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질투심이 심해서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곤 하는데 인간관계든 수련 중의 각종 방면에서든 늘 습관적으로 남과 비교했다. 남보다 나으면 기쁘고 득의양양했지만 남보다 못하면 낙담하거나 풀이 죽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서방 사람은 비교적 외향적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100점을 맞아 아주 기뻐서 집으로 뛰어오면서 소리친다. “나 100점 맞았어요…….” 이웃들은 모두 문이나 창문을 열고 그에게 축하하며 “톰, 축하한다!”라고 그를 위해 기뻐한다. 만일 중국에서라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듣자마자 반감이 생겨, “100점을 맞았다고, 무슨 ‘호들갑’이냐, 뭘 그리 자랑할 것 있나!”라고 할 것이다. 반응이 전혀 다른바, 질투심리가 있는 것이다.”(《파룬궁》)
마음속으로 늘 “그를 위해 기뻐하는(替他高興)” 사람은 기본적으로 질투심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가족이나 또는 나와 관련된 사람(내가 진상을 알린 중생이나 내가 참여한 항목에서 만난 속인 등 어쨌든 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그를 위해 기뻐하는” 이런 생각이 나오지 않았고 잠재적으로 남이 어디에서 잘하면 자신이 못하는 것이 부각된다고 여겼다. 남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반대로 늘 따라잡고, 초월해야 하며,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압박을 받았다. 사실 바로 질투심이다.
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절대 수련 성취할 수 없으며 질투심은 모든 수련을 다 느슨하게 만들고 사람을 망치니 절대로 질투심이 있어선 안 된다. 구세력은 바로 질투심 때문에 대법제자들에게 마난(魔難)을 만들어주었고 강귀(江鬼) 역시 질투심 때문에 대법을 박해하는 하늘에 사무치는 범죄를 저질러 스스로 무생지문(無生之門)에 들어가게 했다. 그러므로 질투심은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니며 수행인에 대해 말하자면 마치 비소와 같은 맹독이라 조금이라도 오염되어선 안 되며 있다면 빨리 닦아버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 속에서 미혹된 우리들, 특히 중국 대륙에서 자란 사람들은, 일찌감치 습관이 되어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남을 질투하고 남들보다 낫거나 강해야 행복하다고 여긴다.
때문에 형성된 이런 습관은 비록 사부님께서 질투심의 위해(危害)와 심각성을 거듭 강조하셨음에도 자신이 질투심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나는 과거에 수시로 자신의 질투심을 많이 제거해서 거의 없어졌다고 느끼곤 했다. 사실 이것은 수련 중에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착오적인 인식이었다. 즉, 과거의 나와 비교하거나 또는 일시적인 느낌에 따라 당연하게 여기거나 또는 법으로 대조하지 않고 남과 비교한 것이다.
끊임없이 법리와 대조하면서, 나는 자신의 질투심이 대단히 강렬함을 알았다. 자세히 체험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다른 동수에게 어떤 좋은 일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를 위해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압력을 느끼고 자신이 따라잡을 필요가 있으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원망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불복하고 의심하거나 자신을 비하하고 부러워하거나 마비되거나 무감각한 등등. 더욱 좋지 않을 때는 직접적으로 질투심을 느끼거나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남의 좋은 소식을 들은 후 “그를 위해 기뻐하는” 염두가 아니라면, 그럼 질투심이 있는 것이다. 질투심의 기점은 위사(爲私)한 것으로 늘 자신의 처지와 감수를 잊지 못해 무슨 일을 들어도 늘 자신을 대입하는데 ‘나(我)’란 글자를 1위에 둔다. 반면 “그를 위해 기뻐하는” 생각은 기점이 위타(爲他)한 것으로 완전히 자신의 그 어떤 요소도 그 속에 없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무사(無私)한 선념(善念)이다.
자신이 갈수록 질투심 문제를 중시하게 된 후 일단 질투에서 내원한 염두를 의식하기만 하면 나는 가급적 제때에 그것을 배척하고 부정했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질투심을 멸(滅)해 그것을 죽게 한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수시로 좋지 않은 물질(그 어떤 염두든 물질을 이룬다)이 생겨나기만 하면 자신의 공간장(空間場)에서 쫓아내고 깨끗하게 청소해, 그 어떤 좋지 않은 물질도 쌓이지 않게 했다. 아울러 나는 배척하는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효과도 좋아짐을 느꼈다.
다른 한편 남의 좋은 일을 들을 때 때로는 고심해서 내심으로 상대방을 위해 기뻐하며 속으로 ‘너무 좋고 너무 잘 됐네, 정말 대단해, 사부님 감사합니다’ 등을 생각했다. 가급적 습관적으로 질투하는 사유를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비록 마음이 아직은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고 억지로 강요해 형식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정확한 것에 따라 생각하고 시도하니 갈수록 더 “그를 위해 기뻐하는” 사유방향에 가까워졌다.
어제 한 동수의 좋은 소식을 들은 후 나는 정말 “그를 위해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방을 위해 기뻐했으며 속으로 또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렸다. 그런 다음 나는 자신이 이런 일념(一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안심이 되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나처럼 이렇게 악념(惡念)이 심각한 제자가 처음으로 진솔하게 “그를 위해 기뻐하는” 마음이 나오게 하시고, 악(惡)에서 선(善)의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의 가호(呵護)에 감사드렸다.
사실 많은 동수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알지만, 심성이 아주 차(差)한 내게 있어 이는 하나의 중요한 첫걸음이자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방향으로 계속 노력할 것이며 “그를 위해 기뻐하는”는 마음을 늘 지켜내 늘 이런 염두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2》〈따위산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천상의 부처는 고생이 없는바, 모두 기쁜 일, 행복한 일이고 무엇을 가지려면 무엇이 있어 대단히 자유자재하다.”
이 단락 법에 대한 나의 이해는 부처는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모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기 때문에 내심에 늘 즐거운 일과 행복한 일로 가득 하다. 반면 사람의 고생은 대부분 오직 자신의 좋은 일만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은 무시하거나 심지어 저촉(抵觸)하기 때문이다.
이 심득을 나누는 이유는 동수들이 반드시 질투심을 닦아버리는 방면에서 공력을 들여야 하며 더는 그것에 발목을 잡히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워줌과 동시에 자신에게 중시할 것을 거듭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법리에 근거해, 내가 인식한 것은 정법(正法)이 끝나는 그날에도 질투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이 생명은 신우주(新宇宙)에 존재할 수 없으며 아울러 생명의 향방이 몹시 우려된다. 왜냐하면 악자(惡者)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법의 표준은 엄숙하고 엄격한 것으로 결코 장난이 아니다. 이에 자신이 질투하는 악자(惡者)에서 남을 위하는 선자(善者)로 바뀌는 것을 조금도 늦춰선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慈悲(츠뻬이)란 대겁(大劫) 전의 표현이고, 정법(正法)은 엄격하고 무정한 것이다.”(《2010년 뉴욕법회설법》)
사부님께서는 또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정법(正法) 이 두려운 광경은, 당신들이 장래에 역사의 과거 중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대법제자들의 표현은 정말로 대단히 부족한 것으로 어떤 때는 잘하고 어떤 때는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실은 거대한 우주 생명도 정법의 형세를 보면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이상은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3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