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征好)
【정견망】
4. 껍질을 깨다
‘위타(爲他)’인지 아니면 ‘위사(爲私)’인지, 안으로 찾는지 아니면 밖으로 구하는지는 신우주 생명과 구우주 생명의 주요한 차이점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진선인(真善忍) 우주 대법이다. 진(真)이란, 《사원(詞源)》의 한 항목에 따르면 ‘본원, 본성’이다. 안으로 찾는 과정은 내가 이해하기에 미시적으로 찾는 것으로 우리 진아본성(真我本性)을 찾는 과정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 구우주 체계와 기제는 왜 우리의 공간장에 남겨질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와 어떤 관계인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真(쩐)・善(싼)・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층차 중에서 또 그다지 좋지 못하게 변해 그들은 또 있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 아래로 떨어져 최후에는 인류 이 한 층차 중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이 내가 있는 경지에서 보여준 함축적인 의미는 생명이 층층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에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무거운 짐을 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본래 원자핵으로만 이루어진 신체(身體)였는데 사심(私心) 때문에 또 원자 한 층의 신체, 분자 한 층의 신체가 생겨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가 하늘의 주(主)인가, 층층이 법을 떠난 자”
(《홍음 2》〈무미(無迷)〉)
내가 이해하기에 당시 우리의 층차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우리의 그 일념에서 생긴 신체 그것은 사실 하나의 우주이며, 그것은 사심이 낳은 것이고 법에서 빗나간 우주인데 줄곧 인류 사회의 이 한 층까지 이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든 구우주이며, 우리 자신의 형상(形像)이다. 그것이 우리의 ‘원죄(原罪)’이고, 우리가 당시 심은 ‘원인(因)’인바, 우리가 지금 끝내야 할 ‘결과(果)’다.
우리가 만든 층층의 구우주는 우리를 감싸는 껍질이자 또한 우리를 감금하는 우리(牢籠 감옥)다. 우리의 진아본성(真我本性)은 층층이 파묻혀 장차 큰 재난이 닥치는 것도 모르는데, 적폐를 되돌리기 어렵고 되돌릴 힘도 없다.
바로 이때 사부님께서 오셨는데, 사부님께서는 가장 원시적이고 원용(圓容)한 법을 가지고 우리 이 구우주로 들어오셨다. 당시 사부님께서 보신 우주는 어떠했겠는가!
“하늘로 솟은 법주(法柱) 삭고 녹슬어 얼룩지고
각 궁(穹)의 왕과 주(主) 노태(老態)가 창연(蒼然)하네”
(《홍음 3》〈천궁을 구하다〉)
사부님의 목소리는 층층의 시간과 공간을 뚫고 넘어 먼지에 덮여 있던 우리의 불성을 일깨워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아마 불교 중에 이런 한 마디 말이 있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 누가 보든지 모두 그를 도와주려 하며, 조건 없이 그를 도와준다.”(《전법륜》)
불성은 왜 진귀한가? 현 단계에서 내가 이해하는 것은 불성(佛性)이 나왔다는 것은 이 생명이 본질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위사(爲私)한 껍질이 더는 계속해서 두꺼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사부님은 대법을 사용해 본원에서부터 우리 생명 속의 불순한 것들을 제거해주시는데 우리 생명의 본질은 이미 신우주의 생명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일념(一念)이 가장 진귀하다. 왜냐하면 그가 반본귀진하려 하고, 속인 이 층차 중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전법륜》)
나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층층이 쌓인 구우주의 껍질을 부수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이기적인 나(私我)가 죽고 진아(真我)가 살아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진아를 제자로 여기시고, 사부님께서 제자더러 사부님을 따라 걸어 내려가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우리 우주 중의 중생을 구도하게 하시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신 깨끗하고 아름다운 신우주 속으로 구도하도록 하셨다. 이번 한차례에 걸어 내려온 것은 주동적으로 내려온 것인데 왜냐하면 사부님의 법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개변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의 본질은 우리 우주 중의 그 어떤 물질보다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순정(純淨)하다. 우리가 오직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내려올 수도 있고 또 올라갈 수도 있다.
5. 우리는 창세주의 사람이다
어떻게 하늘로 돌아가는가? 사부님께서는 “신신합일(身神合一)”(《파룬궁》)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최종으로 수련 성취할 것은 우리의 육신과 우리의 진아(真我)가 하나로 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수련 성취할 수 있다면 그럼 층층 입자로 이루어진 우리 신체(身體)는 또 미래의 수련인들이 하늘로 돌아갈 길을 깔아줄 것이다.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진아를 일깨우셨고,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또 두 편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에서 사부님의 이름으로 삼계에서 미혹에 빠진 우리 육신을 일깨우셨다.
우리 대법제자와 세계 중생들을 일깨우셨다.
그렇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 역시 모두 수련인이다. 구세력이 그들의 공간장에 배치한 부대가 무신론, 진화론, 현대관념이다. 이런 것들은 최후 구세력의 망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그것은 사람과 신의 연결을 끊는 거짓말이다. 그것은 창세주의 지시 하에 자신의 모습을 본떠 우리에게 인체를 만들어 준 신(神)들을 모욕하고, 사람이 하늘로 돌아갈 희망을 끊고 있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이 전통문화와 션윈(神韻)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천우(新天宇)는 절대적으로 순정하고 아름다운 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선념(善念)을 유지할 수 있고, 현대 관념의 충격에 직면하여 사람이 전통 관념을 견지할 수 있고, 무신론・진화론의 충격 속에서 신을 여전히 믿을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구도되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사존께서는 중생에 대한 사랑으로 전통문화와 션윈의 모든 세부 프로그램 속에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를 묻어 두셨다.
나는 항상 자신의 행운에 감격하는데, 나는 2억 년간 윤회전전(輪迴輾轉)하면서도, 아직 구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지지 않았고 그래도 최후에 사부님의 제자로 선택될 수 있었다. 이것이 어떤 행운과 신적(神跡)인가! 하지만 이 기적의 배후에는 사부님의 심혈이 얼마나 소모되었을까? 게다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은 나 한 사람의 2억 년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은 지구상에서 70억이 넘는 생명들의 2억 년간의 생생세세다. 이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또 구세력의 전통문화에 대한 변이와 파괴에 직면하셨으니 사부님은 얼마나 쉽지 않으셨을까! 마침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안전하게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이 한 세(世)까지 데려오셨다. 이것은 얼마나 거대한 작품(手筆)인가! 이 얼마나 홍대한 자비이자 무상(無上)의 지혜이며 무진(無盡)한 인내심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궁을 구원하기 위해 천법(天法)을 전하노니
중생들이 빚진 업을 한 몸으로 감당하네
무량한 갖가지 업 거대한 난이 되어
검은 머리 희끗희끗 인체가 상했네”
(《홍음 3》〈환원〉)
사부님께서 새로운 우주를 하나 만들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죄업을 감당하셨으니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셨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왜 우리를 구도하려 하시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창세주는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그가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중생의 생명은 모두 그가 준 것이기 때문이다.”(《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내가 이해하기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부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세주의 아이들이다. 사부님께서 거듭 제자에게 기회를 주시고 중생에게 기회를 주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세주의 가장 용감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우주에서 첫 번째로 깨어난 생명들이다. 우리는 천국 중생들의 당부를 지니고 2억 년 동안 홍진(紅塵) 속에서 윤회전전하면서 창세주께서 우리를 구해 하늘로 돌아가시기길 고생스레 기다려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말후에 이르렀을 때, 구도를 더 잘 완성할 수 있도록, 창세주와 이런 관계가 없는 생명은 이때 사람이 될 수 없었고, 이때 이르러 세인의 진체(眞體)는 이미 그의 사람이 되었으며, 세상 사람들이 믿는 그런 신들, 사람으로 전생해 설법하고・도를 말하는 데에 이용되었던 사람마저도 모두 창세주의 사람으로 되었다.”(《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이 내가 있는 경지에서 보여주는 함의는 이렇다. 왜 피와 불의 시련도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을 동요시키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진체(真體) 속에는 창세주의 성결(聖潔)한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사악이 제아무리 잔혹하게 괴롭혀도 대법제자 생명의 근본을 동요시킬 수는 없다. 무엇 때문에 대법제자는 온갖 마난을 다 겪으면서도 의연히 중생을 구하려 하는가? 왜냐하면 그는 우리 아버지의 의지이자, 왕의 아들과 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담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침내 ‘사부’라는 두 글자의 함의를 알게 되었다.
사부(師父)란 바로 나의 스승(사師)이 또한 나의 임금이자 부친[君父]이란 뜻이니 스승(師)의 가르침을 받들어 중생을 구하고 쌓인 먼지 털어내고 자비로운 부친(父)께 절을 올린다는 뜻이다.
[역주: 원문은 준사교회구중생(遵師教誨救眾生) 탄거정진배자부(撣去征塵拜慈父)로 시작이 사고 끝이 부가 되어 둘을 결합하면 사부(師父)가 된다. 이 내용은 문장의 저자가 현재 단계에서 자기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와 세계 중생은, 우리의 원신(元神)에서 진체(真體)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명의 미시적인 것에서 표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창세주의 사람이다. 단지 중간에 끼어들어온 구세력에 의해 우리의 육신과 선천적으로 선량한 본성이 차단되었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신경문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에서 ‘사랑(愛)’이란 이 글자를 사용하셨는데, 내가 있는 경지에서 드러난 대법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사존 정법의 홍세(洪勢)는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표면으로, 법계(法界)에서 삼계(三界)이 이르기까지, 사존의 홍대한 자비가 가장 표면인 삼계에서의 이름이 바로 ‘사랑(愛)’이다. 또 다른 한 층의 함의는 삼계에서 정법을 파괴하는 마는 공산사령(共產邪靈)인데, 공산사령은 ‘증오(恨)’로 이뤄진 것이니 미움을 타파하고 해결하는 것이 바로 사랑(愛)이란 뜻이다.
사존께서 ‘사랑’의 빛으로 ‘미움’의 먹구름을 몰아내시고, 사존께서 따스한 ‘사랑’의 바람으로 먼지로 뒤덮인 중생의 기억을 일깨워주시니, 삼계에는 사랑과 기쁨이 가득 차서 만물이 소생하니 법정인간(法正人間)의 봄날이 멀지 않았다.
6. 맺는 말
이 문장을 쓰면서 원래 내가 구상했던 것과는 이미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원래 단지 작은 수련의 깨달음만 있었고, 이것을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할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글을 쓰려는 바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줄곧 나를 점화하며 도와주셨는데, 심지어 진상을 말하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도 줄곧 나의 사로(思路)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어떤 구절들은 하늘 밖에서 날아왔는데, 그런 막힌 곳들이 점차 뚫렸고, 그런 부족한 부분들이 점차 채워졌다.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사부님께서는 대법 속에서 펼쳐주셨는데, 오직 내가 탐색하기만 하면 법리가 줄곧 계속 깊어지고 확장되었다. 차츰차츰 그 흩어져있던 깨달음들이 하나로 이어졌는데 나 자신도 무척 놀랐다. 어떤 경지는 사실 내가 아직 완전히 닦아내지 못한 것임에도 사부님께서 미리 깨닫게 해주셨는데, 그것은 다음 단계에서 나의 수련 목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작자 주: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법리는 박대정심(博大精深)하지만 본인의 지혜와 깨달음에 한계가 있다. 본문은 단지 현재 수련상태에서의 인식에 불과하며 다만 독자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완결)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4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