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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심층의 제약(制約)을 말하다

점백(漸白)

【정견망】

예전 일을 회상하며 동수와 교류하다가 동수가 99년 7.20 때 일을 언급했다. 그 일의 경과는 나도 기억이 났지만 당시 상대 동수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동수는 처음 본 얼굴이고 또 단지 연공만 함께 했을 뿐 2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수는 나를 알았는데 이 일을 말하자면 의미심장하다.

이 일은 99년 7.20 이전 어느 날 아침에 발생했다. 우리 지역의 한 연공장이었는데 당시에는 모두들 실외에서 연공했다. 한 여성 동수가 경문 한편을 가져와서는 나더러 보라고 주었다. 내가 한번 보고는 이 경문은 가짜라고 하면서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나는 몇 마디 설명해주었다.

“이 가짜 경문은 여자가 썼는데 키는 크지 않고 40대이고 좀 뚱뚱한 편입니다! 사부님께서 쓰신 게 아닙니다!”

며칠 후 동수는 자신이 받은 것이 가짜 경문이란 통지를 받았고 이 일을 그렇게 지나갔다. 당시 나는 별로 주의하지 않았고 아주 간단하게 여겼다. 그러나 동수는 오히려 크게 놀랐다. 동수의 말에 따르면 20여 년이 넘었지만 이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나는 닫혀서 수련하지만 인체의 본능은 사람이 끊임없이 법(法)을 인식하고 사상이 끊임없이 저층관념과 업력의 속박에서 벗어남에 따라 인체 본능 중 어떤 것은 드러날 수 있다. 어떤 본능은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기에 잠그지 않고 남겨놓을 수 있다. 그런 정보는 천목으로 본 것이 아니고 저절로 느끼는 것인데 장기간 늘 이런 상태에 습관이 되어 남들도 다 그러려니 여긴다. 하지만 사실 남들은 이렇지 않다.

이 일이 지나간 후 법의 이치에서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유(有)’와 ‘무(無)’가 동시에 나타날 때면 ‘무’가 ‘유’를 제약(制約)할 수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유’에 대한 집착과 관념을 제거할 때 우리는 곧 끊임없이 ‘무’를 향해 매진하는데 ‘무’는 초상적이며 고층차의 것으로 저층차의 ‘유’를 제약하기란 쉽고도 간단한 일이다.

이런 제약성의 또 다른 한 가지 체현이 바로 ‘정(靜 고요함)’이 ‘동(動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靜)’하지 못해서 ‘동’을 따를 때면 ‘동’의 전모를 볼 수 없고 또 이 ‘동’의 원인을 볼 수 없지만 당신이 ‘정’할 수 있어 그 속에 없으면 곧 볼 수 있다. 속인은 이 ‘유(有)’와 ‘동(動)’을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해보면 이 역시 아마 낮은 경지(境界)에 대한 고층차(高層次)의 제약성일 것이다. 가짜 경문을 날조한 그런 사람들이 이 일을 안다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