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飛龍)
【정견망】
몇 년 전, 진상소책자에 이런 이야기가 실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옛날에 아주 가난한 한 청년이 있었다. 외모는 잘 생겼고 똑똑했으며 또 선량했지만 아주 가난했다. 너무 가난해서 때로 밥을 빌어먹어야 했다. 어느 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걸까? 언제쯤이면 내가 부유해질 수 있을까?’
그는 운명이 어떻게 배치된 것인지는 오직 부처님만 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그는 서방(西方)에 가서 직접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런 질문을 하고자 결심했다. 이에 즉시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도중에 어느 큰 부자 집에 도달했다. 부자는 그에게 자신의 벙어리 딸이 언제쯤 말을 할 수 있는지 부처님께 여쭤봐 달라고 부탁했다.
또 어느 절에 이르자 방장(方丈)이 선장(禪杖)을 짚고는 그에게 자신이 언제쯤 원만할 수 있는지 여쭤달라고 부탁했다.
또 큰 강가에 이르렀을 때, 만년 묵은 거북을 만났다. 거북은 자신이 만년(萬年)을 수련했는데 언제쯤 정과(正果)를 이룰 수 있는지 부처님께 여쭤봐 달라고 부탁했다.
가난한 청년이 이런 부탁들을 가지고 서쪽으로 몇 년을 걸어갔다. 산 넘고 사막을 지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배고픔과 피로가 겹쳐 죽을 것 같은 혼미 상태에서 꿈에 부처님을 뵈었다. 부처님은 그에게 오직 세 가지 질문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참 고민한 후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 자신의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부탁받은 것들을 일일이 여쭤보았고 부처님은 세 가지 질문에 해답한 후 곧 사라지셨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시 몇 년의 고생을 거쳐 마침내 돌아왔다.
먼저 늙은 거북을 만나 “네가 네 등껍질을 버리기만 하면 정과를 이룰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거북은 이 말을 듣자 곧 깨달았다. 원래 거북의 등껍질 속에는 그가 닦아낸 수많은 보패(寶貝), 금, 옥, 보석,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거북은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등껍질 속의 보물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보물이 많은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 엄청난 집착이었다!
거북이 청년에게 말했다.
“등껍질 안에 있는 보물은 이제 내겐 쓸모가 없으니 너에게 주마.”
보물을 준 후 거북은 수련 성취되어 한 줄기 금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또 방장을 만난 청년은 “네가 선장을 버리면 곧 원만할 것이다.”란 부처님 말씀을 전달했다. 방장 역시 금새 깨달았다. 자신은 날마다 자금(紫金)으로 만든 선장을 짚고 다녔는데, 그 가치가 대단한 것을 알았다. 그는 이것으로 다른 승려들을 거느리고 일하거나 경을 읽거나 가부좌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마치 고관(高官)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이 있었고, 늘 자신이 고인(高人)이 된 것처럼 남보다 신분이 있고, 지위가 있으며, 남보다 더 훌륭하며, 덕망(德望)도 더 높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우쭐거리며 뽐냈다. 이미 집착이 아주 심했음에도 바로 이것이 수련의 큰 금기임을 그 자신만 몰랐던 것이다. 그는 선장을 청년에게 주고는 곧 원만했다.
청년은 또 부잣집을 찾아갔다. 딸이 그를 보더니 황급히 달려가 “아버지, 부처님께 여쭤봐 달라고 부탁했던 그 청년이 돌아왔어요.”라고 말했다. 부자는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딸이 마침내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청년을 집으로 맞이했다.
청년은 “네 딸은 자기 남편을 보면 입을 열어 말할 것이다.”라는 부처님 말씀을 전달했다. 부자는 자기 딸이 방금 청년을 보자마자 말문을 열었다고 했다. 즉 이 청년이 바로 자기 사위였던 것이다. 부자는 딸을 청년에게 시집보냈고 자신의 가업(家業)도 모두 맡겼다. 청년은 이 집의 주인이 되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사실 사찰의 방장이라면 덕망이 높고 법리(法理)에 밝아 이치를 환히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다른 승려들을 이끌고 수련할 자격이 있다. 이런 지위, 신분, 경지, 층차에 도달하려면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이는 성적(成績) 내지 성취로 볼 수 있는데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성적과 성취 자체에 집착해서 이를 기뻐하고 중시한다면 아마 제고에 장애가 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은 쉽게 알거나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무섭다.
마치 이 이야기에서 문제의 본질을 짚어줄 부처님이 없었다면 방장은 아마 죽을 때까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고 또 원만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좋고, 옳으며,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 수련에서는 치명적인 장애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늙은 거북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만 년 넘게 수련하면서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자신이 수련해 낸 보패(寶貝)도 점점 많아졌고, 휘황찬란한 것들로 가득했다. 이것은 성적이자 성취로 볼 수 있다. 역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 너무 집착하면 역시 저애가 될 수 있는데, 환희심이 점점 커짐에도 자신은 모른다. 역시 부처님의 점화가 없었더라면 수련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대법수련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마치 사부님께서 초기 설법에서 말씀하신 지식인이 대법을 배우는 장애와 같다. 지식인은 지식이 있고 식견이 있고 신분과 지위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성적이요 성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이 역시 장애가 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수련 중에서 천목이 잘 보이고, 공능이 좀 많고, 동작이 좀 좋고, 한 일이 좀 많은 것과 같다. 어느 것이든 희희낙락해선 안 된다! 또한 마음을 움직여서도 안 된다! 사실, 우주는 무변무제(無邊無際)하고 대법은 지고무상(至高無上)하며 사부님의 위덕(威德)은 끝이 없는 것으로, 자신의 고만한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에 불과한데 희희낙락하며 마음을 움직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 일화 속의 방장과 거북에 대해 또 한 가지를 말해보자. 수행(修行)을 말하자면, 많은 일의 본질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상사(上師)의 점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바로 법을 배워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진정으로 법의 요구에 따라서 해야 한다. 법으로 자신의 언행·사상을 가늠하고 또 바로잡아야 한다.
예를 들면, 사부님 설법을 통해 우리 모두 알다시피 구세력은 우리에게 억지로 썩은 물질을 더해 우리의 사상을 미혹에 빠지게 했다. 가령, 소극적이거나 어쩔 수 없어 하거나 게으르고 산만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등이다. 사부님의 법은 우리에게 구세력의 음모와 계략을 확실히 알려주었다. 하지만 우리 많은 수련생들이 단지 아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강요된 부패 물질을 시시각각 소멸하고 모두 제거했는가? 개인적인 깨달음은 이런 것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죽지 않으면 곧 수련생을 교란하고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물론 수련생들의 오성과 인식은 어떤 층차이든 다 있다. 하지만 법을 위배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사부님의 경문 《깨어나라》가 발표된 후 많은 수련생들이 수많은 문장을 발표해 자신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어떤 이는 절대 다수의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따라 법정인간시기로 가고 오직 소수만 원만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또는 대법제자가 원만하는 형세는 백일비승(白日飛升) 할 수 없다고 깨달았다는 등등이다. 나는 이렇게 깨달은 수련생에게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인지 묻고 싶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사부님께서 시간을 연장하셨다. 법에서 알 수 있다시피, 사부님께서는 원래 대법제자는 법정인간시기로 들어가지 않도록 계획하셨다. 법정인간은 속인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 정체가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전부 법정인간시기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우리가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게 이미 한두 번만은 아니다.
박해 초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발정념을 하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5분이면 사악이 삼계에서 영원히 사라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해내지 못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또 발정념을 잘하면 사악의 절반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해내지 못했다.
그 후 강택민(江澤民 장쩌민) 고소 안건이 나왔는데 지금까지 겨우 20여만 명이 고소했다. 역시 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사부님께서 시간을 연장해 우리더러 법정 인간시기로 들어가게 하신 것 역시 예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내지 못해 심성(心性)이 정법노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하신 게 아닐까? 사부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다!
수련을 잘 해서 원만의 표준에 도달한 이가 있는가 없는가? 아주 많을 것이다. 하지만 표준에 도달해도 원만할 수 없고 단지 봉폐시켜 보존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미혹 속에서 남들과 같게 보일 뿐이다. 다만 집착심이 아주 담담해서 마찬가지로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 표면으로 봐서는 누구도 모르며 그 누구의 천목으로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아마 어떤 이는 물을 것이다. 왜 이렇게 하느냐고. 왜냐하면 이 일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아직 사람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사부님께서 어디에 계시면 우리는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 맞이하지 않는데 누가 제멋대로 원만할 수 있는가?
어떤 동수는 교류문장에서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는데 사부님께서 오시는 걸 천목으로 보았고 사부님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시고 정말 대단하고 아주 훌륭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 말이 진짜일까? 사부님께서 오셨다고 하는데 사부님께서 언제 우리를 떠나신 적이 있는가? 떠나시지도 않았는데 돌아오셨다는 게 무슨 말인가? 사부님의 법신이든 광활하고 무변한 꿍선(功身)이든 막론하고 모두 사부님의 육신(肉身)에 기초한다.
고층의 그런 신체(身體)는 단지 사부님의 방대하고 무변(無邊)한 공(功)의 체현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세상의 육신이야말로 사부님의 주존(主尊)이시다! 외국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자 사부님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아주 대단하다고 하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원만한 것도 아니고, 귀위(歸位)한 것도 아니다. 심성이 단 하나의 누락도 없는데 도달하지 못했다! 설령 정말 도달했다 해도 역시 사부님께서 구도하신 무량한 중생의 하나일 뿐이다.
뭇신(衆神)들은 모두 사부님을 뵐 때 무릎을 꿇어야 한다. 천목이 열린 동수여! 사부님께서 무릎을 꿇지 않도록 허락하신 것만도 이미 하늘만큼 큰 은전(恩典)이다! 어찌 감히 사부님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드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가? 생각만 해도 다 우습다!
어떤 이는 사부님께서도 대법제자가 대단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맞다, 그건 설법이다! 그것은 격려이고 긍정이다! 그것은 모든 대법제자를 겨냥한 자비다! 책임자를 포함한 수련생이 단독으로 사부님께 질문하면, 일부 문제들은 사부님께서도 대답하실 수 없는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법신(法身)의 형식으로 어느 한 수련생을 특수(特殊)하게 하실 수 있겠는가? 만약 정말 이렇다면 이 수련생을 구세력이 어떻게 대하겠는가?
TV 드라마가 과장이 심하다고 하지만, 그 황제가 조정에서 어느 대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없을 것이다. 대신(大臣)이 아무리 잘해도 마찬가지다. 신하가 임금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은 다 당연한 것이다! 공로가 있으면 포상할 수 있다! 불과 이뿐이다! 당신들 누가 또 도가(道家) 사부나 불가(佛家) 사부가 자기 제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대법도(大法徒)로서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는 천경지의(天經地義)다. 잘하지 못하면 또 안 되지 않겠는가!
주(主)・왕(王)과 중생(衆生)은 엄격한 등급이 있는 것으로 절대 뛰어넘어선 안 된다! 사부님께 공경하고 대법에 공경해야만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4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