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정견망】
올봄에 한 친구가 대법(大法)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수중에 여분의 《전법륜》이 없었다. 사실 이 친구 집에는 20년 전 내가 그녀에게 준 수개하지 않은 《전법륜》이 있다. 대법의 요구에 따르면 수개한 《전법륜》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처음에 나는 이 친구가 과거처럼 그렇게 진짜로 배우려는 게 아닐 수 있다고 여겨서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
반달 후 친구가 이번에는 그래도 진지하게 대법을 배우려는 것을 보았다. 기왕 그렇다면 그녀가 수개하지 않은 《전법륜》을 보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가 가진 새 책을 주고 그녀 집에 있던 수개하지 않은 책을 대신 가져왔다. 우리 집에는 또 전에 다른 동수가 내게 준 사부님 소전(小傳)이 실린 수개하지 않은 《전법륜》이 한권 더 있었다.
이렇게 수개가 필요한 두 권의 《전법륜》을 보면서 나는 온갖 생각이 다 올라왔다.
‘아 어떻게 하지? 《전법륜》 두 권을 수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우선 타자를 칠 줄 아는 동수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해야 하고 또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이 크고 어려우면서도 신성한 일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 두 권의 보서(寶書)를 이렇게 둘 수는 없고 반드시 보서가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곧 타자를 칠 줄 아는 동수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동수는 단번에 승낙했고 나를 도와 글자를 쳐서 출력해 주었다.
글자를 출력한 후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아이구! 고칠 글자가 이렇게 많구나! 대체 언제나 수개를 끝낼 수 있을까? 전에 수개할 때는 그래도 일부씩 나눠서 고쳤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지 몰랐는데 이렇게 한 번에 모아놓고 보니 어쩌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내가 확인해보니 수개할 곳이 모두 1700여 곳에 달했다. 2권을 합하면 모두 3400여 곳이나 되는데 언제나 수개를 끝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왕 수개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럼 반드시 이 일을 잘해야 한다. 이때 이미 7월이라서 한창 무더울 때였다. 나는 생각했다. 마침 이렇게 더운 시기를 만났으니 이것은 내 심성을 닦을 좋은 기회가 아닌가? 외부 환경에 교란 받지 말고 한다고 했으니 곧 하자.
처음 나는 이틀간 준비 작업을 했다. 남편이 나를 도와 많은 글자를 칼로 잘라주었다. 나는 또 잘라진 글자를 분류해서 한 글자씩 가위로 잘라 각각 투명한 봉투에 넣고 한 글자씩 잘라진 것은 상자 하나에 담았다.
준비 작업을 끝낸 후 나는 개자 순서에 따라 고치기 시작했다.
우선 글자의 뜻(字意)에 따라 수개했다. 이때 필요한 글자는 반드시 동수가 출력해준 전체 글자 속에서 찾아야 했다. 이렇게 많은 글자 중에서 한 글자를 찾기란 상당히 어렵고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좀 조급해졌다. 이때 나는 곧바로 경각(警覺)했다! 이는 나의 조급한 마음을 닦으라는 게 아닌가?
이에 마음이 곧 안정되었고 속으로 조급한 마음에 대해 “멸(滅)”을 묵념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고 글자를 찾는 것도 빨라졌다. 매번 글자를 찾지 못해 속으로 조급해질 때면 나는 조급한 마음에 대해 “멸”을 묵념했다. 특히 “거무칙칙한(黑乎乎)”을 고칠 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글자를 고치는 것은 바로 내 몸의 ‘거무칙칙한’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반드시 잘 고쳐야 한다.”
지금 와서 보면 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그다지 쉽지 않았다. 날씨가 아주 더웠는데 나는 시종 결가부좌 자세를 유지한 채 글자를 고쳤다. 한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서 진땀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나에 대해 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늘 오전에 《전법륜》 한 강을 읽고 한 단락을 외운 후에 글자를 고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매일 6~8시간씩 앉아 이렇게 글자를 고쳤다. 6일째 되는 날 마음이 명랑해지기 시작했고 글자를 찾지 못해도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어서 발음이 같은 글자를 수개할 때 동수가 출력한 글자와 고쳐야 할 글자가 일치하지 않거나 또 틀린 글자도 있었다. 특히 동수가 고쳐야 할 글자를 원래 글자 그대로 쳐준 게 있었다. 이것을 보자 내 마음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동수가 좀 더 신중하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고 동수를 원망하는 마음이 나왔다. 이때 나는 곧 이 사람마음을 움켜잡았다. 이는 원한심(怨恨心)이 아닌가? 수련인이 어찌 원한심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바로 사부님께서 이렇게 하도록 배치하신 게 아닌가? 만약 순풍에 돛단 듯이 글자를 잘 고칠 수 있다면 어떻게 심성을 제고하겠는가? 나는 곧장 속으로 원한심을 “멸(滅)”한다고 묵념했다.
또 동수가 나를 위해 글자를 출력해준 것에 대해 나는 마땅히 동수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동수를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동수를 원망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가아(假我)니 나는 너를 없애야 한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해달라고 요청 드렸고 나는 이런 사람마음의 집착을 닦아 없애야 한다. 나중에 다시 유사한 일이 있었지만 더는 동수를 원망하는 그런 더러운 사람마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심성이 또 한번 제고된 것이다.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자 글자를 고치는 속도도 빨라졌다. 본래 마지막에 나흘이 필요했는데 나는 불과 이틀 만에 수개를 끝냈다. 아울러 수개의 질도 향상되었다.
이렇게 두 권의 《전법륜》을 수개하는데 총 12일이 걸렸다. 이 12일간 나는 20여 년간 수련했음에도 닦아버리지 못했던 사람마음인 조급한 마음과 원한심을 닦아 없앴다. 여기서 사부님의 가지와 동수의 협조에 감사드린다. 수련은 바로 이렇게 신기한 것이다.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매 한 가지 일 속에 있으니 이런 작은 일을 절대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아마 그 안에 우리가 닦아야 할 사람마음의 집착이 존재할 수 있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수련 중에서 매 한 가지 일에 대해 늘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비로소 사부님의 세심한 배치 하에서 제고할 수 있다. 마땅히 그 마음을 제거해야 할 때가 되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기회를 배치해주시는데 우리는 반드시 이 소중한 기회를 꽉 움켜잡아야 한다.
개인의 작은 체회(體會)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7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