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台南) 대법제자
【정견망】
첫 번째 누수: 친정에 대한 집착으로 눈물이 끊이지 않다
처음 수도관이 샌 것은 수년 전의 일이다. 당시 부친이 암에 걸린 후 속으로 늘 불안하고 혼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부친은 암 말기라 비록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부친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 돌아가고자 했다. 이 기간에 나는 부친과 가장 가깝게 지냈고 부친이 대법과 가까워지도록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드리고 정신이 맑을 때면 《전법륜》을 보시도록 했다.
하지만 부친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었고 임종하실 무렵에는 호흡마저도 약해지셨다. 그 순간 나는 인생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스승이 말하는 것을 듣고 이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속인사회 중으로 돌아가서는 그래도 이런 현실이익이 실제적이고 실제적이라고 한다. 실제적이고 실제적으로 당신뿐만이 아니라 서방의 많은 큰부자ㆍ대부호도 생을 마치고 나면, 그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는데, 물질재부(物質財富)란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못하며,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으로서, 아주 공허하다.”
나는 부친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매일 오후마다 늘 영전 앞에서 《전법륜》을 읽어드리며 부친이 내세에라도 대법과 인연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랐다.
부친을 마지막으로 보내던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달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면서 누수(漏水)검사를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물이 샌다(漏水)’는 것은 ‘눈물(泪水)’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일을 통해 나를 점화해주시는 것 같았다. 눈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친정(親情)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함을 뜻한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시기를 돌아보면 나는 내심으로 파동이 심하게 일어났고 몹시 비통해했는데 정말로 수련하지 않는 다른 속인 가족만도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말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강해서 크고 작은 일에 부딪치면 늘 부친의 자문을 구하곤 했다.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나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늘 부친을 찾아가 해결책을 구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가장 큰 의지처가 사라졌으니 내심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던 것이다.
부친의 사망은 나로 하여금 친정에 대한 집착과 의지하려는 마음을 찾아낸 외에도 사부님의 법리로부터 우리는 일체가 다 신(神)이 배치한 것임을 안다. 매 생명은 모두 각자 걸어가야 할 길이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의 가족을 포함한다.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법으로 대해야 하며 친인에게 이끌림을 없애야 한다. 내 가족 역시 사부님께서 구도하실 생명으로 그들이 진상을 똑똑히 알게 하여 설사 금생에 법을 얻지 못할지라도 내세에는 대법과 연분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누수: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심성의 누락을 찾다
한번은 전화진상팀에서 천진(天津)사건에 관한 전화를 하려던 첫날 수도회사에서 사람이 찾아와 검침을 했는데 바늘이 계속 돌아가니 누수검사를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고 이웃이 알려주었다. 나는 당시 마음이 쿵쾅거렸다.
속으로 ‘어째서 또 왔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황한 가운데 속으로 찾아보았고 한편으로는 누수회사를 찾아 수리를 맡겼다. 사실 누수는 이미 서너 달 지속되었고 횟수도 계속 증가했다. 처음 수도요금이 늘어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아주 답답했지만 마음에 두진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집착심이 사실 이미 한동안 지속되었고 갈수록 더 두드러졌던 것이다.
천진 진상전화 셋째 날 누수를 수리하러 온 사람이 누수를 측정하면서 아주 빨리 누수가 된 곳을 찾았는데 지난번 물이 샌 곳과 아주 가까웠고 같은 블록이었다. 누수는 이렇게 해서 아주 빨리 해결되었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매주 모친을 돌보러 갈 때를 생각나게 했다. 이웃집에서 자꾸 소음을 내서 집안에 편히 있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 이미 아주 오래 되었다. 속으로 줄곧 이 문제를 내려놓지 못했고 안으로 찾았지만 수련상태가 때로는 좋아졌다가 나빠졌다 했고 닦기가 아주 힘들었다. 최근 들어 이웃은 더 심해져서 아예 한밤중에 잠자는 시간에 일부러 소음을 냈다.
때로 나는 더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염두가 올라오곤 했다. 파출소 경찰을 찾아가 처리할까 아니면 법적인 소송을 제기할까 속인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진상전화를 걸때도 마음이 불안해져서 무슨 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랐고 교란을 받아 진상을 알리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차례 정신을 집중해 법 공부를 한 후 법리(法理) 배후의 불도신(佛道神)이 곤경에 처한 내 모습을 보시고는 점화해주셨다. 나는 갑자기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심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 2》〈미국플로리다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마 당신이 법 공부를 하는 중에 당신이 생각하는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다. 매 글자마다 배후에 모두 불도신(佛道神)이 있는데, 당신이 무엇을 해결하려고 하는지, 지금 무엇을 급하게 하려고 하는지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점화를 거쳐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이치를 따지길 좋아하고 일에 부딪쳐도 늘 이치를 따졌으며, 일의 옳고 그름을 찾아 마땅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따졌다. 하지만 이번 일은 오히려 이치를 따질 수 없었다. 나는 아주 곤란했고 또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런 생활상의 번거로움을 이용해 매사에 도리를 따지고 이치를 따지기 좋아하는 나의 집착심을 제거하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상대방과 도리를 따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법에서 닦아야 하는가?
이 집착심을 찾아낸 후 나도 이웃집 벽을 두드리고 싶었던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상대방이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을 교란하는가 여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이때 막 사부님의 《각지설법 3》〈대뉴욕지역법회설법〉을 공부했다.
“장기간 이래, 일부 수련생들에게는 제거하지 않은 근본적인 집착이 있다! 최후까지 쌓여서 넘어가지 못하면 난(難)은 곧 커진다. 문제가 나타나면 心性(씬씽) 상에서 찾지 않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제고하지 않으며, 정말로 이 일을 내려놓고 다른 한 방면에서 정정당당하게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겨냥하여 아이고 나의 이 일이 어찌 아직도 지나가지 않는가? 내가 오늘 좀 잘했으니 마땅히 좀 좋아야 하는데, 내가 내일 좀 더 잘하면 마땅히 좀 더 좋아지겠지! 라고 한다. 그는 언제나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보기엔 그래도 마치 보여주듯이,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라고 한다. 당신이 잘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위해 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진정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사부님의 법리에서 나는 심성 수련의 엄숙성을 깨달았다. 사건에 집착하는 속에서 안으로 찾았고 이렇게 안으로 누락이 있는 곳을 찾아 진정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안으로 찾아야만 외부환경이 비로소 전변(轉變)될 수 있다. 그 후 다시 모친을 찾아갔을 때 이웃집에서 저녁마다 벽을 두들기던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에 누수 사건을 계기로 심성이 승화된 후 진상을 알리는 상태 역시 제고되었다. 진상전화를 걸면서도 중생이 진상을 듣는 상태가 비교적 안정된 것을 느꼈다.
결론
동일한 구역에서 서로 다른 누수 지점이 생긴 것은 자신의 심성상에 부동한 누락이 있음을 반영한다. 생활 속에 부딪친 번거로움이나 고험은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다.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와야만 정체적인 생활에 변화가 생기고 이와 연결해서 진상을 알리는 상태 역시 안정된다.
이상은 수련 중의 일부 체회(體會)로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4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