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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부님을 기만한 적이 있는가?

영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를 읽은 깨달음

사부님 경문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를 받들어 읽은 후 깜짝 놀랐다! 동시에 또 사부님의 홍은호탕(洪恩浩蕩)에 몹시 감격했다.

개인적인 이해로 이 중요한 시기에 사부님께서 다시 많은 천기(天機)를 밝혀 제자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동시에 불법(佛法) 위엄의 일면(一面)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일부 수련인들이 사당(邪黨) 변이 관념의 영향을 받아 사부님과 사부님 가족에게도 이른바 연줄을 잡고 뒷문으로 들어가 이득을 얻으려는 더러운 사람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는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는 변이 행위로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수련인의 환경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대법제자 정체(整體)에 관해 말하자면 사부님 가족을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필경 소수이고 우리 절대다수는 접촉할 수 없다. 하지만 사부님 경문은 우주의 각계(各界)의 중생을 향한 것이다. 나는 자신을 대조해보고 얼굴에 땀이 날 정도로 부끄럽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왜 이렇게 운 좋게 대법제자가 되었는지 알려주셨다.

“특히 대법제자 다수가 사부와 많은 생의 직계 가족인 적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인연의 주된 원인이다.”(《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

우리는 일찍이 여러 차례 사부님의 직계 가족이었으니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하지만 동시에 또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나는 사부님께서 또 다른 천기를 알려주셨음을 깨달았는데 바로 대법제자는 표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사부를 기만(欺)하는 것! 또 하나는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것!”(《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

1. 사부님을 기만하지 말아야

나는 이 두 가지 표준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사부님을 기만한 적이 있는가? 나는 감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참가한 대법항목 중에서 게으름을 피운 적은 없는가?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하겠다고 한 일을 다 해냈는가?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감히 자신이 다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부님을 기만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될 수 없는 이유의 하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현대 인류는 변이 관념 때문에 ‘기만’에 대한 이해가 다르고 ‘스승을 존중함[尊師]’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고인(古人)이 어떻게 사부님을 더없이 존중하고 더없이 고마워했는지 더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션윈(神韻) 프로그램 중 《노자가 서쪽 관문을 나서다》를 보면 윤희(尹喜)가 노자와 함께 있을 때면 늘 사부보다 한 단계 아래(만약 계단이 있다면)에 서서 사부를 우러러보고 존숭하며 더할 나위 없이 공경하는 것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표현되었다.

이것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개의치 않는 일부 ‘작은 일’은 이미 사부님께 불경할 수 있음에도 변이된 관념 때문에 우리 자신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당문화(黨文化)의 거칠고 무리한 것들에 물들어 진정한 전통 문화의 함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법 중의 수련의 표준, 갱신 후 도달하고자 하는 그러한 신들의 표준은 엄격한 것으로, 이 일체는 새 우주의 표준요구이다.”(《20년 설법》)

요컨대 사부님을 배반하고 사부님을 기만한(어떤 것들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작은 것들이다) 후과는 엄중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비록 제자에게 자비를 베푸시지만 정법은 무정(無情)하며 신우주로 들어가는 표준은 엄격한 것이다.

“사문(師門)을 배신한 수련인은 고대에는 사문에서 쫓겨나는 결말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만, 대법은 사람에게 자비롭기에 비록 박해라는 큰 형세 하에서 본의 아니게 ‘보증서(保證書)’, ‘삼서(三書)’, ‘오서(五書)’를 썼더라도 새롭게 수련하고 새롭게 잘하면서 손실을 보완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새롭게 수련한다는 것은 시작점이 매우 낮음을 의미하는데, 신수련생이 됐을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한 죄업까지 지니게 됐다.”(명혜편집부 문장 《아첨과 자심생마》)

2. 중생구도를 교란해선 안 된다

이 표준 역시 나를 부끄럽게 했다. 돌이켜보면, 대법항목 속에서 나는 시시각각 대법을 제1위에 놓았는가? 가령 질투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어낸 적은 없는가? 사람을 구하는 중요한 항목을 용두사미로 만들진 않았는가? 사람 생각과 자아(自我)가 우위를 점할 때면 중생을 구도하는 항목을 교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최근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신경문 및 명혜망에서 집중적으로 올린 글들에서 모두 이런 현상들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신수련생을 이끌어 현지 법 공부 환경을 아첨하게 만들고 장기간 수련생들의 수련 환경을 교란하는 것 등 이런 것들은 일정 정도 사람을 구하는 데 방해가 되는데, 사실은 중생구도를 교란한 것이다.

“대법제자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사람 구하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마음이 많고・장기적으로 수련생의 수련환경을 교란하는 이, 또 사오한 자(邪悟者)나 수련생으로 위장한 중공특무를 따르는 이・수련생에게 심각한 교란을 조성한 이는 모두 서약이 실현되는 중에서 후과(後果)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깨어나라》)

사부님의 가르침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제자는 오직 “큰 북채로 북 울리니 정진해야 함을 알지니라”(《홍음 2》〈고루〉)밖에 없다!

앞에서 아주 엄중하게 말했는데 이는 구체적인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부 표현을 겨냥한 것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단지 자신의 사람 마음에 부합하고 우리를 찬양하는 그런 말들만 모아서 듣지 말아야 하며, 또한 정법 표준의 엄격함과 불법(佛法)의 위엄 및 신성(神聖)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또 깨달은 것은 기왕에 우리 대다수가 일찍이 사부님의 직계가족이었다면 그럼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가족’인데 단지 현세(現世)의 가족이 아닐 뿐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전 세계, 모든 세상 사람은 다 나의 친인(親人)이었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그렇다면 우리가 동수를 대하고 세인(世人)을 대할 때 더욱 자비롭고 더욱 선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역시 사부님의 가족이며 사부님께서 그를 위해 자비로 무수한 것들을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세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또한 우리가 사부님을 존경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상은 개인적인 이해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