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小雲)
【정견망】
7년 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우리 집 낡은 방에 모셨는데 주로 큰 여동생이 두 노인을 모셨다. 내가 은퇴한 후 80대 중반의 부모님과 함께 산지 이미 5년이 되었다. 한동안 부모님의 건강이 아주 좋지 않아 나 혼자 돌볼 수 없어서, 마침 딸집에 가서 아이를 봐주던 큰 여동생을 불러 같이 산다.
어느 날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여동생이 화가 잔뜩 나서는 부모님 방으로 왔다. 동생은 자신이 싱크대에서 채소를 씻는데 아버지가 가래를 뱉었다는 것이다. 당시 아버지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자 동생은 더욱 화가 나서 아버지께 잔소리를 해댔다.
저녁을 먹은 후, 나는 냄비와 대야를 씻은 후 아버지가 다시 싱크대에 침을 뱉을까 걱정이 되어 대나무 발로 덮어놓고 모두 자기 방에 돌아가 쉬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다시 방에서 나와 발을 치우고 손을 씻는 동시에 기침하면서 가래를 뱉으려 했다. 동생은 아버지가 싱크대에 또 가래를 뱉을까 봐 걱정이 되어 뛰쳐나와서는 “여기에 뱉지 마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쩌라고, 내가 여기에 뱉는 게 어때서?”라고 역정을 내셨다.
동생도 지지 않고 두 사람의 말다툼이 갈수록 심해졌다. 동생은 원래 성격이 강해서 예전에 같이 살 때도 늘 다투곤 했다.
당시 나는 마침 다른 방에서 6시 발정념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 역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한동안 말다툼이 이어지자 딸이 나와서 두 사람을 각자 자기 방으로 돌려보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숨을 헐떡이셨고, 여동생은 아예 인기척도 없었다. 내가 발정념을 마친 후 부모님 방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얼른 일어나 앉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도 보다시피 두 사람이 또 싸웠구나. 네 아버지가 또 싱크대에 가서 가래를 뱉었는데 기억도 못한단다. 방금 한 말도 금방 잊어버려. 그러니 네가 말 좀 해보렴,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 화내지 말거라.”
내가 말했다.
“엄마, 저는 화내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님을 알아요, 뇌에 문제가 있으신 거죠. 전에는 이렇게 가래를 뱉은 적이 없는데 늙고 정신이 흐릿해지신 거니까 화내지 마세요.”
아버지는 저쪽에서 아무 말도 없이 누워 계셨다.
나는 곧 동생 방으로 갔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동생은 흥분해서 방금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말했다.
“너도 그만해, 나도 다 들었어.”
동생이 말했다.
“아까 엄마가 불러도 안 나오던데, 엄마가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내가 말했다.
“나는 못들었어.”
“엄마가 언니한테 ‘아무개야 네가 가서 그들을 한번 보렴.’이라고 하셨어.”
나는 정말로 어머니 말을 듣지 못했다.
동생이 말했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나를 때리려 했고 내 방까지 따라오려 했다니까. 정말 나를 때렸다면, 내가 아버지를 침대에 눕혀버렸을 걸.”
말을 마치더니 깔깔거리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동생이 말했다.
“식구들이 아무도 아버지를 상관하지 않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어떻게 고칠 수 있겠어?”
“나도 많이 봤고 말도 많이 해봤지만 아버지는 전혀 고치지 않았고 또 자신이 잘못한 것도 모르셔.”
“싱크대에 가래를 뱉는 것을 보면 언니라면 어떻게 할 거야?”
“예전에는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답답할 때가 더 많았지. 하지만 그때마다 참지 못하고 잘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어. 법을 공부한 후 심성이 제고되면 며칠은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또 고질병이 도졌고 이런 고험이 계속 심해졌어. 한 가지 상태에 적응이 되면 또 내가 참을 수 없는 다른 일이 생기곤 했어. 그리로 나서 다시 닦는데 이렇게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몰라. 사부님의 요구에 따르면, 안으로 찾으며 화를 내지 말아야 해. 나는 비록 한 걸음씩 제고하고 있지만, 때로는 나도 화를 참지 못한단다.”
동생이 말했다.
“나는 언니만큼 관대하지 않아서 아버지랑 언쟁을 했네. 또 가래를 뱉으시면 나는 그래도 싸울 거야.”
여동생과 아버지가 크게 언쟁을 벌였지만 나는 조용히 아무 교란도 받지 않았다. 고요함 속에서 나는 여동생의 미친 듯 조급한 마음을 보았다. 이 얼마나 큰 내부마찰인가! 나는 갑자기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는데 진정으로 우리를 교란하고 폭발하게 만들며 마성(魔性)이 크게 폭발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단지 외부 요소 때문만이 아닌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그런 원한심(怨恨心), 남을 무시하는 마음,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만약 우리의 내심에 이런 사람의 관념이 없고, 밖으로 보는 마성과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구별하는 분별심이 없다면, 그럼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사태를 관조하면서,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평화롭게 일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아버지의 행동을 막고 이끌어줄 수 있다. 필경 부친은 노인이고 치매에 걸렸으니, 정상인이 아니다. 만약 외부 자극이 우리의 인지(認知)에 충격을 주고 우리가 크게 화를 내게 할 수 있다면 그 인지는 분명히 틀린 것으로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할 것이다. 만약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보기에 용납할 수 없을지라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아무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녀의 마음을 아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적어도 이 일에서 누락이 없는 경계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외부의 일체 사람과 사물이 모두 우리 내심에 투사되고 현화(顯化)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만약 우리가 내심으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럼 우리에겐 반드시 바꿔야 할 좋지 않은 관념이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 늙고 병드셨으니 자식들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은 자신의 원한과 고뇌만 증가시키고, 정신적인 상처만 주며, 자신의 에너지만 새나갈 뿐이다. 오직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야지만 모순과 은원(恩怨 은혜와 원한)을 해결할 수 있고, 또한 오직 자신을 진수(真修)해야만 노인을 공경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동생이 아버지와 다툰 일을 말하자면, 속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여길 것이다. 또한 당연히 그곳에 침을 뱉어선 안 된다고 여기는데 위생적으로도 안 되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모른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부친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다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견해는 속인이 생각하는 진(真)인데, 진에 대한 이런 인식이 가져온 결과는 스스로 참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는 것인데 드러나는 것은 악(惡)이다. 이런 인식으로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려면 오직 노인을 고치는 수밖에 없는데, 노인이 고치지 않으면 집안이 평안하지 못하다. 이때 자식은 자신에게도 고칠 것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이런 심성에 기초해서는 노인을 공경할 수 없다.
사람이 되는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른다면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真)은 겉모습이 아니라 심층의 것이다. 생생세세(生生世世) 맺은 연분 속에서 현세의 부모와 형제자매 등은 모두 인연으로 맺어진 것으로 모두 서로 갚아야 할 업채(業債)와 갚아야 할 은원(恩怨)이 있다. 왜냐하면 전세(前世)나 또는 아주 오래전 연대의 윤회 중에 맺어진 서로 다른 선악의 인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금생의 관계를 좋게 하려면 그럼 과거에 형성된 나쁜 습성을 바로잡아야만 한다, 즉, 금생 가족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선(善)속에는 또 인(忍)이 있으니 참지 못했다면 선하지 못한 것이다. 인(忍)은 너그럽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아(無我)다. 오직 진(真)을 이렇게 깊이 인지해야만 비로소 외부에서 내부로 자신의 시각을 바꿀 수 있고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아 고칠 수 있다. 이때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사랑이고, 선(善)일 수 있는데 드러나는 것은 포용이고, 원용불파(圓容不破)해서 차별 없는 일체(一體)다. 그가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그인데 반대되는 표현은 단지 서로 다른 두 가지 측면일 뿐이다.
한 층 더 깊이 보자면 그럼 사부님과 직접 연결된다.
사부님께서는 “세상의 사람은 모두 나의 친인”(《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가 가족에게 화를 내는 것은 바로 사부님 가족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럼 사부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려고 하는데, 그때 당신이 그를 들이받는다면 사실 당신은 나를 들이받고 있는 것과 같다.”(《각지 설법 10》〈맨해튼 설법〉)
이 일이 얼마나 엄중한지 보라! 그러니 우리는 함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데 일단 화를 내면 가장 먼저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이시다. 엄중하면 곧 사부님을 밀어내는 것인데 그 순간 우리는 분명 수련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사경법(敬師敬法)하려면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사부님을 교란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에서 사부님이 떠나지 않으시도록 해야 하는데,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진하며 나태하지 않은 표현이 아니겠는가.
수련 중의 작은 인식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