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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에서 걸어나와 착실한 수련으로 들어가다

정아(淨兒)

【정견망】

정법수련(正法修煉) 24년간 나의 개인수련은 정법수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법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오성(悟性)이 좀 차한 사람에 속한다. 처음에는 대법이 수련인지 몰랐고 그저 병을 물리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공이라고만 여겼다. 천서(天書) 《전법륜(轉法輪)》을 품고서도 법 공부를 많이 할 줄 몰랐고 그저 연공만 중시하고 공부는 가끔 했다.

수련하기 전부터 나는 자신의 죄업(罪業)이 막중함을 알고 있었다. 집 근처 도관(道觀)의 한 도장(道長)이 내게 알려주길 내가 생생세세 아주 많은 사람을 해쳤고 많은 업을 지었노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수련 전에 각종 질병에 시달렸으며 아울러 장기간 치유되지 않았고, 마치 하루가 일 년처럼 길었으며 마흔도 안 되어 병가로 직장을 쉬어야 했다.

수련 후에 표현된 것은 입문하자마자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나를 위해 소업해주셨는데 그 기세가 아주 맹렬했다.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했으며 마치 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 하체에 유혈이 낭자한 등의 증상이 있었다. 소업(消業) 할 때면 늘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뒹굴었지만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업은 매번 1주일 정도 지속되었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변의 다른 동수들을 둘러봐도 나처럼 심하게 소업 한 사람은 없었다. 법을 배웠기 때문에 소업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몸은 점차 건강해졌고 모든 약을 버리고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천목(天目)도 열려서 사부님 법신과 동수들의 공기둥은 물론 다른 아름다운 광경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오성(悟性)이 차하고 소심해서 사부님께 천목을 닫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이어서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었고, 나는 곧장 천안문(天安門)에 가서 대법의 억울함을 풀었다. 말하자면 부끄럽지만 천안문에서 만난 사복경찰이 나더러 호법(護法)하러 북경에 왔느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멍했는데 호법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러 왔습니다, 우리 사부님과 대법이 천고에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총 4차례에 걸쳐 북경에 간 호법활동으로 2000년에 나는 사악에 의해 1년이 넘는 노동교양을 당했다. 당시 수련 초기라 법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련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어〉와 《홍음》은 모두 구치소와 노교소에서 동수들을 따라 외웠다. 나중에 노교소, 세뇌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법을 외운 것에 의지했는데, 그때는 거의 하루 종일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법을 외웠다.

나는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에야 대량의 법 공부와 정각 발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주변의 몇몇 동수들이 늘 내게 아첨했는데, 처음에는 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이 법을 늦게 얻었고, 법공부가 튼튼하지 않음을 알기에 교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사람됨이 조용하고 떠벌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에 속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자 점차 무감각해졌고 점차 자신이 그래도 썩 괜찮다고 여겼다. 비록 법은 늦게 얻었지만 대체로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다고 여겼다.

사실 그때 이미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다. 정상적인 출근 외에 북경에 가서 호법하고 《구평》배포, 션윈(神韻) CD 배포, 진상자료 배포, 녹음전화 틀어주기, 직접 얼굴을 보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하기, 강택민 고발, 작은 면적의 협조인 등 모든 활동에 참여했지만 심성 수련을 제1위에 놓지 못해 사악이 빈틈을 타게 했음에도 나 자신은 몰랐다.

1. 부실한 수련이 초래한 병마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하고 사당(邪黨)이 도시와 소구(小區)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연공한 후 소구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 진상을 알렸고, 오전에는 법을 배우고, 오후에 집에서 진상 전화를 걸어 삼퇴를 권했다. 하지만 밤이면 자신을 느슨히 하고 동태망(動態網)과 1인 미디어에서 미국 대선과 역병에 대한 뉴스들을 보곤 했다. 비록 대법제자는 동태망과 속인 미디어를 볼 수 없고 그것은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원래는 남편과 아들에게 역병 진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점차 중독되어 매일 보았고, 또 요행심리를 품었다. 자신은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 있으니 속인 매체를 어느 정도 보아도 별일 없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지난 4월 초 사당이 봉인을 해제한 후, 내 몸에 심각한 병업이 나타났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비로소 자신이 사악이 배치한 꽃 함정[鮮花陷阱 역주: 겉으로는 화려한 꽃처럼 보이는 함정]에 빠졌음을 알았다.

이번 병업은 기세가 아주 맹렬해서 내가 수련을 시작한 이래 경험해보지 못했던 병업 가상이었다. 표현은 온몸의 모든 세포가 격렬하게 아팠는데 마치 천개의 날카로운 칼로 만 번을 벤 것 같았다. 새벽부터 시작해서 통증이 한시도 멈추지 않았고, 목, 등, 허리가 뻣뻣하고 아파서 허리를 굽히거나 머리를 돌릴 수도 없었다.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부종이 생겨 살색이 검게 변했으며, 누르면 움푹 들어갔다. 발이 부어 신발도 42사이즈(역주: 260mm)을 신어야 겨우 들어갔다. 무릎이 아파서 구부리고 설 수 없었고 잠을 잘 때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때 우리 소구(小區)는 아직 봉폐가 풀리지 않아 다른 동수들이 나를 찾아올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침대에 앉아 사부님 설법을 듣고, 발정념을 했으며 앉은 자세로 1, 3, 4, 5장 공법을 연마했다. 하지만 두 팔이 너무 아프고 뻣뻣해서 들어 올릴 수 없었고, 빗질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2장(포륜)은 아예 연마할 수 없었다. 목욕이며 대소변을 가리는 것도 모두 남편의 도움에 의지해야 했다.

정공(靜功) 연마는 가부좌를 할 수 없어서 다리를 풀고 무릎을 높이 교차해서 했고 밤이면 통증이 심해져서 잠을 들 수 없었다. 잠시 앉거나 누워 사부님 설법을 들었다. 식욕이 없어서 체중이 확 줄었다. 나중에 남편이 너무 지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나더러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이에 나 역시 대법에 먹칠하고 가족들이 대법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줄까 염려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가 나에게 무슨 병인지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병도 없어요. 나는 십여 년간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내 통증을 가라앉혀주기만 하면 퇴원할 겁니다.”

나는 통증만 멈추면 나머지는 내가 집에 돌아가 법을 공부하고 연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의사는 통증을 가라앉혀주기는커녕 반드시 전체적인 검사를 한 후에야 약을 처방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6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낮에는 앉아서 1, 3, 4세트의 공법을 꾸준히 연마했고 밤이면 고통을 참고 가부좌를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같은 병실 환우를 삼퇴시켰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정말로 아무 병도 없었는지 의사를 만나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이에 나는 퇴원을 요청했고 의사는 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협조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보조 침대에서 나를 간호하느라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해 혈압이 오르고 전립선염이 생겼고, 눈도 충혈 되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할 수 없이 진통 주사를 놓아 주고는 나를 퇴원시켰다. 다리와 발의 부종에 대해서는 더욱 방법이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는 마음속으로 이 모든 것이 다 업력 때문에 조성된 것임을 똑똑히 알았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것은 업력을 신체 안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법 공부와 연공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소구 봉쇄가 풀렸다. 동수들이 우리 집에 와서 단체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2. 안으로 찾으니 유암화명(柳暗花明)

비록 진통제 주사를 맞았지만, 몸은 여전히 아팠고,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우울함이 동반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사악이 연화(演化)한 죽은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그건 정말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했다. 한번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남편에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자마자 나는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았다. 그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라 사악이 조종한 것이다.

나는 곧장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달려가 잘못을 인정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한 동수를 파견해 나를 이끌어주게 하셨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시 정말로 두려웠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고심(苦心)해서 나를 구도해주셨음에도 나는 오히려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는 대법에 먹칠을 할 수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야 한다.

동시에 가족들도 와서 교란했다. 동생들과 아들 등 가족들은 모두 외지에서 일하는데 날마다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물었다. 겉으로는 내게 관심을 가진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모두 사악에 조종당하고 이용당해 나더러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권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고 모두 남편더러 처리하게 했다.

다행히 봉쇄가 풀린 후 동수들이 집에 와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동수들은 일주일에 세 번 나와 함께 법 공부와 발정념을 해서 나의 정념을 더해주었지만 동시에 약간의 곤혹을 가져다주었다. 병업을 겪은 후, 나는 병업 동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동수들의 정념과 격려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 한 마디 격려의 말만으로도 관을 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더해줄 수 있었지만, 내 주변에 이런 동수들은 많지 않았다.

어떤 동수는 직접 내 집착을 지적했다. 가령 두려운 마음, 안일심, 고생을 두려워 함,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등등이었다. 이런 건의들을 나는 모두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고, 점차 법(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았다.

어떤 동수는 “그녀는 법리가 똑똑하니 우리가 상관하지 말고 혼자 관을 돌파하게 내버려두자”고 했다. 또 어떤 동수는 몇 번 공부하러 와서는 효과가 없다고 여기자 곧 그만두고 더는 상관하지 말자고 했다. 또 어떤 동수는 배후에서 나를 비난하면서 내게 아주 많은 좋지 않은 물질들을 더해주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나 자신도 당황스럽고 막막했다. 나는 예전에 교도소에서 고문을 당해 양팔에 장애가 생겼고, 세뇌반에서 독극물 주사를 맞고, 독이 든 밥을 먹었지만 병원에 가서 약물 치료를 받거나 동수들의 도움도 구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 병원 검사에서, 노교소에서 견갑골을 잡아당기고 풀어주지 않아 골두(骨頭)가 이미 시커멓게 변해 회복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전부 집에 가서 스스로 법을 공부하고 연공해서 반년 만에 회복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도랑에서 배가 뒤집힌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라고 하셨다. 병업 가상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안으로 찾지 않을 수 없게 했고 나는 원한심, 쟁투심, 질투심, 남을 함부로 논하고 수구(修口)하지 못하는 마음, 남을 무시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색욕심, 과시심, 자아가 팽창하는 마음, 일단 말만 하면 폭발하는 마음, 동태망과 SNS를 보면서 자신을 느슨히 하는 마음 등등을 찾았다. 찾은 후 나는 다시 법 공부를 통해 자신을 바로잡았다.

지금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는가?”

내 느낌에 효과가 아주 좋은데, 자신이 깨닫지 못한 집착이나 알면서도 제거하지 못한 집착에 대해 직접 대법을 사용해서 바로잡는다.[자세한 내용은 명혜 문장 〈‘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자신에게 묻다〉를 참조할 것.]

또 사부님의 선해(善解)에 관한 법을 자주 사용해 역사 속에서 층층 내려오면서 맺은 원한을 선해했다.

나는 매일 《전법륜》 1강을 배우고, 또 작은 단락을 하나 외우며, 날마다 아무리 아파도 두 차례 연공한다. 하지만 온몸이 다 아프고 힘이 없어 앉아서 연공할 수밖에 없다보니 효과가 자연히 많이 떨어졌다. 그러다 올해 들어 한 노동수(老同修)가 우리 집에 와서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면서, 내게 반드시 서서 연공해야 하며, 아무리 아파도 서서 연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륜(抱輪) 할 때는 동수가 내 팔을 올리도록 도와주었다.

그날부터 나는 자신에게 엄격히 서서 연공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허리와 등이 아파서 서 있을 수 없었고,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연마하곤 했다. 어느 정도 견지하고 나자 서서 연마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나는 또 명혜망과 정견망을 즐겨 보는데 날마다 많은 동수들의 지혜와 교훈을 흡수한다. 날마다 명혜망에서 사부님(사진)을 뵈면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매번 넘길 수 없는 관을 만날 때마다 대법 사이트에서 관련된 문제에 관한 동수들의 문장을 찾아본다.

이렇게 1년 이상 연공과 법 공부를 통해 두 다리의 부종은 기본적으로 다 빠졌고, 검게 변했던 피부도 희고 투명해졌다. 휠체어를 밀 수 있게 되면서, 다시 대면(對面)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떤 동수는 나더러 휠체어를 밀면서 진상을 말하면 (대법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고 대법에 먹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제3자의 신분으로 진상을 알린다. 비록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멀리까지 나가진 못하지만, 오직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기분이 매우 좋다.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않으면 답답하고, 폐인처럼 느껴진다.

집에서도 비록 삼퇴 명단을 보내고, 법회 원고를 정리하거나 각종 제보 소식이나 박해 소식 등을 사이트에 투고할 수는 있지만, 나는 여전히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거나 또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 매일 아침 연공을 마친 후 나는 〈논어〉 〈도법〉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등의 경문을 외우고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가 발표된 후에는 여러 번 베꼈다. 수확이 많다고 느끼지만 아직 다 외우지 못해서 아쉽다. 비록 내가 아직 병업관을 철저히 넘기지는 못했지만, 나는 더는 소침하거나 답답해하지 않는다. 이렇게 위대한 법이 있고 이렇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계시니 나는 자신을 사부님께 맡겼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내 기억에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정진요지 3》〈시카고 법회〉)

“사람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 2》〈슬퍼하지 말라〉).

나는 이것을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법을 많이 배우고, 법을 외우며, 일마다 대법에 대조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이 관을 돌파할 수 있으며 유암화명(柳暗花明)의 그 날이 신속하게 오리라 굳게 믿는다.

맺음말

《봉신연의》에서 강자아(姜子牙)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의 훈계를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아 삼십육로(三十六路)의 토벌을 초래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은 이치가 명백하고 말씀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또 전문적으로 질투심, 과시심, 환희심, 수구 등의 장절(章節)을 말씀해 제자를 일깨워 주셨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의 훈계를 따르지 않아 스스로 마난을 초래했다. 나는 24년을 수련하면서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뒤돌아보아 사부님께 아주 많은 번거로움을 끼쳤으며 사부님께서 몇 번이나 나를 건져주셨는지 모른다. 마난 속에서 나는 무엇이 사은호탕(師恩浩蕩 사부님의 크고 거대한 은혜)인지 깊이 깨달았다. 매번 넘어가지 못하는 관을 만날 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외친 것은 “사부님 살려주세요!”였다. 그런 후 발정념을 하면 곧 해결되었다.

제자는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고, 오직 정진실수(精進實修)하며, 매사에 대법으로 자신을 엄격히 대조하고, 용맹정진하겠습니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더는 사부님께 폐를 끼치지 않으며, 원만(圓滿)해서 자신의 사전 큰 소원을 완수하겠습니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제자는 사존의 자비하신 고도에 감사드립니다!
동수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명혜망과 정견망 동수들에게 감사드리며, 당신들의 사심(私心) 없는 헌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