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달(林達)
【정견망】
최근 사존께서 연속으로 《험악을 멀리하라》와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라는 두 편의 경문을 발표하셨다. 나는 연속으로 몇 차례 배독(拜讀 역주: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읽는 것)했는데 매 번 심령(心靈)에 강렬한 진감(震撼)을 받았다. 다음은 이 방면에서 개인적인 깨달음을 간단히 말해보겠다. 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1. 대법에서 벗어난 현상
대법이 널리 전해진 지 이미 31년이 지났는데 사람마다 처음에 법을 얻는 목적이 달랐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사람마다 정진하는 정도 역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쉬지 않고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하고, 어떤 사람은 현실을 중시해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떤 사람은 명리(名利)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해 돈 구멍을 파고들고, 어떤 사람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울타리를 치고 배후에서 불평을 늘어놓으며, 더욱 심한 자는 심지어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이 싫어 날마다 속인의 생활을 누리기 시작하는 등등…. 대법에서 벗어난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국내외에 모두 있다.
최후로 갈수록 사존(師尊)의 마음은 더욱 급해지신다. 사존께선 무엇을 조급해 하시는가? 사존 당신을 위해서인가?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사존께서는 창궁(蒼穹)의 모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 여의대법(如意大法)을 가지고 창궁의 꼭대기에서 한 층 한 층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법을 전하고 법을 바로 잡으며 사람을 구도하셨다. 당신은 이 과정이 얼마나 간고한지 아는가? 사존의 감당과 치르신 대가를 얼마나 되는 동수들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인간의 일에 속 태울 대로 태우고
하늘의 고생에 마음 쓸 대로 쓰네
할 말 있으되 뉘에게 하소연하랴
높은 곳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네”[1]
우리는 말겁(末劫) 시기에 이렇게 소중한 대법(大法)을 얻었음에도 소중히 여기고 동화(同化)할 줄 모르며 그저 가만히 앉아서 성과를 즐기려고만 하는데 그것을 “수련”이라 할 수 있겠는가? 수련의 길에 무임승차란 없다. 생생세세 윤회전생 중에서, 무명(無明)의 미망 속에서, 우리의 본성은 이미 오래 전에 매몰되었고, 천만 년을 왕복하며 기다려왔다. 우리 몸에는 흑색 업력이 아주 많이 축적되어 있고, 또 후천적인 관념에 의해 제멋대로 주재당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제도하기 위해 삼계, 지옥, 인간, 저승에서 우리의 이름을 전부 제명해 오직 대법의 관할 하에 두셨다. 만약 이런 대자대비(大慈大悲)한 흉금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하셨을 것이다. ‘반본귀진(返本歸真)’ 과정은 끊임없이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자 또한 고생을 겪으며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매 수련인마다 모두 예외가 없는데 위로는 대통령, 부호에서 아래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업력이 있다. 때문에 오직 고생 속에서 업의 빚을 갚아야만 당신은 비로소 초탈해 나올 수 있다.
“수련의 길에 고생 있음이 아니라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음이로다”[1]
“우리 인류가 오늘날 이런 정도로 발전하기까지는, 사람마다 거의 모두 업이 구르고 굴러서 온 것이며, 사람의 몸에는 모두 상당히 큰 업력이 있다.”[2]
즉, 모든 것은 자신이 조성한 것이다.
2. 법을 스승으로 삼아 일을 꾸미는 사람에게 절대 영합하지 말아야
우리의 수련상태가 어떻든 간에, 무슨 일만 생기면 밖으로 구하며 밖을 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만약 밖에서 구한다면 그는 당신이 마도(魔道)를 걷는다고 한다.”[2]
만약 정말 이렇다면 그 사악한 마는 그런 일을 꾸미려는 사람들을 이용해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교활한 말로 당신이 방향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 그가 한 말이 당신의 생각과 일치하기만 하면 그럼 사악에 이용당한 사람은 마치 그래도 자신과 의기투합하는 것 같다. 그럼 그는 당신의 비위를 맞추고, 당신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데 당신은 오히려 자신이 이미 해적선에 올라탄 것임을 모른다. 당신은 또한 이 사람들의 행동이 우주대법의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진정으로 착실한 수련을 거친 사람들은 법리가 명석하기에, 오직 그의 행동을 보거나 하는 말을 들어보기만 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
현재 이런 정신 나간 인간쓰레기들은 이미 특무(特務)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집착심에 이끌려 맞장구를 치는 그런 사람들은 명백해졌다 할지라도 역시 수련의 기연이 다시 있기가 몹시 어렵다. 대법(大法)은 엄숙한 것이고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나쁜 짓을 했든지 모두 자신이 갚아야 한다. 나는 한 명의 수련생도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나는 또한 자격이 부족한 제자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3]
3. 누구를 위해 수련하고 왜 수련하는지 자문해보자
많은 동수들이 대법제자의 환경 속에서 다년간 머물러 있음에도 대법과 사부님 및 수련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감성적이고 표피(表皮)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일단 자신이 기대했던 것이 실현되지 않거나, 자신이 대법을 위해 이미 많이 감당했다고 여기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지고 나태해져서, 더는 노력하지 않고 대법 일도 더는 하지 않으며 자리에 앉아 꽃이 피기만 기다린다.
나는 박해 초기에 아주 정진했던 한 동수를 아는데, 그녀는 내게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아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그 후에는 어땠나요?”라고 물어보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존께서는 “공덕을 성취함은 나중의 일이라”[4]고 말씀하셨다. 매 한 걸음이 다 아주 중요하며, 최후로 갈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우리 여기는 무슨 연공서열과 같은 그런 상투적인 것이 없다. 여기서는 수련을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대법이 좋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정말로 어디가 좋은지 아는가? 그저 대법이 그를 건강하게 해주었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혼란(惑亂) 중에서 당신의 대법(大法)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문제입니다!”[2]
자기 수련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왜 수련하는가?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직시해야 하고 해결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최소한의 이런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럼 당신의 수련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4. 당신의 조사정법은 남을 위함인가 아니면 사부님을 위함인가?
어떤 사람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한 일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의기양양하게 여기며 마치 자신이 사부님을 도운 것처럼 여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법에서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고 여기는데 오래 지나자 동력을 잃어버리고 마지못해 버틴다. 이 역시 정법(正法) 수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전(史前) 역사과정 중에서도 줄곧 정법시기 제자의 위대함에 따라 당신들의 일체를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배치 속에서 당신들이 일반적인 원만의 표준에 도달했을 때 세간(世間)에서 아직도 속인의 각종 사상과 업력이 있을 수 있는데, 목적은 정법 일을 하는 한편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중에서 당신 자신의 세계의 원만을 위해 제도할 수 있는 생명들을 수집하고, 당신들 자신의 세계를 원만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당신들의 최후의 업력을 제거하고, 점차 사람의 사상을 제거하며, 진정하게 사람에서 걸어 나오게 하는 데 있다.”[3]
사존께선 오직 법을 바로잡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으로, 제자의 것은 그 무엇도 원하지 않으시며 다만 우리의 정진실수(精進實修)와 선(善)을 향한 마음만 요구하실 뿐이다.
“사부는 당신들을 위해 감당하는 외에 당신의 것을 아무것도 얻지 않았는데, 사부가 중생을 가엽게 여기기에 비로소 이렇게 한 것이다!”[5]
5. 황금이 될 것인가 모래가 될 것인가?
정법 수련의 시간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수련 중에 나타난 문제에 대해 청성(淸醒)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져야 한다. 더는 우왕좌왕하지 말고 당신의 수련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황금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뼈아픈 고통 속에서 다시 분발하고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심리를 없애고 정진해야 한다. 당신에게 아직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고 또한 대법을 수련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존께선 언제든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사존의 제자이고, 당신은 여전히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 추락해서 심연(深淵)으로 떨어지길 원하고 미래를 포기한다면, 그것 역시 당신 자신의 선택이다. 만약 사존과 대법마저 당신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그럼 엄격한 선별 속에서 당신은 영원히 당신 생명의 영원을 잃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여전히 책임을 다하고 싶은데, 수련 중에서 문제가 나타난 그런 모든 사람들이 빨리 청성해져서 빨리 대법 속으로 돌아와 착실하게 수련하기 바란다. “중토에서 태어나기 어렵고 정법을 만나기 어려우며 사람 몸을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 만고의 기연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 천지개벽에도 없었던 慈悲(츠뻬이)와 불은호탕(佛恩浩蕩) 하에서도 잘하지 못한다면 어찌 또 다음 한 차례 기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 수련과 정법은 엄숙한 것이다. 이 한 기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사실 바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 한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지만 도리어 부동한 층차의 위대한 각자(覺者), 불(佛)ㆍ도(道)ㆍ신(神)과 부동한 층차의 주(主)의 위덕을 단련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을 느슨히 하는 한 수련자로 하여금 이미 굉장히 높은 층차에서 하루아침에 망가지게 할 수 있다. 제자들이여, 정진하라!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체는 모두 당신들이 대법(大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생긴다. 당신들의 서약(誓約)은 당신들 장래의 증거가 될 것이다.”[3]
주:
[1]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높은 곳은 쓸쓸해〉와 〈인과〉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와 〈정법시기대법제자〉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 2》〈일념중〉
[5] 리훙쯔 사부님 신경문 《험악을 멀리하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4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