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真愚)
【정견망】
4. 함정
시간이 인류 역사 속으로 진입한 것은 최후 시각 정법(正法)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역사를 광명하고 정면(正面)적으로 드러내려 하시며, 선악(善惡)의 홍구를 뛰어넘어 선(善)의 주도하에 일체를 해결하려 하신다. 이렇게 하면 최후 시각 인류의 일체는 다 정면(正面)적으로 되고, 일단 대법이 전해지기만 하면 사람마다 모두 서로 앞다퉈 법을 얻고 대법 속에서 바로잡히고 동화되어, 우주는 모두 선해(善解)될 것이다.
하지만 구세력은 안 된다고 하면서 장차 최후 시각에 인간세상을 하나의 큰 용광로로 바꾸려 한다! 그것들은 충분히 높은 온도와 압력에 도달하지 못하면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변이 물질과 요소를 건드릴 수 없고 충분한 순도(純度)로 생명을 단련할 수 없다고 말한다! 표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이 일체를 훼멸할 것이다!
때문에 구세력은 사존의 배치와 인류 역사의 80% 이상을 강제로 뜯어 고쳤다.
그것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절대화된 상생상극을 양극단으로 밀어붙여 역사 속에서 일체가 극단으로 나아가게 했고, 물질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전위차(勢差)를 형성해 이를 통해 최후 시각에 인간세상이란 이 용광로가 거대한 전위차 하에서 충분한 온도와 압력에 도달할 수 있게 했다.
절대화된 상생상극 아래서 그것들은 부면(負面)물질과 요소를 극한까지 쌓아 부면이 일체를 주도하게 하고 역사 속에서 부면적인 교훈과 불완전한 결말을 인류 사상 속에 쌓아 층층의 변이된 사유와 관념을 형성해 하늘만큼 거대한 함정(陷阱)을 만들어 전 인류를 가뒀다.
이렇게 되자 인류는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함정 속에서 태어나 영원히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구세력은 함정을 진실한 세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하늘은 영원히 우물 입구 고만한 크기의 하늘에 불과하다.
원래 종소리는 맛있는 음식과 무관하다. 하지만 개에게 종을 흔들고 나서 맛있는 먹이를 주고 이렇게 한 시간이 길어지면 개는 종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군침을 흘리게 된다. 이것을 조건반사라고 한다. 이는 종소리와 맛있는 음식이란 원래 무관했던 두 가지 사물을 대응시킨 후 지속적으로 그것을 강화해 한 세트의 자동적인 사유기제 내지는 관념을 만들고 이를 통해 진정한 사유를 좌우하거나 심지어 더는 사유와 판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오직 구세력이 원하는 것으로 그것은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끝없는 실험을 해서 그것들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목적에 달성하고자 한다.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르고 인과순환은 하늘의 이치이다. 설령 구우주의 이치라 해도 구세력은 함부로 우주의 이치를 파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감히 미혹에 빠진 인류의 허점을 이용해 이를 혼란시켰다.
가령 어떤 사람은 이 한평생에 수많은 선한 일을 하고 큰 덕을 쌓았지만, 내세(來世)에 그를 큰 악인으로 만들어 온갖 나쁜 짓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전세(前世)에 쌓은 큰 덕 때문에 복보(福報)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전세에 큰 나쁜 일을 저질러 큰 업을 쌓았지만 금세에 착한 사람을 연기해 한마음으로 선을 향하게 한다. 그는 전세에 쌓은 큰 업 때문에 현세에는 오히려 악보가 끊이지 않고 거듭될 것이다.
“설마 하늘이 눈이 멀었단 말인가?”
사람은 미혹 속에서, 무명(無明)의 고통 속에서 무지하게 하늘을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구세력의 함정과 시험임을 모르는데 그것들은 사람이 이렇게 완전히 거꾸로 된 형식 하에서 걸어 나와야 그것들의 표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일들이 대량으로 큰 면적으로 나타나면 사람의 사유는 끊임없이 어지럽고 왜곡되게 대응할 것이다. 그리하여 의심이 생기고, 더 이상 선에는 선보(善報)가 따르고, 악에는 악보(惡報)가 따름을 믿지 않게 되고 또한 점차 신(神)의 존재를 더는 믿지 않게 된다.
인류의 사유는 이렇게 뜯어고쳐지고 왜곡된 역사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어지럽고 왜곡되게 대응해 결국에는 완전히 전도되고 뒤집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음양반배(陰陽反背)다. 이때 선(善)은 더 이상 선(善)이 아니게 되고 사악(邪惡)이 오히려 선(善)의 깃발을 치켜든다.
이는 단지 동방(東方) 도가(道家)의 음양반배를 서방 철학의 각도에서 해설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서방의 철학은 바로 동방의 대도(大道)였으며 소크라테스는 역사에 하나의 열쇠를 남겨주었다. 인류는 지금껏 선지자가 없었던 적은 없었으며 진정한 선지자는 인류 역사를 풀어낼 수 있는 진정한 열쇠를 역사에 남겨주었다. 나는 이분들이 사존의 전세(轉世)임을 보았다. 그분들은 이 열쇠를 구세력의 눈앞에서 역사의 가장 심층(深層)에 묻었기에 구세력은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매장된 곳이 구세력이 아예 생기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열쇠를 볼 수 있는 일종의 눈이 있다.
사람의 문화는 신(神)이 전한 것으로, 사람은 처음에 신과 통했다. 사람의 사유가 완전히 어긋나고 왜곡된 후로 더는 신과 통할 수 없게 되자, 사람은 신과 연계가 끊어졌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 과정에서 점점 더 미시적인 물질요소의 변이가 발생해 사람이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세력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자 또한 근본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아무리 높은 온도와 압력이라도 이렇게 미시적인 변이는 건드릴 수 없으며 생명이 고온 고압의 시련을 견뎌내지 못하면 전부 훼멸될 것이다.
그러자 구세력은 아예 잘못을 구실로 삼아 계속 잘못을 저질러 줄곧 어둠(黑)으로 나아갔고, 역사 속에서 축적된 이런 거대한 부면(負面)적이고 어지러운 요소들을 이용해 공산사령(共產邪靈)이란 이런 물건을 만들어냈으며, 부면 요소 속에서 인류를 통치하고, 대법도(大法徒)를 시험하고 있다.
어떤 생명도 이 극단적인 용광로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없고, 어떤 생명도 감당할 수 없으니 반드시 훼멸될 것이다. 이에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으로 모든 고온과 고압을 감당하셨고 천지창생(天地蒼生)을 위해, 당신의 피로 매 대법제자에게 하늘로 통하는 한 갈래 길을 깔아주셨다.
5. 완미(完美)
어릴 적 《홍루몽》을 대충 읽어보았지만 별다른 인상이 없었다. 단지 “세상에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天下沒有不散的筵席)”는 말 한마디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싶지 않아 남은 인생 동안 줄곧 끝나지 않는 잔치를 찾았다.
처량한 아름다움, 부족한 아름다움….
이런 것들은 모두 인류의 사유 대응이 어지러워진 후에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부족한 것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나중에 나는 이 일체의 근원이 모두 구우주의 절대화된 상생상극이 조성한 것임을 발견했는데, 이는 구우주의 큰 누락이다.
단단한 것은 다 부서지기 쉽고, 질긴 것은 유약하다. 유순한 사람은 성격이 모두 연약하고 강한 사람은 성격이 비교적 사납다. 그러므로 선(善)한 일면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부(負)의 일면을 감당해야만 한다. 이것은 구우주 상생상극의 홍구라서 넘어설 수 없는데, 이는 구우주의 근본적인 큰 누락으로 그것은 보완하거나 평형할 지혜가 없다. 때문에 구우주에는 진정으로 완미(完美 완벽한 아름다움)한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끝나지 않는 잔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처량한 아름다움, 부족한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대법도(大法徒)들이 강하면서도 유순하고 겸손하면서도 과감한 성격을 연마해, 두 가지 완전히 대립적이며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대법 속에서 일체가 된 것을 보았을 때, 완미를 보았고, 이 홍구가 해결되었음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직 사존과 대법만이 이런 지혜가 있을 수 있다.
내 생명은 대법도가 된 것에 대해 너무나 행복하고 나는 마침내 끝나지 않는 잔치를 찾았다.
6. 과정
몇 년 전, 한 동수가 내게 물었다.
“사부님께서 구세력이 생기지 않게 할 능력이 완전히 있으셨으니 이렇게 하셨다면 도태가 없었을 것이고, 또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겪는 가혹한 박해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왜 구세력이 생겨나게 하셨나요?”
당시 나는 순간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만 대답했다.
“사부님과 대법의 지혜는 무극(無極)한 것으로 지금은 우리가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으니 절대 집착하거나 의심해선 안 됩니다. 특히 사부님께 불경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명의 뿌리가 곧 오염될 겁니다! 내려놓으면 언젠가 저절로 명백해질 날이 올 겁입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비로소 아주 자그마한 지혜로 한 가지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주괴멸(成住壞滅)은 구우주의 모든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의 완전한 순환입니다.
마치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그런 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을 때까지 이는 하나의 완전한 과정입니다. 오직 열매가 성숙한 후에야 이 완전한 과정을 포함할 수 있고 싹을 틔우고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후 열매가 아직 익지도 않은 상태에서 채취한다면, 그것은 부족한 것이라 싹을 틔우지 못하며 새로운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이해: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구우주가 성주괴멸 중에서 자연스레 마지막 순간까지 걸어가 일체 기연(機緣)이 성숙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 법을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완미하고 영원히 괴멸하지 않는 신우주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열매가 익을 때 이 나무도 아마 시들 것이다. 결국 구세력이 조성한 파괴는 이미 만회할 방법이 없고, 역사를 다시 쓸 수는 없다.”
나는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어릴 때, 당시 대법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지만 나는 한 권의 책을 뒤적이다가 문득 《전법륜》의 장절(章節)을 보았고 사존의 설법이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나중에 《전법륜》이 출판된 후, 사존의 설법을 읽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한때 이 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 기억에 착각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나는 또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몇 년 전에 내가 한 가지 이야기를 썼는데 스스로 구상해서 쓴 것이다. 나는 당시 오히려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웃고 말았다.
역사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또한 홀로그램(全息)으로 된 일체이다. 시간을 더하면 그것을 과정이라 하고 시간을 빼면 그것은 일체(一體)로 함께 존재한다.
몇 년 전에 나는 심하게 곤두박질쳤고 아주 깊은 유감을 남겼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나는 유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렇게 걸어지나온 과정이 내가 바로잡힘에 따라 서서히 완미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법정인간의 서막은 이미 열렸고, 진정한 대법제자가 이 과정을 끝마치고 최후까지 걸어가 대원만(大圓滿)할 때면 아마도 역사가 다시 상연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구세력은 지금껏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호탕한 부처님 은혜! 제자는 모든 생명으로 영원히 사존을 찬양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0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