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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운동에서 생각난 것

형우(馨雨)

【정견망】

이 문장을 쓰는 목적은 단지 수련인들과 교류하려는 것이지 일반인과 토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어떤 물질이든 다 운동(運動)하고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신우주의 생명도 마찬가지로 운동하고 있고 구우주의 패괴(敗壞)물질도 여전히 운동하고 있다.

구우주(舊宇宙)의 물질이 죽음을 생각하면 분명 죽지 않으려고 생각하지만 죽지 않으려고 생각해도 역시 죽어야 한다. 신진대사는 바로 물질운동의 법칙이다.

하지만 지금 신구(新舊) 우주가 교체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일부 격렬하게 보이는 표상과 관련이 있겠지만, 물질의 ‘운동’이란 본래 일종 본능(本能)이다. 그 어떤 물질이든 다 운동하고 있고 운동이 바로 ‘본능’이다. 욕망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의 운동 ‘본능’이다. 그러나 ‘본능’의 최종 목적은 바로 사는 것이다. 물론 정법수련자 역시 그 ‘본능’이 있는데, 이 ‘본능’은 더욱 아름답거나 또는 아마 그의 운동하지 않는 ‘본능’이 이미 운동하는 일체를 통제할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대법이 창우(蒼宇)에서 널리 전해져 건곤(乾坤)을 다시 만들기 때문에 아마 이번의 격렬한 표상은 구우주의 모든 운동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주는 이미 갱신되었고 승급(升级)되어 더 완벽하고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아마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지나가고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구우주가 해체되고 사악이 해체될 것이다. 사실 사존께서는 이 방면의 법리를 이미 가르쳐주셨지만 단지 당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의 깨달음 단지 개인적인 이해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경지(境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이란 이 공간에서 발생하는 일체는 사실 모든 정법시기 대법제자와 직접 관계가 있다. ‘백지’에 담긴 뜻은 아마 우리가 절대적인 순정(純淨)함에 도달해 더는 일체 집착에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체 집착은 바로 ‘정(情)’에서 내원하는데, 다시 말해 구우주의 일체와 연계를 단절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절은 표면적인 단절이 아니라 내심에서 나오는 심경(心境)의 단절이다. 그러므로 이 최후 시각에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일체를 더는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일체를 훼멸하려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스스로 훼멸하고 있다.

우리 수련인은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純真)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일체를 주셨는데 여기에는 가장 미시적인 생명의 탄생을 포괄한다. 그렇다면 구우주의 일체는 모두 우리와 상관이 없는데, 일찍이 구우주 중에서 가장 미시적인 자신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아울러 시간이 끊임없이 흘러감에 따라 철저히 소실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우주가 이미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부님께서 《마성을 제거하자》란 동수의 문장에 대한 평어로 이미 가르쳐주셨고 동수도 아주 똑똑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에 와서야 명백해졌으니 정말로 아주 부끄럽다. 자신의 수련에 문제가 있었고 자아가 너무 강해 사부님의 정법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사실 전민(全民) 반박해(反迫害)는 마땅히 3년 전에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각종 원인으로, 수련자의 자아와 무기력 및 집착이 너무 많아 빈틈을 탔기 때문에 시간이 거듭 연기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르친 것은 없는데 왜냐하면 일체는 아마 이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경지(境界)가 높을수록 만약 일사일념(一絲一念)이 집착에 이끌리면 아마 자기 층차 이하의 중생에게 보다 큰 재난을 가져다주게 되는데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집착을 방임하는 자체가 바로 사악을 방임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자신을 방임하는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쩌면 나 역시 위난(危難)에 빠졌음에도 어떻게 벗어날지 몰라 정법(正法)시간을 거듭 연기시켰을지 모른다. 물론 결국에는 결속해야 한다. 다만 수련 중에서 제대로 정진하고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아마 전부(全部)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사실 수련인으로서 반드시 법을 많이 배우고 법을 많이 배워야 하는데 대법은 법력(法力)이 무변(無邊)하다. 오직 진심으로 수련하기만 하면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저절로 하나하나 해결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명문(命門)은 극히 관건적인 주요한 대규(大竅)로서, 도가에서는 규(竅)라 하고 우리는 관(關)이라 한다. 주요한 큰 관으로서 그것은 정말로 철문이며 무수한 층의 철문이다.”(《전법륜》)

물론 개인적으로 관을 넘는 것은 정해진 수(定數)와 일정한 관계가 있어서 시간이 되면 마땅히 어떻게 되어야 하면 그렇게 된다고 본다. 사실 일체는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시공간 속에서 단지 자신을 잘 수련하기만 하면 된다.

이상은 개인적인 깨달음에 불과하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