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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지 못한 교훈 (하) –법 공부를 저애하는 요소에 대한 분석

대법제자

【정견망】

5. 불량한 학습습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늘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불량한 습관이 있었다. 법 공부에서 표현되는 것은 이렇다. 배운 내용에 대해 마치 아는 것 같지만 표면적인 의미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우쭐거리거나 대충 넘어가고 적당히 넘어갔는데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진지하게 배우려 하지 않았다. 비록 몇 차례나 법을 읽었어도 많은 내용이 여전히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소화상이 불경을 읽는 것처럼 말만 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어릴 때 아마 입시 교육 때문일 텐데 나는 점수만 중시했고 진지하게 지식을 배우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때 학습한 것은 점수를 따기 위한 것으로 시험 문제 위주로 공부했으며 진지하게 내용을 이해한 게 아니었다. 사실 이런 방식은 학습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대응이었다. 진지하고 엄숙하며 정확하게 학습하려는 태도가 부족했다.

이런 습관이 형성된 후 나는 또 머리를 써서 생각하려 하지 않았고 무엇을 배우거나 일을 하든 모두 목적만 추구했고 시간이 있어도 생각하는데 쓰는 걸 아까워했다. 인내심, 세심(細心)함, 진심이 없었다. 조급하고 급히 공을 이루려 했으며 급히 성과를 추구했고 목적심이 아주 강해 늘 지름길을 찾았다. 이런 심태는 또 당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뭔가를 배울 때 공리심이란 목적을 지녔는데 가령 시험을 위하거나 성적을 위하거나 남들에게 과시하고 보여주기 위해서였지 진정으로 지식을 장악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법공부에 대응된 표현은 공리심으로 나타났는데 얼마나 많이 배웠다거나 얼마나 많이 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공부한 것이 얼마나 되고 똑똑히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오히려 따지지 않았다.

최근 법을 공부할 때 발견한 것은 대량의 내용을 어떻게 지나갔든 늘 표면적인 뜻마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진지하고 성실한 심태를 품고 법을 공부한 후에는 법리에 대해 명백해진 것이 더욱 많아졌다. 일부 내용에 대해 나는 때로 잠시 멈추고 법에서 말씀하신 모 구절 의미를 궁리하거나 생각해본다. 내 생각에 법 공부는 글자를 파고들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 표면적인 뜻이 무엇인지조차 몰라서는 안 된다.

내 기억에 내가 법을 얻은 지 약 6년이 되었을 무렵 한 동수와 교류하는데 그가 자비롭게 나를 지적해준 적이 있다. 그는 내가 한 말을 들어보면 마치 이렇게 다년간 법을 배웠음에도 근본적으로 책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사실 확실히 그랬는데 이후로도 다년간 나는 늘 진정으로 법을 배워 법을 얻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심성제고가 늘 아주 느렸다.

이외에도 나는 과거에 동수들과 교류나 수련체험을 읽는 것이나 또는 내가 생각하고 집착을 간파해 도리를 똑똑히 알고 나서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데 희망을 걸었다. 비록 이런 것들도 일부 작용을 일으키긴 하지만 법 공부의 역할을 대신할 순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방식을 더욱 중시하며 법 공부를 하지 않았는가? 나는 배후에 또 지름길을 걸으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알았는데 한번 고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고 느낌에 의지했으며, 직접 특정 문제를 교류하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고 생각했다. 반면 법 공부는 마치 특정 문제에 대해 빠른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여겼다. 사실 수련에서 지름길을 걸을 순 없는 것으로 날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공부하는 것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련이란 착실하고 착실하게 사부님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이지 느낌이나 다른 방법에 의지해선 안 된다.

6. 법에 대조해 바로잡기

나는 또 자신이 일부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 착오적인 관념이 있음을 알았는데 줄곧 바로잡는 것을 중시하지 못했다. 가령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을 따라 불교에 귀의했는데 일부 불교지식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법리로 대조해 바로잡지 못했고 오히려 내가 아는 불교지식에 따라 판단했다.

가령 《전법륜》에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정토를 수련하면 그것은 곧 정토이고, 당신이 밀종을 수련하면 그것은 곧 밀종이며, 당신이 선종을 수련하면 그것은 곧 선종이다. 당신이 만약 두 척의 배에 발을 딛고 서서 이것도 수련하고 저것도 수련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내가 귀의했던 출가한 법사(法師)는 정토를 수련하면서 또 밀종을 수련했다. 과거에 나는 줄곧 그 법사의 수행(修行)이 훌륭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단락 법을 배우면서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상황이 특별하기에 당시에는 그렇게 수련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지금에 와서 알게 된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진리(真理)이자 진상(真相)이기에 이에 부합하지 않으면 곧 옳지 않은 것이며 이렇게 시비(是非 옳고 그름)를 보아야만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불교에서는 육도윤회(六道輪回)를 말하지만 나는 윤회에 식물이나 물질로 변하는 것도 포함시킬 수 있는지 오히려 몰랐다. 비록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자신의 사유를 과거에 바로잡지 못했고 또 그다지 꼼꼼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흐릿하게 넘어갔다.

[역주: 원래 석가모니가 말하는 육도윤회란 천도ㆍ인도ㆍ수라ㆍ축생ㆍ아귀ㆍ지옥을 말하며 식물이나 물질은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다시피 사부님 설법에서 비록 과거 종교의 여러 용어를 말씀하시지만 그 내함이 과거 종교와는 같지 않다. 반드시 대법에 근거해 파악하고 판단해야 한다.]

법에서 나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가 대단히 엄숙한 것임을 알았지만 자신이 수련한 후 더는 불교를 접촉하지 않았기에 내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에 와서 발견한 것은 사실 내 사상 속에는 여전히 아주 많은 과거 관념들이 남아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반드시 잘 파악해야 하며, 진정으로 정법을 수련하고, 어떤 것도 섞어서 닦지 말아야 하며, 의념(意念)마저도 더해 넣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法輪(파룬)마저 변형되었는데, 왜 변형되었는가? 그는 말한다. 나는 그런 공을 연마(練)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그가 연공(練功)하기만 하면 그의 의념이 곧 그의 원래 것들을 안으로 더해 넣는데, 그렇다면 끌어넣은 것이 아닌가?”

지금 알게 된 것은 의념 안에 다른 법문의 것을 조금이라도 남길 수 없으며 엄격하게 대법으로 대조해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불교 지식 외에도 개인관념 역시 법을 이해하는데 영향을 준다. 가령 《전법륜》에서는 말씀하셨다.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지 없는지,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없는지, 고생을 겪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 만약 이 한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

나는 과거에 늘 자신의 문제는 고생을 겪지 못하고 인내력이 부족한 것이라 여겼는데 또한 마음을 굳게 먹지 못하고 이 때문에 줄곧 낙담해서 어쩔 수 없어 했다. 나는 자신의 근기와 오성이 모두 좋지 않아서 이것을 해내지 못했다고 여겼다. 최근에 이 단락 법을 읽을 때 나는 고생을 겪지 못하고 인내력이 부족한 것은 진아(真我)가 아니며 나는 그것이 ‘나’라고 승인해선 안 되며 그것을 소멸시켜야 한다. 진아는 대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한 동수가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을 공부할 때 사실 주파수를 맞추는 것으로 마음을 써서 맞추고 그 한 층 심성표준에 부합하면 그 한 층의 에너지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주파수가 공진(共振)하면 우리에게 그 한 층의 법을 펼쳐줄 수 있는데 또한 개오(開悟)라고도 하며 글자며 행간(行間)이 모두 신세계의 대문이 된다.”

나는 이 인식이 내게 아주 큰 계발이라 보는데 법 공부 과정 중에 마땅히 끊임없이 법에 따라 바로잡는 것은 동수가 말한 “주파수 맞춤”과 비슷하다. 읽고 지나가면 그만이거나 자신의 관념 역시 바로잡을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년간 여전히 잘못된 인식을 품고 있었다.

또 하나는 내게 일부 착오적인 사유방식이 있었는데 가령 너무 심각하고, 말다툼하기, 변명하기, 쇠뿔을 파고드는 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법 공부에도 반영되었고 때로는 법리와 대립했다. 이를 알고 난 후 법을 공부하는 중에 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바로잡고 있다.

최근에 법을 읽을 때 늘 천천히 사색하면서 진정으로 법리의 뜻을 이해한 후 과거 다년간 법을 공부했어도 법리에 의해 건드려지지 않은 착오적인 관념을 아주 많이 바로 잡았다. 과거에 이런 관념들을 건드리지 못했던 원인은 법을 공부할 때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 교류를 쓸 때 내게는 신체 청리(淸理) 현상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아마 그런 정확하지 못한 관념들이 청리됨에 따라 패물(敗物)을 밀려나왔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7. 법으로 수련을 지도

최근 명혜편집부 문장 《신경문을 속인에게 배포할 수 있는가?》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경문 배포 문제에서 우리 본토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심성과 오성(추측하고 제멋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을 제고하는 과정 중에서 법에서 지혜와 계시를 얻은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에 따라[向法中求] 해야만 비로소 조금씩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모든 문제와 관난(關難)을 마주해 진수제자(真修弟子)는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속에서 구해야[静下心来向法中求 역주: 현재 한글 명혜망 번역문에서는 向法中求를 법에 따라 한다는 해석하는데 이렇게 하면 求의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 한다. 이것만이 근본이며 날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사부님의 가르침과 은사(恩賜)를 깨달으며 법으로 자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련이란 지상담병(紙上談兵 종이 위에서 병법을 말한다는 뜻. 말만 그럴싸할 뿐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말)에 불과하다.

주위의 어떤 동수는 매사에 늘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속에서 구함을 아는데 일체 관난(關難)과 고민에 봉착해 늘 일단 하던 것을 치우고 마음을 내려놓고 법을 공부한다. 법을 공부할 때면 늘 사부님의 점화와 지혜의 가지를 얻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다년간 기본적으로 매 한 걸음을 이렇게 걸어왔다. 설사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신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신사신법(信師信法)에 의지해 지나가야 함을 알았다.

나는 전에 이 동수와 교류한 적이 있는데 내 마음 속에 있던 수련 중의 일부 곤혹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면 많은 때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면 그녀는 일단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법을 공부하는데 법 공부 속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창춘보도원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늘 한 가지 일을 했지만, 당신은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른다. 당신이 『전법륜(轉法輪)』을 펼치는데, 어느 곳을 펼치겠다는 어떠한 의념이 없이 무심코 펼치면, 틀림없이 바로 당신이 오늘 한 일에 대하여 겨냥성이 있다.”

여기서 내가 이해한 것은 내심으로 대법에 대해 경건히 믿고 사람 마음에 이끌리지 않을 때면 법(法)이 신기를 펼쳐내는데 동수는 이 단락 법에서 말한 신기를 여러 차례 견증(見證)했다.

이외에도 법을 잘 배운 동수는 평소 법으로 문제를 사고하는데 습관이 되었는데 나 자신은 과거에 법 공부는 법 공부이고 일은 일이라 책을 내려놓은 후에는 사람 마음과 사람의 생각으로 일을 했다. 그것은 일부 동수가 제기한 것처럼 “배우는 것과 사용하는 것이 별개”인 것으로 법으로 착실한 수련을 지도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신사신법하는가? 믿음의 정도는 얼마인가?를 체현하는 것이다. 백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다면 자연히 사부님께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신 법 공부를 제1위에 놓고 법을 공부할 때 경건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배울 것이며 일에 봉착해서도 법(法)속에서 구하며 법리(法理)로 사고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한 갈래 진수(真修)・실수(實修)의 길을 걷는 것으로 이는 날마다 법(法)의 지도하에서 사부님에 이끌려 수련하는 것과 같다.

결론

사부님께서는 《2007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가 무엇이든 모두 그 대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말했지만, 당신들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한 이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장래에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그러나 당신들이 정말로 이 법을 꼭 틀어쥐고 수련한다면 반드시 수련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많이 읽고 법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또 《각지설법 1》〈싱가포르 불학회 설립식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불법의 위력, 나 자신의 많은 능력을 모두 그 책 속에 넣었으며, 이 법 속에 넣었다. 비디오테이프, 녹음테이프와 이 책을 막론하고 당신이 오직 보기만 하면 당신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오직 보기만 하면 당신의 병은 없어질 것이다. 당신이 오직 수련만 하면 당신의 신체는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오직 수련을 견지한다면, 당신은 능력이 있을 것이고, 당신은 볼 수 있을 것이며, 당신은 들을 수 있을 것인데, 당신은 대법의 홍은(洪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수들이 반드시 기억해 스스로 자주 일깨워주고 또 서로 일깨워주길 바라는데, 법 공부를 중시하고 대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자신의 수련에 신심(信心)이 없을 때면 반드시 《정진요지》 한편 경문 제목처럼 〈법 공부를 잘하면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 어렵지 않다〉를 꼭 기억하자.

최근 개인의 깨달음이니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완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