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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날 때

요녕 호로도(葫蘆島) 대법제자

【정견망】

내가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이미 축시(丑時 오전 1~3시)였다.

꿈속의 광경이 여전히 선명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이곳으로 왔는지 법회(法會)를 하러 왔다고 했다.

한 무리 또 한 무리 많은 사람들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나도 실내에 들어가서 이 모임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안에는 이미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안에 아무도 없었다. 아직 가지 않은 한 남자 동수가 내게 이번 회의에서는 수련인이 각자(各自) 공덕(功德)을 쌓은 일을 말했다고 했다.

꿈속의 장면을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마음속에서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다시 생각해보니 올해 “5·13 원고모집”과 “제20회 대륙 법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는 수련을 잘하지 못했고 심성이 너무 차(差)해 엘리트들의 성회(盛會)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희망을 접었다.

꿈속의 장면은 다시 한 번 나를 놀라 깨어나게 했다. 나는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알았다. 대법의 성대한 모임에 마땅히 참여했어야 한다. 자신의 수련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마땅히 참가를 중시했어야 한다. 이것은 천고(千古)의 기연이자 세상에 올 때의 숙원(夙願)이다. 나는 마땅히 한 부의 답안을 제출해 자신의 수련상황을 대법 사이트에 제출했어야 했다. 설령 수련을 잘하지 못한 면이 있더라도 이 역시 다른 동수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단번에 마음을 굳혔고 이 순간 잡념(雜念)이 하나도 없었으며 자신이 마치 산처럼 아주 크고 거대하면서 장중(莊重)해졌다.

나는 자신이 누락이 있었던 것에 대해 사부님께 용서를 구하고, 제자에게 다시 한 번 수정할 기회를 주십사 부탁드렸다. 이에 최근에 자신이 돈에 집착했던 일을 써 내어, 이를 경계로 삼고, 더는 명리정(名利情)에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도록 자신을 일깨웠다.

아래에 내가 최근에 겪은 일을 써내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시골에 사는 부녀자로 평소 보따리 장사를 한다. 하루 종일 팔아도 이윤이 많진 않지만, 나는 이 일을 몹시 좋아한다. 동수들은 모두 내가 이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고들 했다. 사실 나 역시 동수들이 한 말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둘째 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안의 저축이 빠듯한 상황에서 아이가 학업을 마치려면 많은 지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는 돈에 집착하게 되었다.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엄마로서 압력이 적지 않았다.

지금 계절이 되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조인(山棗仁 역주: 산대추 酸棗仁이라고도 하며 한약재로 널리 쓰인다)을 따러 산에 건다. 산조인은 한약재로 쓰는데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다. 최근에는 예전보다 가격이 몇 배나 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에서 돈을 줍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올해는 특히 산이며 언덕에 열매가 많이 열렸다.

며칠 동안 산촌 사람들은 산에 갈 수만 있으면 모두들 산조인을 따러 갔다. 이렇게 하루 종일 따면 수백 위안을 벌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천 위안 이상을 벌었고, 심지어 고생을 많이 하면 만 위안도 벌 수 있었다. 남편은 남들이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 것과 내가 하는 장사 수입을 비교해 보고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날마다 내게 화를 냈다.

내 마음도 어쩔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장사를 하러 나갈 때도 몇 사람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 산에 산조인을 따러 갔고, 산에 올라갈 수 없는 노약자들만 마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황의 영향을 받아 결국 장사를 접고, 산에 가서 산조인을 따기 시작했다. 매일 산조인을 따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겐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돈을 주려면 생활비를 충분히 모아야 합니다.”

갑자기, 한 구절 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홍진(紅塵)에서 너무 깊이 길을 잃었으니 어디서 정신을 차릴 수 있으랴?(紅塵迷路深,何處驚醒魂)”

이 말이 반복적으로 나왔는데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어째서 속인과 같아졌는가? 엄마라면 마땅히 자식을 키우고,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지나차게 자녀에게 정을 쏟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인과 혼동하게 된다. 사람에게는 각자 명(命)이 있게 마련이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할 때, 비록 많은 압력을 받았지만, 내가 이렇게 돈에 집착하는 것은 정말이지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망각하고, 내가 지닌 사명을 망각한 것이다. 오직 돈이란 이 방면에만 매달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교란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다.

다음 날, 나는 산에 가지 않고 내 장사를 하면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날 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유하는 것이 매우 순조로웠다. 잠깐 사이에, 네 사람이 삼퇴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98세, 한 사람은 86세, 그리고 78세, 다른 한 사람은 81세, 그리고 한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킨 후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눈물을 흘렸고,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렸다. 만약 오늘 내가 이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제때 권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 된다. 정말 그랬더라면 이는 생명에게 어떤 유감이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니, 내가 몇 백 위안을 더 버는 것보다 정말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속에서 한 가닥 위로가 솟아올랐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주변 사람들이 산조인을 따서 몇 백 위안을 벌었다는 말을 듣자 나는 또 마음이 움직였다. 속으로 내가 사람도 구했으니 산조인을 채취해 돈을 벌면 이것도 법을 원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산조인을 채취할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이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사실, 자신의 이런 생각은 실제로 교활한 마음이 장난을 친 것으로 이것으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익심(利益心)을 숨긴 것이다. 나는 법에서 문제를 생각했는지 고려하지 않고 또 산조인을 따러 산에 갔다.

이날 하루 종일 산조인을 수확해 약 400위안을 벌었다. 이 금액은 나에게 있어 유혹이 대단히 컸다. 이것은 내가 평소 보따리 장사를 열흘 동안 하는 수입에 해당한다. 이때 내 마음속에는 오직 돈만 있었고 법 공부며, 발정념조차 다 잊어버렸다. 오직 내일 또 어디로 산조인을 따러 갈지, 어디에 산조인이 많은지, 그리고 산조인이 많은 곳에 남들과 함께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탐욕심, 점유욕, 많은 이익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저속하고 또 무섭다.

산조인을 따서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속인처럼 되었다. 때문에 꿈자리도 뒤숭숭해졌다. 그 며칠간 갑자기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오는 꿈을 꾸었고 그 장면이 나를 단번에 깜짝 놀라게 했다. 밤에 막 자려고 누우면 구세력이 흑수(黑手)와 썩은 귀신을 이용해 나를 에워싸는 것을 느꼈는데, 내 발이 뭔가에 물렸지만 무엇에 물렸는지도 몰랐다.

나는 단번에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해주십사 부탁드렸다. 나도 서둘러 발정념으로 자신의 공간장(空間場)을 청리했다. 아울러 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돈벌이를 위해 자신도 모르게 대법에서 멀어진 것이다. 나는 몹시 후회했고, 동시에 동수들이 제때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준 덕분에 비로소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나는 강렬한 이익심에서 벗어난 후 남편이 매일 하는 잔소리도 개의치 않고 전처럼 장사를 계속하며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장사에서 아무것도 팔리지 않는 것을 보고, 또 하루에 겨우 10위안이나 때로는 또 10위안도 벌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남편에게 감히 말도 꺼내지 못했고 그저 이렇게 버텼다.

마을에서 누가 또 얼마를 벌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그저 “좋겠어요”라고만 할 뿐, 더는 돈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산길을 걸어가면서 산위에 산조인이 풍성하게 열려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바쁘게 산조인을 채집해 나중에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아무리 솟구쳐 올라오고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나는 오직 ‘너는 소란을 피워봐라, 나는 내 길을 갈 것이다.’라는 일념(一念)뿐이었다.

사부님께서 내가 좀 진보한 것을 보시고 《홍음》〈각자〉라는 시를 머리에 넣어주셨다.

속인은 나를 모르나니
나는 심오 속에 앉아 있도다
이익과 욕구 속에 나 없나니
백년 후에는 오로지 나로다

나는 자신이 반드시 이 강렬한 이익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사부님의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진정하게 수련을 결심한 사람으로서, 그가 참고 견딜 수 있고, 각종 이익 앞에서 이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그것을 아주 담담하게 여길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다. 이른바 어렵다고 하는 사람은 바로 그가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 내 마음이 안정되면서, 물건도 많이 팔렸다. 그리고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진상을 알려 또 70대 노인 두 명을 삼퇴시킨 것이다. 이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가지와 격려임을 절실히 느꼈다. 제자는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익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서 인생이란 꿈과 같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홍진(紅塵)의 집착하는 일에 연련하지 말라, 꿈에서 깨어날 때면 후회해도 늦으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