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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동냥사발 남김”에서 놀라 깨어나다

일수(一修)

【정견망】

최근 두 가지 일을 통해 자신에게 돈을 남기려는 아주 강한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전기 차 구매였다. 결혼하면서 집을 살 때 많은 빚을 졌기 때문에 지난 10년간 대출 다 갚은 후 그럭저럭 10만 위안(역주: 우리 돈으로 약 1800만원)을 모았다. 최근에 이중 2만 5천 위안을 들여 소형 전기차를 하나 샀다. 차는 마음에 들었지만 막상 돈을 낼 때가 되니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이 정도 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일은 여름에 날씨가 더워지자 부모님이 나더러 남동생과 함께 다락방에 에어컨을 설치하라고 하셨다. 동생이 다락방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에어컨 매장에 가서 보니 가장 싼 제품도 오천 위안이었다.

나는 속으로 부모님께 불만을 품었다.

‘이곳에서 먹고 자는 것은 남동생인데 내가 동생에게 에어컨까지 사줘야 하는가. 게다가 전기요금도 내가 내는데. 이곳에 늘 거주하는 것은 어머니, 조카, 동생이다. 나는 월급은 다 써버리고 매년 상여금을 모아서 돈을 저축하는데 지금 또 동생에게 에어컨을 사주려면 얼마 되지도 않는 내 저축을 건드려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나는 자신에게 아주 강렬한 돈을 남기려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럼 돈을 남겨서는 무엇 하는가? 나중에 아이 학비로 쓰거나 또는 예상치 못한 일을 대비하려 하거나 집을 사거나 차를 사려는 것이다. 이는 어느 것 하나 명리정(名利情)이 아닌 게 없다. 이런 것들은 본래 수련인이 처음에 입문할 때 내려놓았어야 하는 것들인데 나는 이렇게 다년간 수련해왔음에도 도리어 돈에 집착하는 것이다!

전에 돈이 없을 때는 전혀 집착이 없었는데 지금은 돈이 조금 생기자 집착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속인사회 중에서 무슨 능력이 없을 때,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다. 일단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때면, 흔히 명리적인 교란을 받기 쉬운데,”[1]

나는 문득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동냥사발을 남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돈에 집착하는 것은 “동냥사발을 남긴”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당시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들을 때 나는 남들이 동냥사발을 남기는 것을 비웃었는데 지금 나는 오히려 돈이란 이런 형식의 ‘동냥사발’을 단단히 지키려 하니 이는 모두 같은 것이 아닌가? 화상이 동냥사발을 남기려는 것에는 물욕, 탐욕, 허영, 비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련하는 사람이 돈을 남기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거나 또는 뒷근심이 없게 하거나 또는 보다 나은 생활을 추구하거나 또는 자식이 더 잘살게 하려는 것으로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역시 끝없는 욕망이다.

내려놓지 못한 것은 모두 욕망이고 물질이익이며 만약 정말로 욕심도 없고 구함도 없다면 돈을 남겨서 어디에 쓰는가? 물질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출가인(出家人)에 대해 말하자면 즉각적으로 끊어버려야 할 집착이고 대법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서서히 제거해야 할 집착이지만 표준은 같거나 심지어 요구는 더욱 엄격하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돈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하셨는데 즉 그것을 제거할 때가 된 것이다.

동수들과 이 일을 말하자 모두들 많든 적든 다 이 방면의 집착이 있었다. 이는 아마 다년간 사당(邪黨)의 정치운동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과 관련이 있는데, 늘 손에 돈이 좀 있어야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이것을 무슨 큰 잘못이라 할 수는 없는데 대법제자는 모두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것은 대법 수련자에 대해 말하자면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사실 일종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표현으로 다시 말해 무신론의 표현이다.

늘 자기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활이나 또는 운명을 장악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틀려도 크게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알다시피 대법제자 수련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세심하게 배치하신 것으로 제자가 무엇을 걱정하거나 무엇을 근심하거나 무엇을 배치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법제자에게 해야 할 것은 바로 집착이 하나로 없을 정도로 닦아내고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근본적으로 대법제자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또한 통제할 수도 없다.

현 단계에서 작은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