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에덴동산의 ‘열매’

소천사(小天使)

【정견망】

여기서 본인의 수련 중 깨달음을 말해보고자 한다.

에덴동산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왜 하와는 그 열매를 먹으려 했을까? 그녀에게는 분별력이 없단 말인가? 그 ‘뱀’은 왜 하필 하와를 유혹해 이 열매를 먹게 했을까? 에덴동산에는 식물이 무성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 열매만 금지된 것일까.

에덴동산의 ‘열매’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과라고 말하는데 사실 원래 사과를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단지 나무에 열리는 열매를 말한 것이다. 어떤 이는 ‘생명 나무’의 열매라고 하는데 사실 진상(真相)은 아마 ‘양귀비 열매’일 것이다.

우리는 법 공부에서 그 어떤 물질이든 다 그것의 ‘왕(王)’이 있음을 알기에, ‘에덴동산’이란 우주에서 층차가 아주 낮은 이 공간에 ‘양귀비’가 존재하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인간세상에서 ‘양귀비’의 모든 것은 대중들에게 배척당한다. 꽃이며 열매며 열매 껍질까지도 금지되는데 이것은 사람을 낙태시킬 때 사용하거나 환각과 중독을 초래할 수 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독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의 독성이 성욕이나 욕망의 방종을 부채질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통해 ‘뱀’이 왜 하와에게 금지된 열매를 먹도록 유혹했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은데 ‘뱀(蛇 shé)’은 사실 바로 색(色 sè)이다. 두 글자는 발음이 비슷하고 또 ‘색’이란 글자의 어원이 원래 뱀을 형상한 것이며 색은 독성(毒性)을 지닌다. 또 그것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양귀비 열매’다. 이는 그것의 음식인데 그것에게 다른 음식은 흥취가 없다. 아울러 그것은 하와와 아담이 타락한다면 자신에게 유리하고 자신이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야심이 아주 커서 사실상 생명을 모두 죽이려 한다.

비록 에덴동산이 우주에서 층차가 아주 낮은 곳이긴 하지만 그 공간에도 여전이 아름답고 욕(慾)이 없는 곳이 있다. 하지만 필경 생명이 이곳까지 추락했다는 것은 순정(純淨)하지 못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안에 ‘뱀’의 존재가 있는데, 그 어떤 물질이든 모두 살아 있는 것으로 다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 만약 생명이 계속해서 추락하려면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바로 ‘금기를 어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속해서 ‘하늘의 법규’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귀비 열매’를 ‘생명의 열매’라 한 것은 일종의 풍자로 이는 바로 ‘뱀’의 도발이다. 그것은 이 열매를 먹으면 지혜가 생긴다고 하면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육성했다. 사실 이는 바로 하늘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르러 태어난 생명은 사실 더러운 것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정(情)’을 지니고 있다. 유전자 속에도 ‘정색욕(情色慾)’을 지닌다.

사람의 모든 ‘바람’은 다 일종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이렇게 되길 원하고 저렇게 되길 원하는데 ‘정(情)’을 위하여 살아간다. 여전히 추락과 악과(惡果)를 감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런 ‘위사(爲私)’는 스스로 알아채기가 아주 어렵고 돌아보기도 아주 어려워서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늘로 돌아가려는’ 망상은 사실 일방적인 희망에 불과한데 자신에 의지해서는 근본적으로 진정한 천국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구우주(舊宇宙)의 생명이 걸어간 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만약 사부님께서 홍대한 자비로 대법을 널리 전하지 않으셨다면 일체는 다 해체되고 모조리 사라지게 되는데 그중에는 당신과 나 그가 포함된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구우주 중의 삼계(三界) 범위에서 ‘무색계(無色界)’에는 ‘뱀’이 없거나 있더라도 아마 나중에 생겼을 것이다. 구우주는 마치 진흙탕과 같아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층층마다 패괴(敗壞)되었고 진정한 사탄은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홍색 악룡(惡龍)을 형성했다. 사실 모두 같은 것으로 모두 사악한 홍마(紅魔)의 화신(化神)이다. 구세력의 나쁜 신 역시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신(神)이 아니라 이미 마(魔)가 되었다.

사존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신우주(新宇宙)에는 ‘뱀’이란 이런 생물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가 다 상대적으로 아름다워진다고 알려주셨다. 물론 또 패괴(敗壞 부패해서 무너짐)의 과정도 있을 수 있지만 더는 구우주처럼 최후에 더는 구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보다 많은 찬송하는 말들을 쓰지 못한 것은 마치 그 어떤 말과 행동도 다 적합하지 못하고 도리어 더욱 활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