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明心)
【정견망】
최근 법공부에서 자신을 줄곧 곤혹스럽게 했던 2가지 문제를 깨달아 지금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우리가 수련 중에 때로 명백하지 못한 곳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을 때면 사실 법에서 모두 일찌감치 답안을 주셨음을 발견했다. 어떤 것은 비교적 명확하게 주셨고 어떤 것은 자신이 한번 깨달을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깨달아 제자에게 위덕(威德)을 남겨주시려 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수련상태와 환경의 제한으로 단번에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이때는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하는데, 더욱이 그 어떤 의심도 품지 말고 끊임없이 법속에서 정진 수련해야 한다. 마땅히 명백해질 때가 되면 곧 명백해질 것이다.
1. “반수와 차공”에서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깨닫다
아마 대부분의 대륙 수련인들은 모두 자신이나 다른 동수에게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즉 큰일은 아주 잘하고 큰 이익은 버릴 수 있으며 큰 시비(是非)앞에서는 모호하지 않지만 작은 일에서는 도리어 잘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어떤 작은 일은 아주 잘하지 못하는데 세인이나 심지어 가족들이 탄복하게 하지 못하고 무형 중에 대법에 부면(負面)영향을 초래한다.
때로는 속인이 “당신들 수련하는 사람은 아직 속인이 하는 것만도 못한가!”라는 말을 듣는다. 이럴 때면 나는 비록 매 사람마다 모두 제고과정이 있다는 등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와 해명을 해주지만 늘 좀 유감을 느낀다. 왜 우리 많은 사람들은 수련을 잘한 일부 동수들처럼 그렇게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대법제자의 풍채를 드러내지 못하는가?
최근에 “반수와 차공” 단락을 공부하다가 문득 우리의 수련이 어떤 면에서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반수(返修)와 비슷함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선천 최고 위치까지 밀어주셨고 그런 후에 우리는 또 위에서 아래로 수련해 원만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수련하는 이 과정에서 가장 닦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 표면의 이 한 층이다. 특히 대륙인들은 사당(邪黨)의 당문화에 세뇌되어 사람이 되는 이 방면의 기초문화 부분이 부족하다. 이 부분은 전통문화를 학습해서 보충할 수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통으로 돌아가면 길이 하늘로 통한다.”(《홍음 5》〈다시 만들다〉)
그리 적당하진 않지만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만약 대법의 법리를 박사과정이라고 한다면 전통문화에서 사람이 되는 도리는 바로 초등학교나 중학과정에 해당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시작하자마자 고층차의 법리를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고층차에서 수련하지만 만약 우리가 초중등 과정의 기초를 잘 다지지 못했다면 부족한 그런 부분은 보충수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초가 부실해져서 더 높은 층차로 돌파할 때 곤란이 있을 수 있다.
마치 반수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수련해 원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문화를 타파하고 전통문화를 회복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또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지도가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수련은 아래에서 위로 수련하며 줄곧 개공(開功)하여 원만(圓滿)에 이를 때까지 수련한다. 반수(返修)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많아 아래에서 위로 수련하기에는 늦었으므로 그가 위에서 아래로 수련하면 빠른데, 역시 당시에 조성된 현상이다.”(《전법륜》)
우리가 수련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수련해서는 늦는다.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단번에 우리를 선천의 최고 위치까지 밀어주신 것으로 이렇게 하면 수련이 빠르다. 하지만 또 자신에게 보충수업이 필요한 부분을 느슨히 해선 안 된다.
물론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정말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 때면 우리는 또 “차공(借功)”할 수 있으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신통(神通)이 충분한지 어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직 정법(正法)이 필요로 하고 사람을 구할 필요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한 지혜와 에너지를 주신다. 마치 차공에서 수송관을 통해 이미 형태가 이루어진 것을 우리 두뇌와 신체 속으로 수송하는 것과 같다.
2. “기공과 체육”에서 어떻게 수련의 슬럼프를 돌파할지 깨닫다
아마 아주 많은 동수들도 이런 상태가 나타났을 것이다. 한동안 아주 정진하지만 한 단락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극적으로 된다. 다시 말해 이런 상태가 옳지 않음을 알지만 정진하지 못한다. 한동안 노력을 거쳐야만 비로소 다시 정진할 수 있는데 늘 이렇게 순환하는 현상이 있다.
이런 순환시간은 사람마다 길이가 다른데 어떤 사람은 며칠, 어떤 사람은 몇 달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몇 년간 정진하지 못하며 서서히 자신을 속인과 혼동하다가 어느 날 문득 놀라서 정신을 차리기에 이른다.
어느 날 법을 공부하다가 “기공과 체육” 단락을 읽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하루를 열두 시간으로 비유해 말한다면, 아침 여섯 시부터 세포가 분열해 나와 줄곧 향상하고 향상함이 나타나는데, 여덟ㆍ아홉 시, 열 시경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매우 좋은 시기이다. 열두 시가 되면 그것은 더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아래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이 시간 내에 세포는 아직 절반 생명력이 있는데, 이 절반 생명력은 운동선수의 경기상태에 적합하지 않다.”(《전법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 신체가 완전히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되기 전이라면 우리 육체에는 이런 순환과정이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에게 “언제나 향상하는 가장 좋은 경기상태”(《전법륜》)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운동선수가 신체훈련을 강화하는데 의지한다면 우리는 법 공부와 연공을 강화해 이 슬럼프 단계를 돌파해야 한다.
운동선수는 운동량이 클수록 더 빨리 슬럼프를 돌파할 수 있다면, 이 때 우리는 법 공부 힘이 클수록 더 빨리 정진하는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동수는 몇십 년을 마치 하루처럼 시종일관 정진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그 동수들이 수련 중에서 이미 이 층차를 돌파해 질적인 변화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진정하게 명을 닦는 공법은 채집하여 온 고에너지물질을 인체의 세포 중에 끊임없이 축적하고, 그것의 밀도를 끊임없이 높게 할 때, 점차적으로 속인의 세포를 억제할 수 있으며, 서서히 속인의 세포를 대체한다. 그때 가서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 이 사람은 곧 청춘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전법륜》)
운동선수는 신체훈련을 강화하기에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지만 수련인은 법 공부와 연공을 강화해서 오히려 수련과정을 단축시키고 자신은 아주 빨리 청춘이 오래 머무르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진하며 나태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