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법무정법(法無定法)”(《전법륜》) 이 단락을 전에 여러 번 읽었지만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사부님께서 석가모니의 상태를 말씀하신 것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최근 이 구절 법을 읽으면서 약간의 내함(內涵)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가 매 층차를 제고할 때마다 돌이켜보면 방금 자신이 말한 법이 모두 맞지 않았다. 다시 제고한 후에 그는 말한 법이 또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가 또 제고한 다음에, 그는 방금 말한 법이 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49년간 내내, 그는 모두 이렇게 끊임없이 승화했으며, 매 층차를 제고한 뒤마다, 그가 이전에 말한 법이 모두 인식상에서 매우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전법륜》)
나는 사부님께서는 단지 석가모니만 말씀하신 게 아니며 대법제자도 수련 중에서 마찬가지임을 깨달았다.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만 부족함을 볼 수 있고 또 제고할 수 있다. 자아(自我)가 없어야만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겸손해야만 승화(昇華)가 빠를 수 있다. 석가모니가 만약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또 그 옳음을 지켰더라면 그는 아마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제고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의 제고가 줄곧 매우 느린 것은 약간의 법리를 깨달으면 곧 자신이 어떻다고 여기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마음속에 아주 강한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한 걸 나는 깨달았으니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다. 교류할 때도 흔히 다른 동수에게 “당신 그렇게 하면 옳지 않아요, 당신 그렇게 하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자기가 옳다는 상태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수련인에 대한 장애이다.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면 법(法)이 펼쳐져 보이겠는가? 이미 자신을 묶어버린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때문에 그는 법무정법(法無定法)이라고 했다.”
“최후에 석가모니는 또 말했다. “나는 일생 동안 아무런 법도 말하지 않았다.” 선종은 또 말할 법이 없는 것으로 이해했다. 석가모니는 만년(晩年)에 이미 여래 층차에 도달했는데 그는 왜 아무런 법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는가? 그는 사실 어떤 문제를 말한 것인가? 그는 말했다. “나는 여래 이 층차에 도달했지만, 나 역시 우주의 최종적인 이치, 최종적인 법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후세 사람들이 그가 한 말을 절대적인 진리, 변치 않는 진리로 여기지 말도록 했는데, 그렇게 여기게 하면 후세 사람들을 여래 또는 여래 이하 층차 중에 국한하여, 더 높은 층차로 돌파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전법륜》)
이 단락 법을 읽으면서 나는 진심으로 석가모니의 겸손함에 탄복했다. 그는 만년(晩年)에 이미 아주 많은 바른 깨달음이 있었고 또 이미 아주 성숙했음에도 여전히 “나는 일생 동안 아무런 법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경지의 고상하고 무사(無私)한 정도는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출렁이면서 이 경지가 무사(無私)하고 깨끗하고 따스하며 감동적임을 느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더러 “당신도 이런 경지에 도달해야 하며, 이는 신우주(新宇宙)의 생명에 대한 대법의 요구다.”라고 알려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때로 나는 동수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논쟁하고, 또 배후에서 동수를 담론했으며, 동수의 결점을 말했다. 동수가 정진하지 못해 대열에서 낙오할 때도 도와주기는커녕 비난만 했다. 또 동수에게 병업 상태가 나타났을 때 남에게 누락이 있으니 어떻게 해도 안 되는 등등을 말했다.
기점이 사(私)인데, “옳다”는 사(私)에 빠져 있으니 또 얼마나 제고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나는 일생 동안 아무런 법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 석가모니의 경지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석가모니를 말한 동시에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이다.
“당신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근기가 좋고 아무리 많은 이치를 깨달았어도 무변(無邊)한 대법의 어느 한 층차에서 작은 법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정말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논쟁할 필요가 없다.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읽을 때, ‘아는 게 없는 도인(無知道人)’이란 이름이 있었다. 나는 이 이름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존경심이 생겼다. 아마도 이 ‘아는 게 없는 도인’은 선천대도(先天大道)로, 능력이 아주 강하고 층차가 극히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하필 ‘아는 게 없는 도인’이라고 했을까? 그는 자신을 낮출 수 있는데,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만 앎을 얻을 수 있고, 제고할 수 있다. 우주는 박대하고 심오한 것으로 부처 위에 부처가 있고, 도(道) 위에 또 도가 있다. 제아무리 대단한 생명이라도 우주대법(宇宙大法) 앞에서는 모두 말할 나위 없이 보잘것없는 것이다. “법무정법”에서 약간의 내함을 깨달은 후, 나의 수구(修口)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상은 개인의 얕은 인식이니 여러분들이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