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白鹿)
【정견망】
며칠 전에 딸이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코로나 봉쇄 때문에 2년 반 동안 만나지 못했다.
엊그제 딸에게 내가 아는 한 동수에 대해 말하면서, “내 생각에 그녀는 엄마보다 수련을 더 잘한 것 같아서 늘 따라하고 싶지만 따라갈 수 없단다.”라고 했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엄마, 너무 집착하시네요.”
“이게 무슨 집착이니? 사부님께서도 《홍음》〈착실한 수련〉에서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준다’고 하셨잖아?”
“제 생각에 비학비수(比學比修)의 이 ‘비(比)’는 그런 비교가 아니에요. 엄마 비익조(比翼鳥)라고 아시죠? 여기서 ‘비(比)’는 나는 것을 비교한다는 게 아니라 함께 난다는 뜻이에요. 엄마가 이해하는 비교는 쟁투이자 집착이에요.”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홍음》〈용법(容法)〉에 말씀하신 두 구절이 떠올랐다.
“공동으로 정진하나니 앞길이 광명하도다”
며칠 전 정견망에 〈온 하늘의 신불들이 병업관을 돌파한 동수를 축하하다〉란 짧은 글을 올린 것이 생각났다. 이 글 첫 단락에서 나는 동수와 나의 수련을 비교했는데 뭔가 잘못이라고 느꼈지만,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똑똑히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 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원래 정말로 잘못 깨달았음을 알았다.
저녁에 《전법륜》을 읽다가 “사실 우리는 누가 어떠하든 법은 오로지 하나이며, 오로지 이 대법(大法)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표준이다.”라는 대목을 읽었다. 나는 마땅히 동수와 공동정진(共同精進)해야지 그녀와 무엇을 겨루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의 점오(點悟)에 감사드렸다.
[역주: 비(比)에는 서로 비교하거나 비유한다는 뜻 외에도 무리를 짓거나 함께 어울린다는 뜻도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1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