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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은 이미 열려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안(朝顏)

【정견망】

나는 1997년 법을 얻은 이래 사부님 고덕대법(高德大法)의 빛나는 인도 하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25년이 지났다. 법을 얻기 전을 되돌아보면 7살 때 할머니와 고모에게 장래 자라면 사부님을 찾아가겠다고 했고, 마침내 법을 얻어 수련에 들어오기까지 중간의 우여곡절은 희비가 교차한다. 세계 파룬따파 날을 맞아 이 글을 써서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리고 대법 30주년 홍전(洪傳)을 아울러 축하한다.

1. 사명을 갖고 왔으니,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근기가 아주 좋음은 흔히 사명을 갖고 온 것으로서 고층차에서 온 것이다.”

대략 10살 무렵 나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천상(天上)에서 온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의 숙원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반의 몇 명 동급생과 독서회를 만들었는데 비로소 내가 본 책은 그들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제기한 문제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배운 생물학을 말하자면 진화론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그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이론인데 나중에 오히려 확인할 필요가 없는 사실로 되어 버렸다. 나는 선생님에게 진화론을 믿지 않고 무신론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기가 30년을 가르쳤는데 나처럼 이런 학생은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과학이 잘못된 기점에 서서 발전한 것이라면 인류의 여러 세대의 노력이 갈수록 더 큰 잘못이 될 뿐이다.

책과 생활에서부터 정확한 답안을 찾지 못하자 이런 곤혹감은 줄곧 지속되었고 고개 들어 달을 바라볼 때마다 수없이 떠올랐다. 그러다 1997년 우연히 《전법륜》을 빌리게 되어 밤을 새워가며 다 보았다. 확실히 제호관정(醍醐灌頂 역주: 제호탕을 부은 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지고 맑아지는 관정)을 받아 지혜가 들어오고 심지가 갑자기 열린 것 같았다.

나중에 “마치 전기 플러그처럼 꼽기만 하면 전기가 통하는”(《각지설법 10》〈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것처럼 나는 전류가 뼛속으로 전도되어 발생하는 미세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의 사명이 바로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생구도임을 안 후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자신을 더 잘 수련해 보다 많은 중생들이 대법의 복음을 듣고, 말세(末世)의 대겁난이 오기 전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얻기를 바란다.

동시에 대법제자는 적(敵)이 없기 때문에 99년 7.20 이후 명령을 받고 소위 나를 “전향”시키러 온 동료와 경찰들이 결국에는 마음으로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했다. 직장의 몇 부문이 연합하여 작은 팀을 만들어 회의를 열었는데 매 사람마다 처음에는 엄숙하다가 나중에서 만면에 웃음으로 변했다. 상사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이 우리를 다 전향시켰군. 기회가 되면 당신을 따라 파룬궁을 배워야겠어.”

2002년 내가 세뇌반에 끌려간 첫날 처음 만난 경찰이 나를 보고 놀라더니 말했다.

“어쩌다 그녀를 데려왔어?!” 그리고는 즉시 피하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문 뒤에서 이를 갈며 큰소리로 욕했다.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이 어째서 아직 죽지 않은 거지?”

중국에서 일반 국민의 아이들이 직장을 잡기란 쉽지 않다.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의 의식주를 위해 억지로 박해에 참여하는데 수시로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2011년 9월, 내가 감옥에 들어간 첫날 처음 본 감옥장 역시 놀라며 동료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녀를 잡아왔어?!”

심지어 내가 꿈속에 전남편과 아이를 따라 잘못하여 석탄 광산에 들어갔는데 그 속에 석탄차를 밀던 인부가 머리를 들어 나를 보고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그녀가 어떻게 여기를 왔을까?!”

아마 내가 어려서부터 품행이 단정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말도 착하게 하며 일하는 것도 좋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곳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파출소에서 새로 수입한 지문인식기가 몇 시간이나 내 지문을 검사해내지 못했다. 젊은 경찰이 내 손을 잡고 두 손을 부르르 떨며 흐느끼는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나봐요. 지문이 다 닳았네요! 우리는 다 진상을 알고 있습니다! 진상을 다 알아요.”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올라갈수록 이 형상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상 역시 순정하고 아름다우며, 존재하는 방식, 언행, 행동거지에 다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들이 한 말은 시(詩)와 같은데, 이것 역시 일정한 층차 중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더욱 높은 층차는 더욱 아름답다. 그 경지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절대 안 된다.”(《스위스법회설법》)

수감 기간에 두목은 나에게 형을 더 가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대법의 위덕 및 내가 쓴 시가(詩歌)가 사람의 심령 깊은 곳의 선량함을 불러일으켰다. 한 경찰이 어느 날 나를 데리고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계단 사이로 가서는 나를 진지하게 돌보며 말했다.

“당신은 돌아가서 곧 출국 하시오, 국내에 머물지 말고.”

2. 보살핌과 인도받는 인생 

사부님께서는 《홍음 5》 ‘다시 만들다’에서 “전통으로 돌아가면 길이 하늘로 통하리니”라고 하셨다. 나는 비록 문화혁명 이전 중국에서 출생했지만 다행히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중공 사당이 부어넣은 투쟁철학, 왜곡된 이론을 주입받는 동시에 할머니의 전통문화 교육을 받았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선과 악에 대해 중공과 다른 가늠하는 표준을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 “낡은 4가지 타파”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책을 돌려보았는데 그중 <백사전(白蛇傳)>이란 소설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법해(法海-백사전의 등장인물 중 하나)를 매우 미워하며 온갖 방법으로 허선(許仙)의 아름다운 혼사를 깨려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했다. 오직 나만이 백낭자는 사람을 해치는 요괴이며 법해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동창의 아버지가 나더러 머리가 좋아서 장래 자라면 대단할 거라고 말했다.

《홍루몽(紅樓夢)》에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두 분 신선이 있는데 바로 “망망대사(茫茫大士)” 와 “묘묘진인(渺渺真人)”이다. 어떤 때는 문둥병 승려나 절름발이 도인의 형상으로도 나타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당초 사부님을 따라 대궁(大穹)의 정상에서 삼계의 고층생명으로 내려오면서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배치가 있었다. 우리는 생생세세 사부님의 보살핌과 인도를 받았으며 마지막에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에 이르러 사부님과 성스런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3~5살 때 늘 나일론 실로 묶은 작은 사슴을 가지고 노는데 할아버지가 사슴 녹(鹿)과 관리의 녹봉을 뜻하는 녹(祿)이 발음이 같다고 하셨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내가 크면 녹을 받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9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소뿔로 도장과 상자를 만들어 내 생일 선물로 주셨다. 나는 관운과 재물을 상징하는 도장 상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하게 자상한 미소를 지으셨다.

어릴 때 여름날 잠자기 전이면 할머니가 부채를 부쳐주셨는데 부채 뒷면 그림이 ‘항주(杭州)18경’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장래에 갈 곳이며 인간 천당으로 내 고향인 호광(湖廣 호북성과 호남성)보다 낫다고 하셨다. 또 그때 당신들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나역시 두 분과 두 분이 하신 말씀을 다 잊었다. 나는 상심해서 잠들 때까지 울었다. 왜냐하면 장래 자라면 자기의 가정이 있을지 모르고 그저 아무리 더 좋은 곳으로 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느꼈다.

10살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는 내게 간지(干支)와 사주팔자를 가르치려 하셨는데 나는 고집을 부리며 거부했다. 할아버지는 유감스럽게 탄식하며 장차 이런 오랜 것들이 다 실전될 텐데 이후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을 거라고 하셨다. 나중에 나는 항주 정부기관에서 일을 했는데 늘 할머니가 부쳐주던 부채 그림의 풍경이 떠올랐다. 막상 종전에 조부모님의 말씀은 깡그리 잊고 있었다.

40여년이 지나서 내가 일본에 도착한 몇 년 후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여러 차례 내게 알려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일본 사람들은 좋다.” 그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특히 우리처럼 ‘흑오류(黑五類 역주: 문화혁명 당시 투쟁 대상이 된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악질분자, 우파분자를 말한다)’의 가정에서 이런 말을 하려면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옛날 사람들은 정말 운명을 알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매일 밤 자기 전 내게 세상을 일깨우고 좋은 일을 권하는 시나 글을 읽거나 외워주셨고 나는 이해되지 못하는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가 과거에 배운 많은 문장들은 사실 바로 세 글자 진선인(真善忍)이고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면 또 무슨 좋은 점이 있어요?”

할머니는 단정적으로 말씀하셨다.

“좋은 사람이 되면 반본귀진(返本歸真) 할 수 있단다. 천상에 바퀴가 있는데 돌면 곧 부동(不同)한 천상(天象)이 나타나며 또 조대(朝代)를 바꿀 수도 있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내게 알려주셨다.

“삼십년 하동, 삼십년 하서, 육십갑자는 바로 하나의 윤회란다.” 집 재산을 다 빼앗기고 맞아 넘어지고 “만 번이나 밟혀도 영원히 몸을 뒤집지 못하게 하던” 혁명 연대에 민간에 유전되어 온 이런 옛 지혜는 어려서부터 고민하던 내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1970년대 내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어느 날 많은 친구들이 이웃 왕 할머니 집의 마당에 가서 놀았다. 그때 중년의 두 외지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왕 할머니의 동의를 얻어 시원한 상 위에 앉아 바람을 쐬며 쉬었다. 이때 또 지팡이를 짚은 맹인이 왔는데 우리 앞을 거쳐 병원의 입원부로 갔다.

당시 막 비가 내렸는데 땅에는 큰 웅덩이가 생겼고 깊은 곳은 발목까지 잠길 정도였다. 사람들은 모두 거기를 피해 돌아다녔다. 십여 명의 어린 친구들은 장애인을 놀리며 함께 큰소리로 그 물이 있는 쪽으로 가라고 가리켰다. 나만 필사적으로 그에게 물을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하고 여러 아이들 목소리에 잠겨 마침내 웅덩이 중간에 걸어갔다 신발이 진흙탕에 푹 젖었고 버티다 보니 바지도 젖어 당황하여 갈팡질팡했다.

두 외지인이 이 장면을 보더니 서로 “이곳 사람들이 참 못 됐군. 다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얼른 말했다.

“저는 좋은 사람이에요.”

내가 여러 번 얘기한 후에야 그들은 내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가 “좋은 사람이에요” 라고 말했을 때 표현이 들은 체 만 체 했는데 사실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 마치 내가 몇 번이나 말하여 내 말을 기억하라고 한 것이었다. 무슨 놀러 갈 곳이나 문화생활을 할 곳이 없었던 70년대에 어디서 온지 모르는 이 두 사람은 사실 신이 착한 사람을 선별했던 것이다.

조부모님이 다 돌아가시자 나는 상의하거나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 되어 방황했다.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중년 남자를 만난 것이 두 차례였다. 그들은 나에게 정확한 인생에 대한 건의를 제기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마치 오래 헤어졌다 만난 지기처럼 떠돌아다니다가 한마디 말만 지적해주고 또 성큼 떠나 망망한 인해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내가 이 기괴한 일을 생각하니 그들은 아마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만났던 두 외지인이 아닐까 한다.

신령한 산과 땅에 신령한 싹이 자란다. 나는 16살 때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기 전날 고향을 떠났다. 내가 집을 떠나던 봄날 집 앞 언덕 수풀 속에서 갑자기 접시꽃 하나가 불쑥 솟아나왔다. 아침에 묵직한 하얀 꽃을 피우더니 점점 연분홍 큰 붉은 색으로 변했고 저녁에는 짙은 자색으로 변했다. 몇 년 후 어머니에게 이 일을 말하자 어머니는 놀라서 내게 알려주셨다.

“접시꽃은 우리 아이가 스무 살 때 출국 전에 또 한번 핀 적이 있는데 큰 쑥만큼 자랐고 무수한 꽃을 피웠단다.”

사부님께서는 《2014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이전에 사부를 따라 내려왔거나 부동한 역사 시기에 사부와 인연을 맺었던 이러한 사람은 매 일생, 매 일세 모두 업력을 깨끗이 없애고 나서 다시 전생했다.”

돌이켜 보면 한때 어떤 동료가 내 처지를 옆에서 보다가 감격하며 말했다.

“사람이 돌보지 않아도 하늘이 돌본다.”

사부님께 선발된 생명이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래서 언제든 늘 광명하고 즐겁다. 이 광명의 즐거움은 천리 밖에 떨어진 비물질 생명까지 전달될 수 있다.

한번은 내가 택시를 타고가면서 한 처장(處長)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하차할 때 동북 출신의 택시기사가 내게 말했다.

“당신을 보니 우리 중국에는 아직 희망이 있군요!”

3. 오래 전 인연이 연결되어 옛 소원을 이루다

25년이면 얼마나 긴 여정인가. 그 어떤 물질적인 이익이 없다면 어떤 애호도 금방 열기가 식기 마련이다. 하지만 밤을 새워가며 《전법륜》을 다 읽은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파룬궁은 말하자면 “세상을 위해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해 도를 세우며, 옛 성현을 위해 끊어진 학문을 잇고, 후세를 위해 태평성대를 여는(爲天地立心, 為生民立命, 為往聖繼絕學, 為萬世開太平.)” 지극한 보서(寶書)란 결론을 얻었다. 1년 후 1998년부터 나는 연공을 시작했고 공산당은 끝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파룬궁이 제창하는 것은 “유신론(有神論)”이며 중공의 “무신론(無神論)” 정권의 근기를 흔들기 때문에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과 싸우는” 중공이 어찌 이를 놓아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법(佛法)은 끝이 없는 것이다. 중공이 어찌 신불(神佛)과 하늘의 적이 되겠는가? 생명이 승화하는 과정에서 이 중공의 패망을 조용히 관찰하니 인생에 상쾌함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나는 정법을 구하던 밀레르빠(密勒日巴)가 ‘신(身), 구(口), 의(意)’를 상사(上師)에게 바친 것처럼 무조건 대법에 동화되기로 결정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 여기에서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게 하며, 일을 함에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어떠한 직장 환경 속에서도 당신은 당신의 직장 일을 잘하며,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게끔 해야 한다.” (《캐나다법회설법》)

“이 외에 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어떤 다른 일들을 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단지 여러분에게 더욱 잘하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나는 당신이 속인 중의 좋은 사람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최후에 초상적인 사람이 됨으로써 원만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캐나다법회설법》)

하지만 《서유기》에서 십세(十世)를 수행한 당승(唐僧)이 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한 무리 요괴들을 놀라 움직이게 한 것처럼 뭇신들이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 십악독세(十惡毒世)에 좋은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으며 또 그 어떤 기관도 당신에게 자격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

간수소 대기실에서 2주를 머문 후 나는 미결수 방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마작을 하다 잡혀온 가정주부가 하나 있었는데 집에서 내가 만든 진상 소책자와 션윈 씨디를 받고 아침부터 내내 내가 옮겨갈 때까지 울었다. 어떤 때는 기회가 있으면 내 손을 잡고 만지며 끊임없이 중얼 거렸다.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재판이 열린 후 간수소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내가 4년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리자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감호실이 단번에 다 조용해졌다. 마음이 약한 몇몇 사람들은 즉시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직장을 찾다가 잘 모르고 사기꾼 회사에 말려든 한 아가씨가 내게 말했다.

“당신이 간 이후 나는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어요.”

전문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종사하던 한 경찰이 감옥에 와서 심문하면서 내게 정말 이상한 일이라면서 말했다.

“(당신) 직장에 가서 당신을 조사할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나이트 클럽에서 일하던 한 여자가 겨울에 내 솜이불을 빌려갔는데 한 달 정도 지난 후 내 열 발가락이 다 얼어서 동상에 걸렸다. 어떤 사람이 그녀가 낮에 내 것을 훔쳐 먹고 밤에 내 목을 누르는 것을 보고 나를 도와 솜이불을 되찾아주었다. 그녀가 기겁하여 감옥실장에게 알렸다. 그러자 감옥실장이 냉랭하게 말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는군.”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 이루어 창궁에 오르는”(《홍음》)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나쁜 사람’이라 불리건 ‘좋은 사람’이라 불리건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마음에 두는 것은 “慈悲(츠뻬이)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홍음》)이다.

눈 깜짝 할 사이 희망지성(希望之聲)에서 근무한 지 4년이 되었다. 방송국은 계속 발전해서 128개 채널까지 되었다. 국내 민중들도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다. 대법 중에는 많은 신적이 있다. 세계 각지에 분산된 동료들이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묵묵히 협력하고 그것도 전문가도 아니고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 생동감 있게 매체를 만드는 이것 역시 대법의 신적 중 하나일 것이다.

희망지성에 들어오기 전에 어느 날 나는 스미다 강(隅田川 역주: 동경 동부지역을 흐르는 강)에서 나팔을 불었다. 오른쪽 뒤에 유쾌한 생각이 들어와서 말했다. 뒤에 또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속으로 흔쾌하게 응낙했다. “그러지요!”

오래지 않아 희망지성에서 편집인과 기자를 초빙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시험 삼아 연락했더니 곧 채용되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늘 사촌 언니 이야기를 했다. 약 백 년 전 북경대학 신문계열을 졸업했는데 한때 중화민국 ‘중앙일보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마치 고대 화목란(花木蘭)처럼 나라를 구하고 공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나는 현재 매일 중화민국(대만) 동수와 함께 뉴스를 만든다. 하늘에 계신 조부모님의 영혼에 아마 매우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홍음 6》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와 함께 신의 길에서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는 동수들에게 감사한다.

수필(隨筆)

창우(蒼宇)는 더없이 크고도 미세한데
난간에 기대어 천하를 바라보네
홍조(紅朝) 기운 다 되었나니
악명으로 만년(萬年)을 욕먹으리라
인문(人文)은 화하(華夏)로 되돌아가고
중원에선 옛이야기를 하리라
음양(陰陽)이 다시 평형해지고
귀경(回京)하여 높은 곳에 머물리라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