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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수련의 길

호북 대법제자 촌심(寸心)

【정견망】

나는 올해 76세인 노년 대법제자로, 1998년에 법을 얻어 수련하고 있다. 나는 배운게 별로 없고 학교도 겨우 5년만 다녔는데 동수의 격려 하에 이번에 처음으로 원고를 쓴다.

1. 득법

법을 얻은 것을 말하자면 정말 기연(機緣)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1998년 4월, 아들이 무한(武漢)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나는 남편과 무한에 일하러 갔다. 우리는 집을 빌렸는데 마침 동수의 집을 찾았다. 이때 아들은 이미 대법수련에 들어갔으며 이것은 우연이 아님을 설명한다. 며칠 후 아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찾아와서 집주인도 대법제자라고 하며 너무 좋다고 했다. 아들이 집주인을 만나자 기뻐서 우리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이 공법은 너무 좋아서 천 년 만 년에도 만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아주 얻기 힘든 기회로구나. 정말 대법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너무나 큰 행운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이 대법속으로 들어가 수련하기 시작했다.

2. 견증(見證)

내가 대법수련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신기한 일들을 목격했고, 대법의 위대함과 초상적인 면을 느꼈고, 그래서 우리 가족의 대법수련에 대한 자신감과 결심을 더욱 굳혔다.

첫 번째 신기한 일은 막 법을 얻은 해에 있었다. 아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고 하는데, 남편은 무한에 혼자 남았다. 내가 무한에 돌아가니 남편이 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세든 집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데다 가스난로가 밤에 꺼지지 않았다. 밤에 방에서 잠을 자다가 잠이 깨어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는 침대 옆의 《전법륜》을 가슴에 안은 채,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려고 몸부림치며, 집 안을 몇 바퀴 돌자, 점점 나아졌다. 그는 사부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잠에서 깨워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신기한 일이다. 이듬해 둘째 딸과 사위, 그리고 외손주가 모두 우리와 함께 무한에 와서 살았다. 딸 부부도 법을 얻어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외손자가 너무 어려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돌아가면서 연공을 하고 한 사람은 남아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

당시 오전 4시 50분에 연공장에 갔는데, 장소는 역 맞은편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기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다 있었다. 이 날 안개가 짙게 끼어서 둘째 딸과 사위가 돌아와서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신기하다고 했다, 다른 기공장소는 온통 물이었지만 우리의 연공장소는 말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공장을 벗어나자마자 머리 위로 물이 떨어졌다고 한다.

세 번째 신기한 일이다. 4월 25일 며칠 전인 것 같다. 한양(漢陽) 제지공장에 가서 법회를 열었는데,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3시간 넘게 열었다. 법회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사부님의 법신(法身)이 오셨다고 말했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보니 적등황록청남자, 공중에 각양각색의 파룬(法輪)이 눈송이처럼 동수들의 몸에 떨어졌고 많은 일반인도 보았다. 이것은 내가 직접 본 것이다.

네 번째 신기한 일. 아들이 우리가 세 들어 사는 곳에 와서, 남편과 함께 모기향을 사러 갔다. 돌아와서 나에게 들려주었는데, 정말 아슬아슬했다고 했다. 아들이 걷는데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고 한다. 바로 그때, 고층 건물에서 큰 유리병이 떨어져 그의 뒤편의 시멘트 바닥에 부딪혔다. 사부님이 보호해 주셔서 이 재난을 피하게 해주신 게 틀림없다고 했다.

3. 마난

1999년 7월,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현 우체국에 배치되었다. 우체국에서는 그를 무한에서 연수하도록 주선했다. 어느 날 그는 신분증을 가지러 집에 가서 둘째 형부에게 자신이 북경에 상방하러 갔다고 했다.

둘째 사위가 내게 알려줘서, 내가 말했다.

“절대 가지 마라. 네가 여기까지 오는데 우리가 얼마나 애를 썼는데. 만약 네가 직장을 잃어버리면, 나는 뛰어내리고 말겠다.”

하지만 아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상방하러 갔고 이틀 만에 잡혀서 우리 부부는 다급하여 죽을 것 같았다. 며칠 후, 직장에서 그를 북경에서 데려와 강제로 구치소로 보냈다.

남편과 나는 아들을 빼내려고 도처에 아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모두들 이 일은 정치범이어서 다른 건 도울 수 있지만 이건 못 도와준다고 했다. 남편은 급해서 쩔쩔매고, 나는 매일 울었고, 사람 마음도 올라와서, 대법에 죄를 지었고 심지어 사부님에게까지 불경하게 하는 큰 죄를 저질렀다. 12월이 되어 새해가 될 무렵 회사에서 우리에게 아들을 데려가라고 통지했다. 아들에게 ‘삼서’를 쓰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해고한다고 했다. 아들은 절대 쓰지 않아 결국 정규직에서 임시직이 되었다.

2001년 어느 날 밤, 아들이 집에서 자고 있다가 또 사당(邪黨)에게 잡혀갔다. 나는 놀라 넋이 나간 나머지 이웃 경비원에게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들이 감옥에 갇힌 이후 아들이 감당하기 힘든 박해를 받자 단식을 시작했다. 열흘 넘게 단식하다가 아들이 몸이 안 좋아지자 회사에서 만나자고 통보하고 아들을 학습반에 보냈다.

나는 아들이 시달려서 사람답지 않게 보여 놀라서 어떻게 하느냐고 마구 울었다. 이틀이 지나 그를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히고 며칠 후에야 퇴원했다. 직장에서 사람을 보내 매일 미행하고, 한 달쯤 지나자 사악한 무리는 아들을 사양(沙洋)노교소로 보내 1년 동안 박해했다. 아들이 돌아와서 품팔이로 가족을 부양하고 몇 년을 비틀거리다가 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겼다.

2009년, 아들은 여행을 떠났다. 여행 도중 한 공원에서 놀다가 벽에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라는 구자진언(九字真言)을 썼다가 CCTV에 찍혔고, 그날 밤 현지 경찰에 불법으로 잡혀갔다. 잡은 지 이틀도 안 돼서 아들을 박해해 죽이고는 기차에서 뛰어내려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아들의 사인을 몰랐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며느리는 세 살배기 손자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나는 그때 이미 수련인 답지 않았고 수련할 마음이 없었다. 매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도저히 아들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0년이 흘렀다.

나중에 동수들이 와서 보고는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돌아온 후에도 수련을 하다 말다 했다. 나중에 일부 이치를 조금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다. 비록 법리를 조금 깨닫긴 했지만 여러 가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두려운 마음, 안일한 마음, 원한심,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등은 늘 내려놓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러다 2013년, 남편 동수가 고혈압 가상(假象)으로 세상을 떠났다. 친척들은 모두 그가 고혈압이 있는데도 혈압약을 먹지 않아서 죽었다고 했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다 잘 수련하지 못하고 대법에 먹칠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 죄송하고, 우리를 되찾아준 동수에게도 죄송하다.

네 딸은 모두 각자 가정이 있고, 집에는 나 혼자 남았다. 손자는 며느리가 데려갔지만 앞으로 생활비는 어떻게 하는가? 아이 아버지는 박해로 죽었고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는데, 누가 그에게 돈을 벌어주는가? 그래서 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아침 식사를 하는 가게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집에 갔다. 어느 날 아침, 일을 하던 나는 어느새 땅에 쓰러져 아무것도 몰라서 사장님을 놀라게 했다. 그가 우리 집에 와서 둘째 딸과 사위를 불렀는데 사위가 구급차를 불렀고 차가 오자 나도 깼다. 그들은 저에게 차에 타라고 했지만 나는 왜 병원에 가야 하는지, 내가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급차가 떠났고, 그들도 떠났다. 이때 사부님이 나를 보호해 주셨는데, 법을 실증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싶었다. 셋째 딸이 상황을 알고 다그쳐 빨리 수련하라고 하면서 말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목숨은 수련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비로소 사부님이 나를 보호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사(情絲)를 잡아 쥐어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정진요지》〈수련자 금기〉)

그제야 마음을 놓고 마음 편히 수련을 했다. 혼자 살다 보니 집안일이 많지 않아 매일 《전법륜》을 3~4강씩 읽고, 《홍음》은 1·2·3·4권을 모두 외울 수 있다. 연공은 매일 3시 15분에 일어나 한 번에 끝까지 한다. 비록 법 공부를 많이 하긴 하지만, 마치 임무를 완수하는 것처럼 하여 착실히 수련을 하지 못한다.

진상 알리는 이 일을 말하자면, 나는 괴롭다. 펜을 들고 글을 쓰지니 눈물이 핑 돈다. 어떻게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갈까 항상 사부님께 죄송하다. 2015년 강택민 기소부터 진상을 시작했는데 모두 A 동수와 그녀의 아들이 우리를 데리고 나와서 진상을 했다. 그녀는 어머니 동수와 함께 진상을 이야기하도록 주선했고, 그녀는 나의 둘째 딸과 함께 몇 년 동안 진상을 했다.

2021년 사당(邪黨)이 청령(清零 제로화) 정책으로 우리 고향 당 간부들이 5월부터 10월까지 총 몇 번이나 왔는지 모른다. 네 번째 왔을 때, 그들은 우리 친척들을 모두 찾아왔다. 나는 두려움이 다시 올라와 그들을 피했고, 그들과 만나지 않고 동수 집으로 달려가 열흘 넘게 숨어 지냈다. 그들은 처음 세 번 왔을 때 둘째 딸을 찾지 못하면 셋째 딸을 찾아갔다. 딸들도 이리 저리 숨느라, 제대로 일도 못하고 출근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셋째 딸을 어떻게 하겠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아들이 그들에게 박해당해 죽었기 때문에 나는 셋째 딸이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상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은 시시각각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을 해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이기적인데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4. 맺음말

사부님께서는 《홍음 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도(大法徒) 수련 어렵지 아니하나
첩첩 속인마음 곳곳에서 가로막네
상사(上士)는 난(難)을 만나면 웃음으로 풀어내고
중사(中士)는 고비를 만나면 탄연하지 못하며
하사(下士)는 사람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네
대법이 세상에 전해짐은 극히 비범(非凡)하거니
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해 원만으로 돌아가는데
몇 사람이 행하고 몇 사람이 말뿐이겠는가

사부님의 법을 읽으면서 나는 더 부끄러웠다. 내가 어떻게 사부님께 떳떳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어떻게 내 천국의 중생들에게 떳떳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부터 환골탈태해서 새롭게 잘하고 사부님의 법을 내 머릿속에 융화(融化)시켜, 착실히 수련하고 용맹정진하며 세 가지 일을 잘 해서,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