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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를 보면서 자신과의 차이를 찾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직업이 교사라 여름방학이면 낮에 법 공부를 대량으로 할 시간 여유가 난다. 나는 매일 오전 아들과 함께 작문을 하고 오후에 아이를 학원에 보낸 후 곧바로 한 노(老)동수 집에 법을 공부하러 간다. 동수 집은 단층이고 또 장사를 하는 관계로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에 드나들기 편리하고 또 아이 학원과도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오후 동수 집에 가서 같이 법을 공부하는데 손님이 있으면 동수는 장사하고 나 혼자 법을 공부하고 손님이 없으면 함께 공부했다. 여름방학 기간 내내 계속 이렇게 했다. 이 기간에 동수와 접촉하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동수의 몸에서 자신과의 격차를 보았다.

그녀는 현재 60대로 혼자 생활한다. 생활용품이 아주 적어서 물건이 많지 않은데 아주 가지런하고 정결했다. 심지어 쓰레기통조차 없어서 보는 사람에게 환경이 아주 깨끗하다는 느낌을 준다. 일단 그녀의 집에 가기만 하면 아무런 생각도 없어지고 법 공부나 심득을 교류하며 속인의 잡담은 일절 하지 않는다. 이때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내경(內境)은 청정(淸淨)한 것이기 때문이다.”(《정진요지 3》〈성숙〉)

다시 말해 동수의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환경 역시 청정한 것이다!

반대로 우리 집에는 물건이 아주 많다. 아이 물건, 내 물건에 책도 많고 장난감도 많으며 옷도 많아서 쓰지 않는 물건이 많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그러므로 우리 집에 돌아가면 잠시 이것을 하다가 또 잠시 후 저것을 하고 싶은데 각종 사심(私心)과 잡념(雜念)이 올라온다. 바로 마음이 청정하지 못해 환경도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환경 역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동수는 내심이 청정하기 때문에 사상 역시 순정(純淨)하고 환경도 깨끗하며 가정관계도 간단하다. 장사 일 외에는 바로 수련이며 일을 할 때도 법을 들으며 시시각각 법속에 녹아든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니 사상 속의 사심과 잡념도 많고 가정환경도 빼곡하고 가정 관계 역시 복잡하다. 노인이 불편하거나 아니면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등 날마다 난장판이다. 이 점을 의식한 후 나는 주방, 화장실, 위생 사각지대 곳곳을 철저히 청소해 집안에 먼지가 없게 했고 때가 낀 스테인리스강도 모두 깨끗하게 벗겨냈으며 쓰레기통도 깨끗이 닦았다. 모든 물품을 가지런하게 놓아 먼저 환경부터 청정하게 했다.

노동수는 생활이 아주 간단해서 먹는 것도 중시하지 않는다. 흔히 한번 밥을 해놓으면 여러 끼를 먹는다. 옷도 잘 차려 입지 않지만 진상을 하러 나갈 때는 대법제자의 이미지에 주의해 가급적 잘 입었다. 반면 나는 아이가 있다는 구실로 온갖 요리를 만들고 또 수시로 외식을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 싶어진다. 또 수시로 옷을 사는데 각종 물욕(物慾)이며 식욕이 다 있다! 동수와 비교해보면 정말로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동수는 표현력이 강하지 못해 늘 다른 동수들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말을 하지 않곤 한다. 또는 이 때문에 약간의 오해를 받기도 한다. 성격이 강한 동수가 면전에서 뭐라고 해도 동수는 속으로 불편해하지 않고 늘 심성을 지키며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또 가장 먼저 안으로 찾으며 밖을 향해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을 닦는다.

반대로 나 자신을 돌아보면 가정에서 늘 아들과 심성관(心性關)을 겪는다.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심지어 여러 차례 야단을 치는데 교사라는 직업 습관상 일단 야단을 치면 심하게 한다. 심지어 말을 할수록 언성이 높아지고 화가 나면 또 손을 대기도 한다. 이때는 단순히 밖을 향해 본 것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안으로 찾음을 망각한 것이다. 또한 선(善)이 없고 인(忍)도 없으며 당문화(黨文化)를 지니고 자신이 잘났다고 여기면서 오만하게 남을 깔보는데 이는 완전히 마성의 발설이다!

동수는 법 공부, 마음수련, 연공, 사람 구하는 세 가지 일 중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장사를 하면서도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수수료도 남들의 3분의 1만 받는데 그러면서도 깔끔하고 세심하다. 그러니 한번 왔던 사람들이 모두 칭찬을 하고 오는 손님들은 모두 다른 이의 소개로 온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당신은 왜 이렇게 저렴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녀는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대법 사부님께서 남을 위해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동수는 심지어 60이 넘은 노인들에게 주는 노인연금도 포기했다.

그녀는 “나는 수련을 하기 때문에 속인의 이런 일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또 일하는 기회를 이용해 고객들을 거의 다 삼퇴(三退) 시켰고 아울러 다년간 진상을 알려 자신이 사는 지역 주민들과 고향의 친척들을 모두 삼퇴 시켰다.

그러나 나는 표면적으로는 이익심을 내려놓았지만 오히려 날마다 가족에게 쓸 돈이 없으니 많이 벌어오라고 하고 사람을 구함에도 두려움과 나태한 마음 때문에 직접 만나 구하지 못한다. 현재까지 구한 사람의 수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사부님께서 보시고는 조급하시어 동수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해주셨다.

“법공부만 하지 말고 사람을 구해야 해요! 하루 단 한 명이라도 구하세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고 마침내 동창이나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록 경험이 없어서 말을 잘하지 못하고 동수처럼 두세 마디로 빨리 삼퇴 시키진 못했지만 필경 자신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동수는 학력이 높지 않고 사상은 간단하지만 현대문화지식의 각종 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아 신사신법하며 사부님께서 뭐라고 하셨으면 그대로 하는데 아주 직접적이다! 하지만 늘 법리를 깨닫곤 한다.

반면 나는 겉으로 보면 지식도 있고 문화도 있지만 사유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서 무언가를 추구하길 좋아하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아주 많다! 법리(法理)를 말하면 사리에 맞는 것 같지만 집착심을 제거하거나 관을 넘을 때는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쉽사리 혼란에 빠진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이 내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나와 아들이 모두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흘렀다. 나는 무심코 동수에게 “열 감기에 걸렸어요.”라고 했다. 그녀가 이 말을 듣고는 눈을 크게 뜨더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건 당신이 한 말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내가 변명하면서 “우리 몸에도 약간의 업력은 남아 있잖아요?”라고 하자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선 안 돼요. 그 찬바람이 당신에게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어요? 그게 다 무엇입니까?”

집에 돌아가서 자세히 이 일을 생각해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매일 법을 공부하고 교류문장을 보기에 삼계(三界) 내의 이치는 우리에게 작용을 일으킬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사람 속에서 형성되어 습관이 된 관념들은 오히려 소홀히 여긴다.

가령 낮에는 잠을 좀 자지 않으면 오후에 피곤하다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연공을 하면 낮에 피곤하니 좀 보충해야 한다고 여긴다. 일단 일이 많아서 바빠지기만 하면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고 여긴다. 생리 때가되면 찬 음식이나 아이스케이크를 먹지 않는 게 가장 좋고 가급적 물을 닿지 않아야 한다거나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그 한 세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분명해야 하는바, 대법제자의 수련은 인간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며, 이 구(舊) 우주의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중생이 구성하는 각종 요소에 의해 속박된 구(舊) 궁체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며, 궁체의 성(成), 주(住), 괴(壞), 멸(滅)의 최후의 최후 환경 중에서 탈태하여 나오는 것이다.”(《각지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설법〉)

원래 나는 20여 년을 수련했음에도 여전히 사람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동수를 보면 그녀는 오전에는 나가서 사람을 구하고 낮에는 장사 일로 바쁘다. 오후에 법을 공부하면서 내가 물어 본 적이 있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잠을 좀 자야하지 않나요?”

그녀는 대법제자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수는 겨울에 장사할 때 밖에서 일하면서도 추위를 모른다고 했다. 때로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법을 공부하고 낮에 여전히 할 일을 한다. 그녀는 사람의 이치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에 61세임에도 흰머리가 아주 드물고 책을 볼 때도 돋보기를 쓰지 않는다. 이와 비교해보면 나는 정말 부끄럽다. 사부님께서 내게 동수와 단체법공부 환경을 만들어 나더러 자신의 이런 집착과 부족을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닦아버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그녀의 집을 찾을 때부터 아주 신기했다. 나는 원래 동수의 집이 어딘지 몰랐다. 그렇다고 동수에게 폐를 끼치기는 싫어 혼자 찾아가려고 했다. 갈 때 속으로 사부님께 도와주십사 청하고 대략적인 방향만 잡고 갔다. 녹색등을 만나면 직진했고 적색등을 만나면 돌아갔는데 그 결과 큰 거리에서 동수의 집처럼 보이는 소매점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과연 동수 집이었다. 당시 나는 정말 격동했다. 일체는 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배치였고 사부님께서 내가 분발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는 비로소 동수를 배치해 나를 돕도록 하신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닦아내지 못한 사람마음이 있고 관을 잘 넘기지 못할 때도 있으며 우리는 또한 서로 교류하면서 서로 도와준다! 이 글을 써내는 것은 무슨 모범을 세우려는 게 아닌데 대법 수련에 모범이란 없다. 늘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단체법공부 환경은 동수들이 비학비수(比學比修)하게 만들고 차이를 찾아내 서로 촉진하며 공동으로 제고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홍음 2》 시 한수를 읽으며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이지각성(理智醒覺)
잠깐 쉼에도 자아 성찰하고 정념을 더하며
부족함을 똑똑히 알아 다시 정진할지어다

개인의 얕은 소견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