일 역시 이럴 것이다. 일부 행동이 뻔히 법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집착심에 따라 일종 교활한 태도로 수련을 대하고 못이기는 척 속인과 같이 한다.
두 번째는 정(情)에 대한 집착이다. 일부 행동이 법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정의 교란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연공인이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아이가 울거나 불거나 상관하지 않고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고 강제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 방법의 문제라면 아마 내가 덕을 잃지는 않겠지만 가족 간에 모순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남을 강요하는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말하자면 불의한 재물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수련하지 않는 속인은 이런 이치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일종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남에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종종 보다 큰 모순을 만들게 된다.
우리 많은 동수들이 속인 가족과의 관계를 처리하는 문제를 어려워한다. 종종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한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사상 경지(境界)는 확실히 속인을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는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알지만 속인은 세간의 반대되는 이치(反理)에 미혹되어 있다. 우리는 수련하지 않는 속인에게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을 처리하도록 강요할 수 없고 설사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면 결과는 정반대가 될 수 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차라리 그들에게 돈을 갖다 주는 것”이다. 내가 덕을 잃지 않아야 하고 아이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자면 그럼 그들에게 돈을 갖다 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내 마음도 편하다. 그러나 복권도 없는데 돈을 주면 그들이 서로 돈을 나눠가질 것이다. 나 자신은 덕을 잃지 않겠지만 돈을 나눠가진 그들은 덕을 잃게 된다. 단지 내가 덕을 잃지 않는 것만 생각했지 남이 덕을 잃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일종의 아주 큰 사(私)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다시 이 수련생이 한 행동을 보니 돈을 직장에 가져가 기부해 그들에게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비로소 이렇게 함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덕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가정모순도 조성하지 않고 더욱이 남이 덕을 잃지 않게 하며 보다 중요한 것은 대법을 실증한 것이다.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며 불의한 재물을 탐하거나 차지하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단락 법에서 내가 체회한 것은 대법 수련은 속인 중에 열려 있지만 요구는 아주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일체 일은 단순히 개인수련 단계에서 어느 하나의 집착심을 제거하면 끝인 게 아니며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속인이 이해하도록 해야 하며 또 완전히 수련인의 요구에 도달해야 하고 또한 일체 기회를 이용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요구가 이렇게 높으니 해내기 몹시 어려운 것이 아닌가? 베이징의 이 수련생이 한 행동에서 보자면 우리가 오직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서 하며, 완전히 타인을 위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사심(私心)이 없다면 실천하기 어렵지 않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