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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을 잘 수호하자

축우(祝雨)

【정견망】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법 공부와 연공을 잘하고, 발정념, 진상을 알리는 3가지 일을 하는 과정 속에는 대법 수련의 형식을 지켜야 할 책임도 포함된다. 그러나 현재 사회 외부적인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각종 교란으로 인해 일부 수련생들이 법리(法理)적으로 대법 수련 형식을 수호하는 중요성과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해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수련 형식을 완벽하게 수호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 사부님께서는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고”[1], “왜냐하면, 미래에는 몇십억 사람이 법을 얻을 것인데”[2]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앞으로 대량의 중생들이 법을 얻어 수련하는 국면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들이 어떻게 정법시기에 대법 수련 형식을 잘 수호해서 미래 중생들을 위해 완벽하게 불변한 모습으로 사부님께서 남기신 수련 형식을 보여줄 것인가는 대단히 긴박하고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글은 이 방면의 수련에 대한 인식을 교류하고자 한다.

1.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

1999년 7.20 중공사당(中共邪黨)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해내외(海內外)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많은 항목을 만들었으며 각종 형식을 채택해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박해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특수한 방법일 뿐이며 사부님께서 미래에 남기신 세간의 대법 수련 형식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미국 서부법회 설법》에서 수련생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하셨다.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비디오를 보고, 단체로 법 공부하고, 단체로 연공하는 것과 우리가 오늘 열고 있는 이런 법회,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이다.”

사존께서는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을 강조하셨는데 개인적인 깨달음은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대법 수련은 인간 세간에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존재 형식은 오묘하고 끝이 없는 것으로 또한 다른 공간의 내함(內涵)과 기제(機制)를 갖고 있다. 대법제자가 대법 표준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는 동시에 단체로 얼굴을 맞대고 법을 공부하고, 단체 연공 하며 법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법 수련이 세간에 존재하는 형식을 수호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수련 형식 자체의 풍부한 내함과 기제는 또한 대법제자를 용련(熔煉)하고 향상시킬 수 있으며 또한 대법 수련이 인간 세상에서 전개를 번영시키고 있다.

물론 사부님께서는 또 대도무형(大道無形)을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호주 설법에서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오늘날 대법이 사회에서 나타나는 형식은 대도무형(大道無形)이다. 그 어떤 속인사회의 형식도 모두 대법을 널리 전하는 데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나는 어떤 형식도 취하지 않았다.”[4]라고 하셨다.

아마 일부 수련생들은 이를 근거로 세간에서 대법의 수련 형식을 중시하지 않을 수 있다. 대도무형과 대법제자들이 세간에서 대법의 수련 형식을 굳게 지키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우선 대법의 수련 형식은 속인 중에서는 지금껏 없었던 것으로, 역사상의 다른 수련법문들도 제자들이 빙 둘러앉아 가부좌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이는 형식이 있을지언정, 그것은 단지 수련 문화를 다지기 위한 것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말해서 이렇게 세간에서 하는 대법 수련 형식은 다른 공간에서 풍부한 기제와 무궁한 오묘함을 지닌 것으로 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둘째, 사존께서는 《정진요지》의 〈무엇이 공(空)인가〉라는 글에서 알려주셨다.

“여래가 말하는 공(空)은, 실은 속인의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남은 마음 하나 없음이 공(空)의 참뜻이다.”

내가 이해하기에 대도무형과 “여래가 말하는 공”의 법리는 아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대도무형이란 한편으로 대도(大道) 자체의 존재와 표현 모두 고정된 형식이 없는 것으로 속인 사회의 형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 대도 수련자는 속인 사회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 수련자는 형식 방면에서 속인의 마음이 없다. 때문에 대법 수련 형식은 속인 사회의 그 어떤 형식도 아니며 대법이 세간에서 수련하는 형식은 비할 수 없이 신성(神聖)한 내함을 지닌다. 대법제자는 사존께서 남겨주신 우리의 수련 형식을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굳건히 수호해야 한다.

2. 대면 단체 법 공부

사존께서는 《2016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단체 법 공부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남겨준 것이고, 단체 연공은 내가 여러분에게 남겨준 것이다. 박해가 극히 엄중한 상황을 제외하고 중국대륙 이외의 기타 지역은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으로, 그것은 미래의 사람들이 법을 얻고 수련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단체 연공과 단체 법 공부는 없어서는 안 된다.”

세간의 도덕 수준이 급격히 떨어져 내려가다 보니 인류사회의 각 방면 풍기도 급속히 떨어져 내려가 대법제자에게도 큰 충격을 준다. 속인 사회 속의 대법 수련생들은 모두 신체 소업의 교란과 수련 의지의 마모 등 다양한 정도의 교란을 받는데 일부 수련생들은 단체 법 공부에 대해 중시하는 정도가 떨어져 늘 단체 법 공부에 참여하지 못한다.

해외 일부 지역 수련생들은 업무 강도가 강하고,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등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동시에, 시간을 짜내 진상 항목에 참여하느라 이미 아주 바쁘다. 게다가 거주 지역이 비교적 분산 되어 있는 등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일부 동수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조나 대규모 대면 단체 법 공부에 참여할 정도로 정념이 강하지 못하다.

특히 코로나 시기 도시 봉쇄 정책 때문에 많은 지역의 수련생들이 부득이 온라인 단체 법 공부 형태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봉쇄 조치가 완전히 해제된 후에도 일부 동수들은 여전히 온라인 법 공부에 깊이 빠져서 제때 현지 대규모 및 소조 대면 단체 법 공부에 제때 복귀하지 못했다. 또한 연공장에서 매일 단체 연공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일부 지역의 소조는 단지 온라인으로만 단체 법 공부를 조직할 수 있을 뿐 코로나 이전처럼 대면 단체 법 공부를 재개할 수 없었다. 또 일부 소조는 부득이 장기간 대면 단체 법 공부와 온라인 단체 법 공부 두 가지 형식을 병행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미국 서부법회 설법》에서 수련생이 제기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교류 및 법 공부 문제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셨다.

“안 되는바, 꼬마 제자 이외에 이렇게 하지 마라. 그러나 또한 여러분이 아주 바쁠 때 사용함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습관화되면 안 되며 이는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 준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단체로 법 공부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법 공부하고 문제를 탐구하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당신들이 바쁠 때 한번 이용할 수 있지만, 모두 다 이렇게 하면 안 되며 또한 자주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명혜망 사부님 평어문장 〈대륙 수련생들은 온라인 법 공부를 즉시 중단하라〉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런 소프트웨어는 수련생 중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하셨다.

온라인 단체 법 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게 아니다. 아울러 특히 소제자(小弟子) 외에는 이렇게 하지 말 것을 특별히 강조하시며 “모두 다 이렇게 하면 안 되며 또한 자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온라인 단체 법 공부만 참여하는 일부 수련생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이렇게 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위에 언급한 해외 수련생들이 대면 단체 법 공부에 참여하지 못하고 오직 온라인 단체 법 공부에만 참여함으로써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대면 단체 법 공부란 수련 형식이 다양한 정도로 교란받고 있다. 이런 관행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사부님께서 직접 규정하신 대법 수련이 세간에서 유전하는 형식을 고칠 가능성이 크다.

3. 실외 단체 연공

단체 연공에 참여하는 장점은 분명하다.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아 함께 연공하면 확실히 아주 좋다. 하나는 서로 연구 토론하고 서로 증진하며 이런 수련 중의 일들을 같이 담론하면 수련의 신심을 증강시킬 수 있다. 동시에 집단적으로 연공하는 마당의 에너지는 대단히 커서 확실히 사람의 수련에 대해서는 좋은 점이 있는데, 이 점은 틀림없다. 혼자서 수련하는 사람은 아주 바쁘면 곧 쉽게 잊어버리거나 혹은 좀 일찍이 연공하거나 좀 늦게 연공하는데, 어쨌든 비교적 좀 게을러지는바, 이것은 확실하다.”

사부님께서는 또 1998년 8월 《싱가포르 법회 설법》에서 집이 먼 수련생들이 실외 단체 연공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로 당신에게 아직 속인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을 그렇게 잘 장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나와서 연공하라고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같은 설법에서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많은 사람의 연공 장면은 바로 가장 좋은 홍법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한번 지지해 주지 않는가? 그것을 한번 원용하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또 1998년 9월 《스위스 법회 설법》에서는 야외 연공이 홍법하는 기전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

“나의 법신은 연분이 있는 사람에게 그 책을 사게 할 것이고 연분이 있는 사람이 보면 그는 와서 배울 것이다. 우리가 또 밖에서 연공하는데, 그러면 법신은 그에게 연공장을 찾아가서 법을 얻도록 배치할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연공하게 하거나 혹은 우리 수련생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이 일을 이렇게 배치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북미 제1기 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말하거나 혹은 기타 구실로 나와서 연공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모두가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고 정진(精進)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고 정법 노정의 형세가 변화함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원만하지 못한” 노수련생들은 모두 나와서 연공 할 것을 요구하셨다. 사부님께서는 1999년 3월 《미국 동부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말한 김에 몇 가지 작은 문제를 더 말하겠다. 하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당신들 노수련생은, 만약 당신이 원만에 이르지 못했다면 당신은 다 나와서 연공해야 한다. 이 일, 그것을 나는 다시 한 번 새롭게 제출한다.”

사존께서는 또 《2016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단체 법 공부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남겨준 것이고, 단체 연공은 내가 여러분에게 남겨준 것이다. 박해가 극히 엄중한 상황을 제외하고 중국대륙 이외의 기타 지역은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수련생에 대해 “다 나와서 연공해야 한다”는 사부님의 요구는 정법 시기에 아직 원만하지 못한 모든 대법제자들에게 적용된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사이트에는 해외 여러 국가 다양한 도시의 다양한 연공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연공을 견지할 수 있는 연공장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법 공부 소조 멤버들이 실외 단체 연공이란 대법 수련 형식을 확고히 지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져” 각종 장애를 극복하기 어려워, 주중 단체 연공에 참여할 수 없으며 주말에 참여하는 정도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직장에 다니는 일부 해외 수련생들은 업무가 불안정해서 실외 단체 연공에 참여하기 어렵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은 원용하다》에서 말씀하셨다.

“안정된 직업 역시 수련자로 하여금 의식주 문제, 생존 문제로 인해 수련에 지장을 주지 않고 안심하고 홍법과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세인(世人)을 구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동수들은 수련에서 안정된 직업의 의미에 대한 법리를 인식하지 못해 해외에서 안정된 직업을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아 실외 단체 연공에 참여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대면 단체 법 공부에 참여하는 것에도 영향을 준다. 일부 노년 동수들은 단체 연공이란 대법 수련 형식을 수호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신체가 소업하는 등의 상황 때문에 역시 실외 단체 연공에 제대로 참여하기 어렵다.

4. 법회

사존께서는 세계 각국과 지역 법회에 대해 많은 신경문(新經文)을 발표하셨다. 1994년 공개적인 공법 전수를 중단하신 후 사존께서는 심지어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법회 현장을 직접 찾아가셨다. 사존께서 이런 법회 현장을 방문하신 후 설법하고 질문에 해법(解法) 하시거나 또는 각국 대형 법회에 축사나 축하 편지를 보내시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에 대법 특유의 세간에서의 이런 수련 형식을 가지(加持)하시는 것으로 역시 이런 수련 형식이 대법제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준다. 동시에 사존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 역시 대법제자들이 세간의 법회라는 수련 형식을 잘 수호하고 법회 참가를 통해 자신을 닦고 자신을 제고 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이다.

내 기억에 과거 사존의 9강 학습반에 참가한 마지막 날, 여러 수련생들이 무대에 올라가 9강 학습반에 참가한 수련 체험을 교류했다. 나는 당시 적지 않은 수익을 보았는데 사존의 설법과 수련에 대해 보다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9강 학습반 마지막 날 동수들의 교류가 일종 법회 형식이라고 이해한다. 연공과 마찬가지로 사존께서 법을 전하신 기간에 이미 대법 속에 법회라는 수련 형식을 다져놓으신 것이다.

사존께서는 《정진요지》 〈법회〉에서 말씀하셨다.

“형식이나 경쟁에 치우치지 말고, 진정으로 수련을 촉진할 수 있는 하나의 장엄한 법회로 만들어야 한다.”

또 《정진요지》〈깨어나라〉에서는 “심득교류회는 수련생의 제고와 대법(大法)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정진요지 2》〈대만법회에〉서 “법회를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며 세인을 향해 정법(正法)을 펼쳐 보이는 성회(聖會)로 열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하셨다.

법회 방면에 관한 사존의 가르침은 내가 이해하기에 세간에서 법회란 대법의 수련 형식을 명확하게 확립하신 것이다.

많은 수련생들이 각종 유형의 법회를 통해 현저히 제고되었다. 법회는 이미 해외 각 지역 수련생들이 수련하는 성대한 행사가 되었고, 이미 대다수 현지 수련생들이 참여하는 중요한 수련 형식이 되었다. 정법시기 한 지역 법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단순히 그 지역 대법제자들이 법회에 적극 참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보다 필요한 것은 현지 대법제자들의 적극적인 투고다.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수련 경험을 총결하고, 대법의 위대함을 실증하며, 대법이 법도의 경계를 향상시킨 탁월한 효과를 실증해야 한다.

모든 대법 제자들이 사존께서 남기신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을 수호하는 높이에서 자신이 어떻게 법회에 참석하고, 어떻게 법회 교류 원고를 썼는지 바라본다면 자신의 인식이 아주 분명해질 것이다. 동시에 우리 법회도 더욱 순정(純淨)해질 것이고, 동수들이 얻는 이익의 제고 역시 뚜렷해질 것이며 법회가 “세인들에게 정법을 보여주는 성회(聖會)”가 될 것이며, 또한 사존께서 남기신 법회란 수련 형식을 더 잘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5. 맺음말

1999년 12월, 나는 다른 세 동수들과 함께 천안문 광장에서 천안문 성루(城樓)를 마주 보며 연공하고 있었다. 세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의 위대함을 실증하기 위한 것으로, 대법 수련 형식은 간섭과 파괴를 허용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대법 제자들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사악이 박해하는 환경에서도 모두 대법 수련 형식을 수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해외의 자유로운 수련 환경에서, 더구나 우리는 현재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접어든”[1] 기회를 포착해 실외 단체 연공, 대면 단체 법 공부 및 법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꾸준한 노력과 감당으로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을 확고히 수호하고 법도(法徒)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미래인들이 법을 얻을 수 있도록 발판을 잘 다져주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법정〉에서 말씀하셨다.

“나 리훙쯔(李洪志)가 걸어가는 매 한 걸음은 모두 후대 대법(大法)의 유전(流傳)을 위해 정한 불변불파(不變不破)의 형식이다. 이렇게 큰 법은 일시에 열조를 올리고 끝마칠 일이 아닌즉, 만세(萬世)토록 영원히 조금의 편차(偏差)도 생겨서는 안 된다. 나부터 시작하여 대법(大法)을 수호함은 마찬가지로 영원히 대법 제자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대법(大法)은 우주 중생의 것으로 그 속에 당신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은 외부 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3]을 수호하는 문제에서 나태해선 안 된다. 어쨌든 “나부터 시작하여 대법(大法)을 수호함은 마찬가지로 영원히 대법 제자의 책임이다.”라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야 한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 2》〈축사〉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055