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법을 얻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수심(修心 마음 닦음)방면에서 줄곧 아주 차(差)했다. 최근 2~3년 들어서야 비로소 일부 방면에서 심성을 지킬 수 있었지만 당연히 착실하게 수련을 잘한 동수들과는 차이가 아주 멀다.
자신의 교훈을 한번 총결해서 일부 얕은 인식을 나누고자 하니 나와 유사한 동수들에게 작은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마음을 수련하지 못한 한 가지 원인은 내가 어려서부터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아주 강했기 때문이다. 아마 근기가 좀 차할 것이다. 질투, 쟁투, 원한, 색욕 등 각종 악념(惡念)이 모두 아주 무거웠고 남들과 말다툼이 일상이었고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이 방면을 중점으로 하진 않겠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실제 상황을 마주해 수련해야 하며 대법이 구도하는 문은 이렇게 크게 열려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이든 사실은 다 문제가 아니고 관건은 수련할 수 있게 배워야 한다.
1. 제고의 관건은 법공부
자신의 관건 문제는 수련의 요점(要點)을 잡지 못한 것인데 다시 말해 법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나는 20년 전부터 수련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날마다 쓰진 않아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주로 기록한 것은 자신의 심성문제다. 가령 질투심을 발견했다든가 또 참지 못해서 화를 냈다거나 다음에는 꼭 고쳐야 한다는 등등이다. 일기에서는 내 심성문제에 대한 기록이 아주 적나라한데 또한 확실히 모두 나의 문제였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 여러 해가 지난 후 발견한 것은 마치 변화가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도 몹시 낙담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투철하게 분석하고 사람 마음을 파냈음에도 늘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중에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줄곧 자신의 집착심을 찾아내고 이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고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또 동수들과 교류하고 또 동수들의 문장도 읽었고 이것들 역시 모두 어느 정도 작용을 했다. 하지만 제고가 아주 느렸는데 문제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내가 발견한 것은 나는 줄곧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개변하고 바로잡으려 했는데 이는 사람 마음으로 수련을 대한 것과 같다. 나는 심성문제를 찾아낸 후 똑똑히 인식하고 이를 깊이 분석해서 고치려는 결심을 내리면 곧 좋아질 거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이렇게 쉽지 않았고 늘 잘 하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오히려 실천할 힘이 없었다.
사존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법 공부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체 일의 근본 보장이다. 만약 법 공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럼 무엇이든 다 없어진다.”
나는 줄곧 법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내심에서 우러난 깊은 인식이 부족했다. 비록 일정 단계에서 법 공부 양을 아주 중시해서 법을 몇 차례 외우기도 했지만 중시하는 정도는 훨씬 모자랐다. 본문에서는 여러분들과 함께 자신이 법 공부를 중시하는 것을 저애한 일부 관념과 사람마음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사람 마음으로 법을 대하지 말아야
나는 과거에 마음 수련이란 바로 질투심, 쟁투심, 색욕심 등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법을 읽을 때 사람 마음으로 대했는데, 어떤 부분은 심성제고와 비교적 관련이 크다고 여겼다. 가령 《전법륜》 제4강의 〈실과 득〉, 〈心性(씬씽) 제고〉 등의 내용이다. 반면 어떤 부분은 심성제고와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고 여겼는데 예를 들면 〈관정〉이나 〈현관설위〉 등의 내용이다.
때문에 법을 공부할 때 모든 내용을 똑같이 중시하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님을 발견했는데 일부 동수들 역시 유사한 관념을 제기했다. 이런 관념 아래에서 법을 공부할 때 자신이 심성제고와 별 관련이 없다고 여긴 내용은 빨리 지나쳤고 마치 지식을 이해하는 것처럼 했으며 법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간주하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법을 공부하는 심태가 법을 얻을 수 있는가 여부를 결정한다.
관(關)을 넘을 때 나는 다년간 심성을 지키지 못했고 화를 참지 못했는데 스스로도 낙담했다. 분명히 법리(法理)를 똑똑히 알고 있고 화를 내는 것은 남에게 덕(德)을 주는 것임을 아는데 왜 뻔히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가?
사실 법은 체계적이고 완정(完整)한 한 부의 우주대법(宇宙大法)으로 매 한 글자 매 한 구절 모두 우리 수련에 대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사람 마음으로 고르고 선별한다면 이는 자신이 나를 겨냥한다고 여기는 내용을 중시하는 것으로 심성제고와 별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내용은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 자체가 바로 법을 배워 법을 얻음을 저애하는 것으로 크게 잘못된 관념이다.
3. 무신론의 저애
나는 또 사람 마음이 있는데 바로 법리에 대해 말씀하신 아주 많은 내용을 좀 허황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마음은 비교적 은폐되어 있어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다. 사실 배후에는 무신론 사유가 있다.
때문에 매번 다른 공간에 관한 것이나 일부 신기한 현상이나 공능에 관한 것, 일부 실증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내용에 관해 또는 자신이 믿기 힘들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는 늘 백분의 백 진정으로 믿지 못했고 또한 지식을 이해하는 것처럼 대했다. 다시 말해 이 부분은 비록 자신이 배웠음에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고 진실로 여기지 못했으니 이는 배워도 마음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를 알고 나서 최근에 법을 읽으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많아졌는데 법에서 말씀하신 그 어떤 내용도 모두 대단히 경건하게 믿어야 하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법을 공부해야 함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3》〈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에서 “법 공부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염두(念頭)를 집중해서 배워야 하며, 진정하게 자신이 배워야 한다. 이 방면의 교훈이 아주 많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법을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끊임없이 사상 속의 무신론(無神論) 등 각종 착오적인 사유를 타파하는 과정이며 법 공부가 들어가는 만큼 자신의 잘못된 사유도 그만큼 타파됨을 깨달았다.
4. 나쁜 사상의 저애
또 내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늘 쉽사리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일을 하거나 교류문장을 읽거나 전통 이야기를 읽거나 동수와 교류하는 등인데, 법 공부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법을 공부할 때도 때로는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고 때로는 마치 임무를 완성하는 것 같았으며 교류문장을 읽을 때처럼 그렇게 단번에 몇 시간을 봐도 흥미진진해지지 않았다. 이는 어찌된 일인가?
사부님께서는 《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현재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구세력이 우리의 언행과 사상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법에서 나는 또 법만이 일체 집착과 사악을 타파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사유(思惟)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라면 그럼 사유 안에 있는 나쁜 사상이 자연히 우리의 법 공부를 저애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법 공부는 나쁜 사상을 없애는 것인데 그것은 다른 공간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그것이 저촉하게 되는데 우리더러 법을 공부하지 못하게 한다. 이 역시 아마 법 공부가 어려운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한 중년 여자 동수는 일찍이 법을 공부하면 늘 똑같은 내용을 배우는 것 같고 늘 다 아는 것 같아서 꾸준히 공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화를 잘 낸다고 했는데 남편에게 욕을 하거나 아니면 아이에게 욕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진상을 알리는 일에는 아주 몰입해서 했다. 몇 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또 한 노년 동수가 있었는데 남들과 말다툼을 잘 했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또 색욕과 사상업이 아주 강하다고 언급했는데 자신은 늘 충동적으로 일을 하며 법을 공부하기만 하면 마음이 소란해진다고 했다. 나중에 병업(病業)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한 노년 동수는 날마다 3강을 공부했고 세 가지 일도 빠지지 않았지만 안으로 찾을 줄 몰랐고 법 공부를 임무완성 식으로 했는데 화를 잘 냈다. 나중에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깨달은 것은 법을 잘 배우는 것은 형식만 봐서는 안 되며 법을 공부할 때의 심태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8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