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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수필: 믿음을 말하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근래에 법을 공부하는데 늘 똑똑히 깨닫는 법리(法理)가 얼마 되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이 좀 태만해진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서둘러 예전의 신사신법(信師信法)의 태도를 되찾을 것을 요구했다. 정말로 털끝만큼의 차이가 큰 잘못을 초래할 수 있는데 사상에 조금이라도 편차가 생기면 아주 멀리 빗나갈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은 믿음은 반드시 진정한 믿음(真信)에 도달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믿음에는 다양한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믿음 중에 불신을 지닌 것, 믿음 중에 의심을 지닌 것, 단지 믿기만 하고 믿는 것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것, 믿음 중에 자신이 아는 믿음만 지니는 것, 절대 다수 부분은 믿지만 그래도 약간 의심이 남아 있는 것 등 아주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바로 이런 다양한 정도의 믿음을 거쳤다. 처음에 나는 자신에게 믿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믿음이 대체 무슨 뜻인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구절의 법이 있다고 하자. 우리가 법을 믿는다고 말할 때 이 구절 법에 어떤 뜻이 있는지 우리는 제대로 이해했는가? 우리는 분명 그 중의 모든 함의를 말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글자의 표면적인 뜻과 그 중 일부 내함(內涵)을 이해해야만 좀 더 잘할 수 있고 그래야만 믿음의 문제를 말할 수 있다. 법(法)마저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슨 믿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믿는 게 무어란 말인가?

일부 법의 내함을 정말 이해한 후에야 믿음을 말할 수 있다. 내가 진지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보고 나서 발견한 것은 내가 믿는 것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그 부분에 불과했다. 그것도 믿는다고 해서 즉각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또 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자신이 깨달은 법리에 따라 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했다. 아울러 진정으로 해낼 수 있는 것 역시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하는 것과 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게 해낸 후에는 또 절대로 자신이 이해한 것만 따라 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하는데, 법속에는 또 보다 큰 내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후에야 비로소 제고하는 길이 있고 비로소 빗나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실제로 해낼 때는 아주 많은 공력을 들여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아주 쉽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많은 공력을 들여야 한다.

짧은 감수와 깨달음으로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