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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을 실천하며 지나온 길을 소중히 여겨야

채홍(彩虹 무지개)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에서 말씀하셨다.

“매 한 사람이 정법시기 대법제자 속으로 걸어 들어올 때, 그 명백한 일면이 모두 신에게 맹세하고 서약했으며, 생명으로 대법제자가 응당 감당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겠다고 보증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생명은 다시는 삼계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사부님의 이 신경문을 읽고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한 과정을 돌아보니 목숨을 걸고 법을 실증했던 경험을 통해 사부님의 ‘서약(誓約)’에 관한 설법을 보다 깊이 알게 되었다.

중공이 대법을 불법으로 미친 듯이 박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 나는 중국 대륙에 있었다. 어느 날 한 동수가 찾아와 당시 외신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인터뷰에 참여해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폭로하는데 참가하라고 했다. 안전을 위해 처음에 우리는 모두 단선(單線)으로 연락했다. 나와 연락하던 동수는 정체(整體)를 위해 지역을 떠날 것을 요구했고 나는 좀 망설였다. 나는 이미 수련과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감금된 적이 있었고, 부모님과 직장 상사가 나 때문에 끊임없는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떠난다면 그들은 또 한바탕 난장판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이 더는 타격받지 않기를 바랐다.

동수가 나와 몇 차례 연락했는데 나는 처음에 망설이며 말했다.

“인터뷰에 참가하는 것은 괜찮지만, 직장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고향을 떠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과정에 동수도 화가 나서 말했다.

“평소 말로만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대법을 위해 감당할 때가 되면 달라지네요. 외지 동수들은 이미 준비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고 모두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부끄러웠지만, 마음속으로 또 자신을 변명했다.

“내게도 어려운 점이 있고 우리 지역에 중공의 박해를 받아 정신병원에 수감된 동수들이 적지 않은데, 왜 꼭 내가 참가해야 하나요?”

동수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뒤 삼일 연속으로 꿈에 사부님을 뵈었는데 나더러 《홍음》〈진수〉를 외우라고 하셨다. 나는 더는 주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법을 실증하기 위한 그 활동은 모두들 협조가 아주 잘 이뤄졌고, 참여한 동수들이 주도면밀하게 배치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각지에서 온 우리 동수들은 곧장 흩어져서 떠났다. 인터뷰 중 나를 제외한 모든 동수들은 실명으로 했다. 나는 자신에게 아직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인터뷰 전에 나에게 연락한 동수에게 물었다.

“만약 우리가 박해당한 일이 해외에 알려지면, 사당(邪黨)이 알게 될 것이고 그럼 또 어떻게 하죠?”

동수가 말했다.

“해외 매체 기자가 대법제자의 이름이나 어디에 사는 지 등 구체적인 상황은 공개하지 않고 우리의 안전을 위해 고려할 겁니다.”

내가 인터뷰에 참가하기 직전 사악의 한 차례 교란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이 일에 어떻게 참여할지 동수와 만나 상의하려 했다. 우리가 길가에 잠시 서 있었는데, 갑자기 동수가 쏜살같이 앞으로 달아났다.(당시 공안이 그를 쫓고 있었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흰 경찰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고, 경찰 5~6명이 내렸다. 한 명만 현지인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외지 사람이었는데 말투를 들어보니 북경 경찰이었다. 그들은 나를 에워싸더니 나더러 나쁜 사람이라고 추궁하면서 경찰차에 태워 공안국에 데려가려 했다.

나는 당시 머리가 멍해졌다. 만약 그들에게 연행되면, 분명히 내 가방을 열어볼 것이고, 안에는 모두 대법자료와 우리가 인쇄한 명혜・정견 소책자가 있으니 나는 분명 판결 받을 것임을 알았다. 나는 절대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경찰이 말했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왜 당신 동료가 우리를 보고 도망쳤는가?”

그들은 이 일을 처리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인근 공원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보고 곧장 이렇게 둘러댔다.

“그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여기 서 있는데, 나한테 와서는 자기와 함께 춤을 추자고 했어요.”(그때는 너무 긴장해서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지만 생각했다.)

내 직장이 근처에 있었고 직장 상사 및 부모님들과 사이가 좋은데 만약 내가 다시 잡혀가면, 내가 일하는 모든 부서에 영향을 미치고 상사도 연루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절대 공안국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직장에 가면 동료들이 내가 좋은 사람임을 입증할 거라고 말했다. 현지 경찰이 우리 직장의 상황을 좀 알고 있어서, 내게 업무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질문했고 나는 유창하게 답변했다. 그들은 30분 정도 나를 심문하더니 마지막에 웃으면서 차를 몰고 갔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나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며 급히 집으로 갔다.

당시 외신 인터뷰 활동이 끝난 후, 나와 북방에서 온 두 동수는 외지에서 유리실소(流離失所)했다. 떠돌아다니며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서로 도와주었다.

당시 내 기억에 ‘천상(天上) 사람의 사상은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낮에 두 동수와 함께 연공하는데 갑자기 정수리가 열리는 느낌이 들면서 천상과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천인(天人)의 사상을 감수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진선인(真善忍)이 있었고 아주 단순했다. 하지만 대단히 섬세하고 강했는데 사람의 언어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밤에 발정념을 할 때,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비할바 없이 거대하고, 온 몸이 거대한 에너지로 둘러싸인 것을 느꼈는데 강대한 정념이 따스하면서도 또 자비로웠다. 나는 또 두 동수와 함께 토론하면서 법에서 교류했다. 우리는 모두 법에서 깨닫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저는 단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 상상도 못할 만큼 이렇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라며 사부님께 감은(感恩)했다.

우리는 우리의 방향을 이끌어줄 사부님의 설법을 볼 수 있기를 갈망했다. 나는 그 기간에 사부님의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때 한 차례 전에 꾼 꿈속 장면이 나를 아주 오랫동안 곤혹스럽게 했다.

꿈속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어느 산비탈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 아이처럼 천천히 사부님께 다가가 종이 한 장을 드렸다. 사부님은 엄숙한 얼굴로 받으셨다.

내가 곤혹스러웠던 것은 “내가 왜 사부님께 한 장의 종이를 제출했는가?” 였다. 몇 년 후, 사부님 설법에서 그것이 ‘서약(誓約)’임을 알게 되었다.

동수들과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줄곧 힘들었지만, 우리는 또 줄곧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격려와 대법의 신적(神跡)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서로 헤어졌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인터뷰 때 실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내가 압력이 가장 작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문제를 본 것이다.)

집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또 감금되었다. 세뇌반(洗腦班) 악인은 끊임없이 나더러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캐물었다. 나는 무시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또 다른 공간의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는 나쁜 사람들의 입을 이용해 말했다.

​“누군가 특무 활동을 했고 외국과 연락했는데….”

당시 나는 사상압력이 극점에 달했고 동수를 생각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노교소에 보내진다면 나는 동수를 팔 수 없다. 만약 혹형을 견디지 못한다면 자살하고 싶다….’

몇 달 동안 감금된 후, 그 해의 세뇌반이 해산되었고 그제야 나는 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혜망에서 동수 오빠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그는 남방에 도착한 후 체포되었고 그곳 공안에게 고문을 받다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심장을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잘 통했고 서로를 도와주었다. 일찍이 헤어질 때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목숨을 걸고라도 너희들을 지켜줄게.”

이 한 마디는 참언(讖言)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아직 법에서 성숙하지 못했고, 사부님께서도 막 발정념에 관한 법을 말씀하셨다.

오빠는 죽을 때 겨우 30대였는데, 전에 경찰이었고 자신이 맡은 직책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선량하고 충실한 좋은 사람이었다. 매년 직장에서 선정하는 선진 일꾼에 뽑히곤 했다. 그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감금되어 정신병원에서 박해 받자, 직장 상사들은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가 어떤 고문을 겪었는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나는 슬픔과 분노가 교차해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에게 사악한 당의 죄악을 큰소리로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한 마디도 말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주변 동수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현지 정부와 공안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고 소위 ‘보증서’와 ‘검사(檢査)’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사악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집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내게 10~20번 절을 하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힘껏 박으며 나더러 집을 떠나달라고 했다. 심지어 의자를 들어 나를 죽이려 하셨다. 부친은 고혈압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는데 이 기간에 평소 먹던 약 양의 몇 배를 먹었다. 희끗희끗한 부친의 머리를 보면서 나는 매우 슬펐다. 나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딸이 아닌가! 부친은 냉정해진 후 또 나더러 울면서 떠나지 말라고 했다. 가족들이 사당(邪黨)의 핍박을 받아 이지를 잃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작은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나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며 속으로 사부님께 여쭤보았다.

“왜 제가 이런 잔혹한 경험을 해야 하나요?”

내가 보니 사부님께서는 계속 웃으며 나를 바라보셨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사부님의 《각지설법 13》〈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사부님께서는 “그것은 고무 격려이고 그것은 기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내가 아는 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두 동수가 얼마 후 장기간 노동 교양을 당했고, 노교소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한 동수는 출소한 후, 그는 온갖 잔혹한 박해를 받았지만 끝까지 대법을 굳게 믿었노라고 말했다. 그는 사부님께서 늘 자신을 가호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꿈속에서 여러 대에 걸친 자신의 윤회를 보여주셨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는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진정으로 수련해야(真修)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닫고 나타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法)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볼 수 있다.”(《정진요지》〈박대〉)

내게 한 차례 정법(正法) 수련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함께 법을 실증한 동수들의 정직(正直)・무사(無私)에 감사드린다. 나는 이 역시 우리가 예전에 공동으로 ‘서약’했던 것임을 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의식중에 신당인에서 필립 판이란 외신 기자가 2001년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과 당시 중국 대륙에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박해받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취재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으로 법을 실증한 한 차례 경험이었다. 나는 또 그 선량한 기자에게 감사드렸는데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켜 우리들에 대한 상세한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그 땅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만약 이 기자를 만난다면, 나는 또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그에게 당시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나와 모든 동수들의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중국 대륙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생명으로 법을 실증하며 서약을 실천하면서 중공 사악을 폭로해 세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 꾸준히 정진하지 못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더러 처음처럼 수련해야 하며 수련이란 엄숙한 것임을 알려주셨다.

일찍이 걸어갔던 그 시기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면 마치 어제 일처럼 내 마음속에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다. 내가 수련의 발걸음을 늦추고 방만해질 때면, 나는 늘 자신에게 정진해야 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 수련의 길을 안정적으로 잘 걸어, 자신을 잘 수련해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상기시키곤 한다.

이 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