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욕망과 구함을 끊고 대도(大道)로 돌아가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수련하기 전에 특이공능에 이끌려 기공에 입문했다. 몇 가지 기공을 연마했지만 공능을 연마해내진 못했다. 파룬궁(法輪功)을 배운 후에야 비로소 공력과 공능 이런 고층차의 것은 구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수많은 사람이 모두 밖에서 구하는데, 오늘은 이것을 구하고 내일은 저것을 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집착심을 품고 공능을 추구하는데 여러 가지 목적이 다 있다. 어떤 사람은 또 기공사가 되려 하고 병을 치료하여 돈을 벌려고 한다!”

사실 당시 나는 바로 이런 생각이었는데 사부님 말씀을 본 후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후 그런 강렬한 집착심이 담담해졌고 더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 법을 공부하다 수확이 컸는데 나는 이속에서 나의 근본 집착을 발견했고 또한 그것을 잘라버렸다. 처음에는 별로 느낌이 없었지만 점차적으로 아무런 걸림 없는 그런 가뿐함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파룬궁》에서 말씀하셨다.

“法輪功(파룬궁)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발전해 온 것으로서, 우주 중에 존재하는 공능은 法輪功(파룬궁)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바, 연공인이 수련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공능을 좀 얻으려는 생각이 그리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강렬한 추구는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므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낮은 층차에서 얻은 조그마한 공능은, 속인들 앞에서 재간을 피우고 속인 중 강자가 되는 것에나 쓰일 뿐, 별로 쓸모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바로 心性(씬씽)이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하므로 공능을 주지 않는 것이 옳다. 공능을 만약 心性(씬씽)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준다면 나쁜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공부하다가 문득 내가 깨끗이 내려놓지 못한 그런 공능을 구하는 마음이 아직 있으며 그것이 여전히 내 마음을 교란하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명혜망에서 공능을 지닌 동수가 쓴 문장을 보고 몹시 부러워했는데 이런 부러움이란 무엇인가? 남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으니 속으로 일종 실망감이 생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에 여전이 내게도 공능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으로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일종 구해도 얻지 못한 심리반응이 아닌가? 부러움 배후에는 과시하려는 생각이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마음에 욕망이 있고 구하고자 해서 조성된 결과다.

구함(求)이란 대체 무엇인가? 깊은 사고를 거친 후 내가 발견한 것은 구함은 사람이 도(道)에서 어긋난 후 방향을 잃고 아래로 떨어지거나 혹은 각성한 후 위로 올라가려는 표현이다.

그럼 사람은 왜 도에서 어긋나게 되었는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이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층차 중에서 또 그다지 좋지 못하게 변해 그들은 또 있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 아래로 떨어져 최후에는 인류 이 한 층차 중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저 사심(私心)이란 자신이 분수에 만족하고 자신을 지키지 못한 표현으로 부동한 층차의 표준 요구를 지키지 못해 밖으로 구하고자 하는 사욕(私慾)을 통제하지 못해서 조성된 것이 아닌가?

나는 또 과시심, 쟁투심, 질투심, 원한심, 명을 구하고 이익을 구하며 공능을 구하고 공덕을 구하고 원만을 구하는 등등의 일체 마음은 모두 밖으로 구하는 것에서 내원함을 생각했다. 물론 떨어진 후 도를 구하고 스승을 찾으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노력하고 정진해서 법의 표준 요구에 도달하고 법에 동화하거나 수련을 통해 반본귀진(返本歸真)하거나 또는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봉착해 사부님께 보호를 청하는 이것은 모두 옳은 것이다.

수련의 다른 일면은 바로 심성을 수련해 제고하면, 이에 따라 공력이 증가하고 공능이 증가하는 것으로 원만할 수 있는가 여부 등은 모두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법을 배우다〉에서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고 하셨다. 바로 제자들에게 오직 농사일에만 신경 쓰고 수확은 묻지 말라는 것이다. 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는 외에 다른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다. 만약 우리가 법 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 알리기, 자료배포, 법을 실증하는 일 등을 잘하면서 자신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남을 위해 생각하며, 모순 앞에서 안으로 찾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의 관념, 사유, 성격, 특성을 찾아내 그것을 제거하고 점차적으로 우주 부동한 층차의 표준요구에 도달한다면 그럼 우리의 심성이 바로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명(無明) 속에서, 미혹 속에서 사람들은 이 한 부의 법이 얼마나 큰지 보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보았다면 수련상태 중의 집착하는 표현은 모두 신에 대해 죄를 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따지지 않는다.”

내가 깨달은 것은 밖으로 구함은 일체 집착의 근원이며, 이는 신의 눈으로 보자면 바로 죄를 짓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법의 펼쳐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신도 우리의 집착을 죄로 간주하진 않겠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도리를 알려주셨으니 그럼 우리가 또 잘하지 못하면 그럼 분명히 알면서도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땅히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욕망과 구함을 끊고 하루 빨리 대도(大道)로 돌아가야 한다.

억만(億萬) 대법제자들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 하에 있으며 사부님께서는 매 사람의 근기, 오성, 고생을 감당하는 능력, 덕과 업의 크기, 심성의 높이 등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제자들에게 돈오, 점오, 개오 등 부동한 상태를 배치하신다. 그러니 제자 사이에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으며 이 때문에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고 자신이 현재 처한 상태가 바로 자신에게 적합하고 가장 좋은 상태임을 믿어야 한다. 이 역시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체현이다. 오직 다그쳐 사람을 구하고 자신이 세상에 올 때의 진원(真願 진짜 바람)을 실현해야 한다.

층차의 한계로 인식에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