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전법륜》을 다시 한 번 외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에 이미 세 차례 법을 외운 적이 있다. 이번에는 한 구절 한 구절 진지하게 외우면서 매 구절의 법을 마음속으로 기억하려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우선 한 강을 한 차례 통독한 후 다시 한 단락씩 외우는 것인데 외우는 게 아주 익숙해서 한두 번이면 한 단락을 외울 수 있었다. 나는 이 방법이 오히려 아주 빠른 것을 발견했는데 마음을 조용히 하고 외울 때면 한 단락의 법을 두 번 읽으면 외울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이전까지 대량의 법 공부 기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며칠 만에 제1강을 다 외웠고 제2강 역시 며칠 만에 다 외웠으며 지금은 제3강을 외우고 있다.
나는 한 가지 법칙을 발견했는데 바로 매번 법 공부와 법을 외울 때마다 곧 마음속으로 불편한 사람이나 일이 떠오르곤 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막 법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마음속에서 각종 불쾌한 사람이며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어떤 생각을 해도 늘 마음이 불편했다. 신체도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는데 감기와 기침이 났고 온몸이 싸늘해져서 마치 코로나 양성표현과 흡사했다. 나는 그동안 줄곧 코로나 양성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증상이 아주 흡사했다. 하지만 나는 검사를 받지는 않았다.
현재 중국 여러 지역에서 또 더 많은 양성 사례가 발생하고 병원이 환자들로 가득 붐빈다. 중공 바이러스가 다시 각지에서 만연하고 있지만 단지 중공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을 뿐이다. 남편도 감기 증상으로 열이 나서 테스트했는데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남편은 지금껏 한 번도 양성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양성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나의 문제는 왜 내가 법을 공부하거나 외우기만 하면 마음이 곧 힘들거나 불편한 느낌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인류사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이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사부님의 법은 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셨다. 왜냐하면 수련이란 누리기 위한 게 아니고 자신이 어떻게 편안히 살게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수련이란 집착을 없애고 업을 없애며 제고하는 과정이다. 법 공부는 수련의 근본이다. 때문에 법을 공부할 때면 바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고 집착이 밖으로 나올 때 곧 마음을 건드려 불편해지는데 이 역시 소업하는 과정이다. 만약 이를 참아낼 수 있다면 업이 곧 사라지고 집착심도 제거되며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층차 역시 올라간다.
하지만 종종 집착심을 제거할 때면 속인의 표현형식이 있을 수 있는데 나를 불쾌하게 한 사람이 조성한 내심 불쾌한 일이 나타나도록 조성한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내게 배치하신 것으로 나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식으로 수련 중의 일을 대해선 안 된다. 수련 중에 불편한 고통이 있고 소업하는 표현이 있으며 마난이 있어야만 좋은 일이고 관(關)을 넘는 것이자 제고하는 계단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이치와 인간세상의 이치는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다. 수련인이 사람에서 뛰쳐나와 제고하려면 곧 고생을 겪는 것을 좋은 일로 여기고 낙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 법을 외우는 기간에 나는 마음이 불편하고 몸도 불편했다. 나는 바로 법공부와 법을 암기하면서 집착을 제거하고 소업하며 제고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내게 배치하신 제고의 기회로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마난(魔難)을 더 이상 배척하지 말아야 하며 담담하게 그것을 대하면서 법을 많이 배우고 자신을 법속에 용해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반드시 이 관을 잘 넘겨야 하며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더욱 불편할수록 집착심을 제거하고 업도 제거해야 함을 설명하는데 자신의 전반적인 수련상태도 좋은 방향으로 전화(轉化)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소침(逍沈)한 마음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을 직면하고 그것을 제거해야만 옳다. 이것은 마음을 닦을 좋은 기회이니 반드시 이 기회를 잘 파악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내 옆에서 나를 책임지고 계시는데 내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마음이 있단 말인가?”
편안하고 싶은 마음은 속인으로 수련인은 모든 불편한 것을 참아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고 이를 통해 모든 집착과 사람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즉 유혹과 각종 부패하고 좋지 않은 요소로 가득 찬 인간세상이란 이 환경 속에서 자신을 닦아내야 한다. 사부님께서 옆에 계시고 대법이 마음속에 있는데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마음을 닦으면서 탄연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표준이다. 진정으로 집착심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대자재(大自在)해진다.
사람에게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집착이 있고 사심(私心)이 있으며 정(情)속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오직 집착을 제거하고 사(私)를 없애며 정에서 뛰쳐나와야만 비로소 사람의 번뇌를 해탈할 수 있고 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소 철저히 깨달은 후의 대자재와 대소요(大逍遙)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고층생명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세상에서는 수련하면서 고생 중의 고생을 겪어야 하며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작은 깨달음이니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