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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모두 평등한데 당신은 왜 남에게 화를 내는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2년간 나는 줄곧 조카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고뇌하고 있다. 조카는 어릴 때부터 나를 따랐는데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남자 아이다보니 원래 장난이 심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4학년 때부터 반항하고, 간섭하지 못하게 하더니 클수록 더 말을 듣지 않는다. 어른에게 말대꾸하고, 거짓말을 하고, 공부를 싫어하며, 숙제를 미루는 등등. 나는 조카의 이런 행동들을 보면서, 늘 심성을 지키지 못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조카 때문에 얼마나 많은 관(關)을 겪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보지 않으면 자비심이 나와서 인내심을 지니고, 참아야 하며, 선량해야 하고, 심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참으려 해도 참지 못하는데 설사 딸이 옆에서 나를 일깨워줘도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 또 수많은 집착심을 찾아냈는데 당 문화의 요소, 단순하고 거칠고 비판적이며 남을 무시하는 등등이 있었다. 또 소위 성격적인 요소도 있었는데 냉담하고 까다로우며 다른 사람의 흠 잡기를 좋아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 교사란 직업의 습관 때문에 남을 가르치길 좋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조급하고 욱하는 것이다. 속인 중에서 나는 성질이 급하고, 퉁명스럽고, 시원시원해서 성질도 급하다. 또 자신을 견지하는 것 등이 있었다.

수련 과정에서 조금 인식하면 조금씩 닦아버렸다. 때문에 이런 마음들 역시 점차 옅어졌고,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 요란스럽게 굴진 않지만, 조카가 눈에 거슬릴 때나 또는 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상대하지 않거나 말하지 않는다. 나 역시 조카에게 여전히 수련인의 선(善)과 자비를 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조카에게 말만 하면 여전히 상화로운 심태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진정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좀 이지(理智)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잘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을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1]

이 단락의 법을 천번도 더 공부했지만, 내 조급한 성질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비록 최근 몇 년간 줄곧 닦고는 있지만, 마치 진정으로 그것을 닦아버릴 결심을 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병업(病業) 마난에 처한 동수를 방문했다. 그녀가 자기 남편에게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 대해서 나는 조카에 대해 그렇게 대했다. 모두들 이 동수가 남편에게 너무 강퍅하다고 여겼고, 동수에게 지적해 주기도 했지만, 그녀는 줄곧 중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병업 마난 중인 동수를 깊이 이해하는데, 장기간 관을 통과하지 못하면 마음속으로 매우 괴롭고, 매우 초조하며, 화를 참지 못하다보니 심성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도 있다. 나는 또 성격문제도 잘 아는데 확실히 성격을 고치기란 아주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언젠가는 닦아버려야 한다. 당시 나는 그녀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우리 둘은 성격상 비슷한 점이 많은데, 둘 다 성격이 급하고 강합니다. 우리 같이 노력해서 고친다면 언젠가는 다 닦아버릴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평화롭고 상화한 심태를 닦아 냅시다.”

돌아온 후, 내게 감촉이 아주 깊었다. 나는 평소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중생은 모두 평등한데, 당신이 무엇을 근거로 남에게 화를 내는가? 당신이 어떤 이유로 남에게 화를 내든지 막론하고, 당신이 남에게 큰 소리를 지를 때, 당신은 어떤 심태와 입장에서 했는가? 자신을 높은 곳에 두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심태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높은 곳에서 자처하는가? 설마 당신의 생명이 그보다 더 고귀하단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중생은 다 평등한 것으로 다 창세주의 백성들이다. 그렇다면 높이 자처하는 이런 우월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오만방자함에서 오는 것이다! 과대망상에서 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천(天), 지(地), 인(人), 신(神)에 대한 불경이다.

만약 내가 천, 지, 인, 신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감히 높은 곳에 자처하지 못할 것이며 남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자격도 없다. 나는 늘 겸손한 마음, 경외하는 마음,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어른, 가족,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바로 내게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오만방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높이 있다고 자처하는 오만방자한 마음 외에 또 약자를 기만하고 강자를 두려워하며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당 문화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왜 동료나 동수, 낯선 사람에게는 상냥하게 대하는가? 왜 아이에게만 이렇게 야만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가? 왜냐하면 그가 아직 매우 약해서 감히 당신에게 반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조카가 18살이 되어 키가 1m80cm이 되었을 때, 그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감히 지금처럼 큰 소리로 호통을 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생각해보라, 이것은 약자를 괴롭히고 강자를 두려워하며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속인 중에서도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란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의 인식이 정말로 맞는다면 굳이 날카로운 말투와 강한 기세를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 솔직히 말해, 당신의 인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당신은 단지 남을 당신의 관념에 맞도록 개변시키고 싶을 뿐이다.

사실 당 문화의 요소거나 성격적인 요소거나 아니면 무신론의 독해거나 이는 모두 구세력이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배치한 것으로 모두 구우주(舊宇宙)의 요소다. 대법제자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를 중시하지 않았고, 이 방면에 대해 엄숙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닦아버릴 결심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계속 수련하고 있다고만 보지 말라, 단지 인식이 똑똑하지 않고 결심이 부족할 따름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이것을 자신의 수련의 길에서 강력한 장애로 여기고, 자신을 수련하지 못하게 하고, 우주특성을 위배한 것이며, 마도(魔道)를 수련한다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한다면, 그럼 이런 집착심이 아무리 완고하고, 성격 중의 것이라서 아무리 제거하기 어렵다 해도, 내 생각에 절대 구세력이 배치한 요소를 따라가진 않을 것이다! 그저 화를 내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나는 조카가 어떻게 행동하든 아무리 말을 듣지 않아도, 교사가 아무리 일러바치더라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패괴(敗壞)된 구우주의 요소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꼭 견정불이(堅定不移)하다고 하는데, 이런 마음이라면 그때에 가서 당신은 정말로 견정불이할 수 있으며, 당신은 자연히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이미 제고되어 올라갔기 때문이다.”[1]

내 생각에 관을 넘길 때 만약 견정하게 자신을 닦을 수 있고 이런 패물들을 모조리 버리기로 결심한다면 넘기지 못할 관이란 없을 것이다.

개인의 인식이라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