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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 폭로

일수(一修)

【정견망】

나는 학창 시절 법을 얻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무슨 오염이 있기 전에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에도 나는 줄곧 질투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가정 형편이 아주 좋아서 아이 때부터 아버지가 출장 가실 때마다 늘 다른 친구들에게 없는 새 드레스며 재미있는 장난감과 각종 책들을 사다 주셨기 때문이다. 또 어려서 학습 성적이 늘 일등이라 선생님들의 칭찬과 이웃들의 부러움 속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남들의 칭찬과 흠모 속에서 자라났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항상 남들의 부러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해본 적이 없다. 비록 성장한 후에는 가정 형편이 더 이상 넉넉하지 않았고 또 중고등학교 성적 역시 더 이상 선두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 겪은 것이 이미 성격으로 형성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남을 부러워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학창 시절 예술을 전공했고 문학과 역사를 좋아했는데, 특히 명리(名利)에 담담한 그런 역사 인물들을 존경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명리에 담담하고 청고(淸高)한 성격이 되었다.

수련을 오래한 후에야 비로소 뜻밖에 내게도 질투심이 있고 그것도 아주 강렬한 것을 발견했다. 늘 일부 작은 일에서 반응되어 나왔다. 나는 이 비루한 것들을 폭로해 그것을 철저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말하자면 내가 직장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후의 일이다. 같은 직장에 고등학교 동창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늘 동료들의 가십거리가 되곤 했다. 그녀가 어릴 때 부모님이 다른 친척집에 보냈는데 목적은 시내에 들어가 “비농업(非農業)”호구를 얻기 위해서였다. 당시 “비농업” 호구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또 나중에 직장을 구할 때 시험을 봤는데 사전에 연줄을 이용해 문제를 미리 알아냈다. 또 일을 시작한 후 또 다른 사람이 결혼하려던 배우자를 훼방해 파혼시키고는 나중에 자신이 그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할 때 남자를 뺏긴 여자 동료의 친척들이 직장에 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업무에서도 소위 “대인관계가 좋아서” 상사의 환심을 잘 샀고 때문에 승진도 줄곧 빨랐다.

동료들은 그녀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말하면서 무시하고 조롱했다. 나 역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재미있어 했고 또한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나중에야 나는 이것이 질투심임을 알아챘다.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에 대해 경멸하고 무시하는 마음은 바로 질투심의 한 가지 표현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경멸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무시하며, 영리하고 교활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다 질투심이 장난친 것이다.

법 공부를 통해 나는 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심리 역시 질투심의 표현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몇 년 전에 절대평균주의를 시행하여 사람의 사상관념을 그야말로 혼란하게 만들었다. ”[1]라고 하셨다.

내게도 늘 이런 심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령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는데 수술 날짜가 며칠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 늦게 들어온 사람이 어머니보다 먼저 수술을 받자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또 내가 줄을 서 있는데 누군가 끼어들면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했으며, 다른 사람이 나보다 상여금을 더 받아도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또 “가난이 두려운 게 아니라 평등하지 못한 게 두려울 뿐”이란 말을 자주 했다. 즉, 모든 사람이 모두 없으면 상관없지만, 누군가 더 많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 같으면 마음이 곧 평형을 이루지만 누군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면 곧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무슨 이치인가? 이는 모두 당 문화의 독소다.

또 동수들과 함께 사람을 구하러 나가서 다른 동수가 진상을 알려 나보다 ‘삼퇴’를 더 많이 받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동수가 발표한 문장을 보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이런 불편함이 바로 질투다.

또 문장을 발표할 때 내 이름을 쓰지 않는데 동수들이 보면 질투할까 두려워서다. 남이 나를 질투할까 두려운 것 역시 질투심 표현의 일종이다. 남이 질투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자신에게 질투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만약 상여금을 좀 많이 받으면, 혼자 슬그머니 호주머니에 집어넣어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1]와 같은 이치다.

동서고금의 많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시피 질투는 사람을 추악하게 만들고 내심을 악독하게 만들어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친다.

가령 신공표(申公豹)는 질투 때문에 강자아(姜子牙)를 교란하다 결국 북해의 해안(海眼)을 메워야 했고, 진회(秦檜)는 악비(岳飛)를 질투해 외부의 적과 결탁해 악비를 무함하다 결국에는 오랫동안 악명을 남겼으며, 방연(龐涓)은 동문 사제 손빈(孫臏)을 질투해 그의 슬개골을 잘라버렸다. 제공(濟公)은 남들의 질투 때문에 영은사에서 쫓겨났고, 백설 공주의 계모는 질투심 때문에 여러 차례 백설 공주를 해치려 했으며, 우주대법은 소인배의 질투 때문에 모함과 비방을 당했고 사상 유례 없는 박해를 받았다.

그러므로 질투심은 절대 있어선 안되며,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잘 원망하고 쉽게 남을 미워하며 하늘과 땅을 원망하고 운명에 대해 불평한다. 이는 전통문화에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에 따르며 천명을 알고 이를 즐기며 늘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 여러분은 아마 과거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대업왕생(帶業往生)을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겠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방면에서는 좀 부족하더라도 조그마한 것은 대업왕생하여 다시 수련하는, 그것은 될 수 있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1]

이 단락 법에서 사부님께서 “엄중(嚴重)”이란 단어를 한 번, “절대(絶對)”란 단어를 두 번, “반드시(必須)”라는 단어를 한 차례 사용하신 것을 보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질투심은 절대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 정도가 어떻든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있는 것으로 이 한 점만 있어도 원만할 수 없다.

오늘 나는 이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 폭로해서 그것이 더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게 하고 최후에 철저히 그것을 해체하려 한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